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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독서의 대가로 돈을 준다고? 중요했던 건 이것과 '거리 두기'였다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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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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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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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첫 번째 월요일은 미국 노동절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노동절을 여름의 끝으로 여깁니다. 노동절 이튿날은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길고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맞아 오랜만에 등교한 학생들로 학교가 시끌벅적해지죠. 소셜미디어에는 아이들이 새 학년 첫 등굣길에 "새 학년 처음 학교 가는 날, 이름(혹은 별명), 좋아하는 것, 장래희망" 등을 적은 팻말을 목에 걸고 찍은 사진들이 많이 보입니다. (물론 아이들의 얼굴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는 부모들만 그렇죠. 제 주변에는 딥페이크를 비롯해 아이의 초상권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 때문에 아이의 얼굴 사진은 절대로 혹은 가급적 드러내지 않는 부모들도 꽤 있습니다.)

올해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은 미국의 일선 학교에서 확인할 수 있는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는 스마트폰 소지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학교들이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라서 중앙 정부에서 일괄적으로 적용, 시행할 수 있는 규제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 교육은 주 정부와 지방 교육청의 자율성이 보장돼 더 그렇습니다. 연방정부 산하 부처에 교육부가 있지만, 한국 교육부와 비교하면 권한이 적습니다.

그런데 미국 전체 50개 주 가운데 최소 8개 주 교육 당국이 학생들이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어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긍정적인 효과가 확인되면 비슷한 규정을 도입하려는 주들도 많습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세상이지만, 스마트폰은 이름처럼 똑똑할지 몰라도 스마트폰을 쓰는 우리가 스마트폰 덕분에 더 똑똑해졌는지, 오히려 스마트폰 때문에 덜 똑똑해진 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일선 학교에서는 특히 온종일 스마트폰을 붙들고 사는 아이들이 학업에 지장을 받거나 스마트폰이 학교폭력의 매개나 도구로 쓰이는 등 문제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이 악화했다는 주장도 오래전부터 제기됐죠.

삐삐와 컬럼바인 고등학교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도 학생들이 학교에 들고 다니는 전자기기가 문제가 된 사례가 있습니다. (나이대에 따라 기억하시는 분과 잘 모르는 분이 갈릴 텐데) 바로 삐삐가 그 주인공입니다. 미국에선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일부 학생들이 삐삐를 이용해 마약을 거래하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학업에 딱히 도움이 되지도 않고, 삐삐가 없다고 긴급한 연락을 못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때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니, 급한 일이 있으면 학교 교무실로 전화를 걸어 학생을 찾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일선 학교들은 대부분 삐삐를 들고 다니지 못하게, 혹 가져오더라도 학교 안에서는 쓰지 못하게 규정합니다.

그런데 1999년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납니다. 범인을 포함해 15명이 숨진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많은 학부모는 자녀의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어 가슴 졸이며 발만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이후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또 필요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할 때를 대비해 학생이 학교에서 (수업이나 친구들의 학업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핸드폰을 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고, 대부분 학교가 핸드폰 소지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던 규정을 폐지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원격 수업



스마트폰이 나온 지는 벌써 15년이 더 됐습니다.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서 긴 시간을 보낸 지도 스마트폰의 역사 못지않게 오래됐죠. 그런데 아직 미성년자인 초, 중, 고등학생들이 스마트폰과 급격히 가까워진 데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 매우 컸습니다. 학교에서도 수업 시간에 스마트폰이 울리거나 수업 중에 몰래 스마트폰을 쓰는 학생이 문제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교실에선 스마트폰을 집어넣게 하거나 쓰지 못하게 할 수 있었는데, 각자 집에서 화상으로 연결해 진행하는 수업 중에 교사가 학생의 스마트폰 사용을 규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수업은 물론 숙제나 과제도 모두 온라인을 통해 제출하고 채점해야 했으므로, 인터넷을 끄는 건 애초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같은 반 친구들과 직접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더더욱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락을 취했습니다. 팬데믹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은 스마트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스마트폰에 길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하루에 주어진 시간은 24시간으로 똑같습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건 그만큼 다른 데 쓰던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뜻입니다. 누구는 잠을 줄였을 거고, 누구는 친구와 만나 뛰어노는 시간을 줄였을 겁니다. 누구는 가족과 함께 소파에 앉아 TV를 보거나 얘기하는 시간을 줄였을 거고, 책 읽는 시간을 줄인 아이들도 많을 겁니다.

책을 많이 읽은 아이는 세상에 관해 아는 것도 많고, 창의력, 사고력, 공감 능력 등 많은 부분에서 또래보다 앞서기 마련입니다. 꼭 남보다 더 잘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아이가 글을 떼고 책에 푹 빠지는 습관을 들이는 걸 좋아하지 않을 부모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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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책 한 권 다 읽은 상'으로 100달러! 그러자 아이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


지난 2일 뉴욕타임스에는 문화비평가 미레일 실코프의 솔직하고도 흥미로운 고백이 실렸습니다. 12살 딸아이가 도저히 책을 가까이하려 하지 않자, 최후의 수단으로 책 읽으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 겁니다. 액수도 100달러, 우리 돈으로 13만 원이 넘는 거금이니, 절대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읽는 저도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실코프는 적어도 지금까지 결과에 만족한다며, 잘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실코프의 딸은 재밌게 봤던 드라마의 원작 소설을 읽고 나서 약속대로 100달러를 받았고, 그 돈으로 오래전부터 사고 싶어 하던 화장품을 잔뜩 샀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면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고 해야 하겠지만, 딸은 속편을 찾아서 스스로 책을 읽습니다. 이 일을 두고 아이에게 책의 재미를 일깨워줬다고 하는 건 섣부른 일이겠지만, 어쨌든 부모로서 독서라는 평생 삶을 윤택하게 해줄 훌륭한 습관을 들일 수 있게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서든 뭐든 자기가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절대로 습관을 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책을 한 번 진득하니 읽어보고 그래도 정 재미가 없다면 포기는 그때 가서 해도 됩니다.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책,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고전을 고르는 대신, 딸아이가 거부감 없이 첫 장을 넘길 수 있는 책을 추천받아 고른 저자의 지혜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지레 나랑은 맞지 않을 거라며, 혹은 재능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책 읽는 데 도대체 무슨 재능까지 필요하나요-재능이 없어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기엔 독서는 어떻게든 들여놓는다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습관입니다.

책 읽는 습관을 들이도록 유도하는 실험도 좋지만, 그전에 스마트폰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버린 아이들의 시간을 되찾아준 것부터 박수받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코프는 딸아이에게 스마트폰 내려놓고 그림을 그려볼까 제안했다가 눈에서 쏘는 레이저 광선을 맞았다며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 교내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한 몇몇 학교의 모습은 스마트폰과 아이들의 거리를 적당히 떨어뜨려 놓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을 보여줍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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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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