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9 (목)

8년 남은 저출생 ‘골든타임’… 반전 위한 해법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동수당 확대하고, 육아휴직 사각지대 없애야”

내년 6월 결혼 예정인 이모(34)씨는 혼인 이후 아이를 낳지 않기로 여자친구와 잠정적으로 합의한 상태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을 자산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에서 주택을 구해 아이를 키우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다. 또 여자친구 직장이 육아에 친화적인 곳이 아니란 점도 출산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이씨는 “절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 아닌데 경제적인 측면이나 여자친구의 경력 등을 고려했을 때 아이를 낳기 쉽진 않을 것 같다”면서 “그래도 주변에서 아이 키우는 행복을 얘기하는 분들도 많아서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저출생 반전을 위한 ‘골든타임’이 8년 정도 남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 출산 연령대인 31~35세 여성인구가 2032년까지 150만명대로 유지되다 이후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10년이 채 남지 않은 이 시기에 아동수당의 전 연령대로의 확대, 출산·육아휴직 제도의 사각지대 해소 등 실효성 있는 저출생 대책이 집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저출산 대응을 위한 복지재정의 과제 연구’에 따르면 혼인율과 출산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인 31~35세 여성 인구 수는 2023~2032년 10년 동안 대체로 150만명대로 유지된다. 이후 2040년대 후반까지는 110만명대로 하락한 후 2050년대 후반까지 60만명대로 적어진다. 연구진은 “2023~2032년 10년 동안이 현재의 한국의 저출생 대응 정책이 집중돼야 하는 시기임을 보여준다”면서 “이 기간의 합계출산율 회복 여부는 향후 20년이 경과해 이 시기 출생아들이 다시 성인이 되는 해인 2040년 이후 인구추계를 변화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어 “이는 인구감소와 합계출산율 하락이 맞물리는 인구 트랩(trap, 덫)을 벗어나기 위한 부분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에 따르면 저출생 배경에는 경제적, 비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깔려 있다. 우선 청년세대가 맞닥뜨린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다. 2018년 이후 신규 대졸자 기준 구직활동을 포기한 비경제활동인구 비율이 30%를 넘을 정도로 높아졌고 취업자 중 임시직 비율도 2019년을 빼고 상승세다. 연구진은 “이러한 고용여건은 주택가격상승과 경제여건과 맞물려 경제적 측면에서 청년층의 결혼을 지연 및 포기하는 이유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또 한국의 남성 임금 대비 여성 임금은 68% 수준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5개국 중 룩셈부르크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여성의 출산 동기를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출산·양육 부담도 출산의 걸림돌이다. 영유아 시기에는 자녀 양육과 가사노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 근로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반면 자녀가 성장한 초등 시기에는 근로 시간 확보는 가능해지나 사교육비 등 경제적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 비율은 2022년 기준 자녀 1명일 때는 53.9%, 2명은 53.3%였지만 3명 이상일 땐 49.5%에 머물렀다. 자녀 양육과 노동시장 참여가 병행되기 어려운 셈이다. 또 한국의 근로자당 연평균 근로시간이 2022년 기준 1901시간으로 OECD 35개국 평균 연평균 근로시간(1660시간)보다 241시간 많은 상황에서 출산은 일·생활 균형 유지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영유아 시기 이후에도 한국 부모들의 부담은 장기간 이어진다. ‘2021년도 가족과 출산조사’에 따르면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양이 필요한 시기로 ‘대학 졸업 때까지’가 51.5%로 가장 높았고, ‘취업 때까지’가 24.2%로 뒤를 이었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저출생 반전을 위한 해법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재정의 확대가 첫 손에 거론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펴낸 ‘2023회계연도 결산 위원회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양육지원 현금성 지원 사업은 주로 0~1세에 지급되는 첫만남이용권(첫째아 200만원, 둘째아 이상 300만원), 부모급여(0세 100만원, 1세 50만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만 2세부터는 가정양육수당(월 10만원)이 있고, 아동수당(월 10만원)은 0세부터 7세까지 총 960만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주요국과 비교해 아동수당 지급은 제한적이다. 8세 이후 초중고로 진학하면서 사교육비 등 각종 양육비용이 더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아동수당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OECD 31개 국가 중 지급연령 기준 8세 미만인 나라는 한국 뿐이다. 일본 18세, 프랑스 19세(2자녀 이상), 독일 17세 이하 등 해외의 경우 영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아동수당을 연속적으로 지급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아동수당 지급연령은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동수당을 포함한 저출생 관련 예산 수준도 한참 낮은 상황이다. 명목GDP(국내총생산) 대비 가족지출 비중은 한국이 1.60%로 OECD 평균(2.29%)에 못 미친 33위 정도에 그쳤고, 현금비중 역시 0.30%로 34위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저출생 사업을 아동의 생애 기간 전반으로 확대하고, 지역 중심의 저출산 대응정책이 강화돼야 한다”면서 “아동수당의 전 연령대로의 확대와 초등 연령대 아동에 대한 돌봄체계 확립, 다자녀·저소득 가구 추가 지원, 실직·사고·재난 등 위기 시 자녀 양육가구에 대한 소득 및 돌봄 보장, 청년 정책과 저출생 대응 정책의 효과적 연계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계일보

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울러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저출생 대책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방안 역시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령 고용보험 가입 여부에 관계없이 출산·육아휴직을 보편화하고, 충분한 보육·돌봄 시설 확보와 함께 자녀 양육을 위한 유연근무 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일·가정 양립 체계가 보다 공고하게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합계출산율 제고에 효과가 있는 출산·육아휴직을 전 국민 차원에서 보장하기 위해 OECD 국가들에서 볼 수 있듯이 고용보험 외 건강보험 및 부모보험 등 여타 사회보험이나 조세 기반 국가재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출산·육아제도가 현재 공무원·교원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중·소규모 사업장이나 자영업자 등 전체 자녀 양육가구로 확대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유도와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