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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기고]잊혀지는 '북핵', 美 대선토론회서 아프간보다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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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미국 외교협회 CFR의 조슈아 컬란트직(Joshua Kurlantzick) 동남아 및 남아시아 수석연구원은 이번 TV토론에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이 무시됐으며 이것은 나쁜 뉴스라고 지적했다. 해리스와 트럼프 후보는 미국의 대중 전략에 대해서조차 거의 토론하지 않았고, 국내 물가를 다루는 과정에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문제를 일부 언급했을 뿐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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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TV토론에서 맞붙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차 토론을 거부함으로써 이번 토론은 첫 토론이자 마지막 TV토론으로 기록되게 됐다. 두 후보는 물가, 이민자, 낙태, 외교 문제 등에 대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외교 분야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사태가 초점이었다. 전세계가 촉각을 세우는 일이니 그럴만하다. 트럼프 후보는 '3차 대전' 운운하면서 미국 유권자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했다. 이와 비교해 대중국 견제와 북한 핵 문제 등은 자세히 다뤄지지 않았다.

해리스·트럼프, 90분 동안 북한 핵무기 언급조차 안 해


미국인들에게 아시아 정책은 뒷전인 걸까? 적어도 대중 정책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남중국해와 타이완 해협은 긴장 수위가 높다. 특히 남중국해에서는 중국과 필리핀의 경비함이 충돌해 필리핀 선박에 구멍이 뚫리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타이완의 방공식별 구역에는 중국 전투기는 거의 매일 넘나들고 있다. 그런데 TV토론에서 주요 주제로 다뤄 지지 않았다. 아마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중 압박 정책이 별로 차이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북한 핵문제는 사정이 다르다. 대북 문제에 대한 해리스와 트럼프의 접근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해리스는 바이든 행정부의 최대의 압박 정책을 따를 것이 유력하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사실상 대화조차 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트럼프는 김정은과 다시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후보에게는 지난 임기 동안 김정은과 3번 만난 것이 자랑거리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이 점을 은근히 과시했다.

트럼프, '북한' 2번 언급…해리스, '김정은' 1번 언급이 전부

그러나 두 후보가 1시간 30분 동안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북한 핵 문제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굳이 단어를 세어보자면, 트럼프가 '북한'(North korea)을 2번 사용했고, 해리스가 '김정은(Kim Jong Un)을 1번 쓴 것이 전부다. 그나마 모두 한창 다른 논쟁을 벌이다가 예로 열거하면서 나온 말이다.

트럼프는 러시아, 중국, 북한이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남의 말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언급했다. 트럼프 후보의 얘기로는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이런 주장을 했다고 한다. 오르반 총리는 지난 7월 미국을 방문했는데, 현직인 바이든 대통령과는 별도 회담을 갖지 않았다. 반대로 대선에 출마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마러라고 자택으로 찾아가 재선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독특한 정치인이다. 오르반 총리 치하의 헝가리는 NATO 회원국이지만 친중 국가로 분류된다.

해리스 부통령은 한국이나 북한을 아예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가 푸틴같은 독재자를 찬양한다고 공격하면서 뒤이어 김정은의 이름도 거명했다. 해리스는 트럼프가 독재자인 김정은과 이른바 '연애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맹비난했다. 그리고 이런 독재자들이 아첨과 호의를 통해 미국 대통령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물론 이런 짧은 언급을 통해서도 두 후보의 대북 정책을 조금은 유추해 볼 수는 있다. 트럼프는 협상을 통한 위기 해결에 방점을 두고 있다. 반면 해리스는 김정은을 독재자로 규정하며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두 후보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토론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북핵 문제 해결이 한국 외교의 30년 과제지만 미국에는 중대 사안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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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와 트럼프의 최초이자 마지막 TV토론의 진행을 맡은 미국 ABC 방송의 '월드 뉴스 투나잇' 앵커 데이비드 뮤어(왼쪽)와 ABC 방송의 기자·앵커인 린지 데이비스. 두 진행자는 후보들이 주제에서 벗어나거나 틀린 정보를 제시할 경우 적극 개입했다. 그런데 이번 TV 토론에서 북한 핵문제에 관한 질문은 없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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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진행자, 아프간 문제 4분 할애…북핵은 질문 안 해


ABC 방송의 진행자들은 북한 핵 문제는 아예 물어보지 않았다. 지난 2021년 8월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철군에 대해서는 4분 이상의 시간이 할애됐다. 진행자 데이비드 뮤어는 토론회 당일 미국 의회에서 열린 전사자 13명 메달 수여식을 언급하며 아프가니스탄 철군 문제에 대해 두 후보에게 답변할 기회를 줬다. 하지만 북한의 핵무기를 어떻게 폐기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질문 자체가 없었다.

앞서 미국의 공화, 민주 양당은 지난 7월과 8월에 각각 발표한 새 정강 정책에서도 북한 핵 폐기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제이크 설리반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달 베이징 주중 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북한의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설리반은 4개월 여 뒤면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물러날 사람이다.

북한은 지금 미국의 초강수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 포기를 거부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동안 한미 핵협의그룹(NCG) 가동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북한은 대화를 단절 한 채 버티고 있다. 과거에는 중국에, 현재는 러시아에 기대어 핵무기를 지키며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북한은 바로 지난 13일 고농축우라늄(HEU)의 제조 시설을 전격 공개했다. 고농축우라늄은 핵무기의 원료로 탄두의 폭발력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현지 지도에 나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술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핵물질 생산에 총력을 집중하라"고 다그쳤다.

북한이 만들고 있는 전술핵무기의 상당수는 우리나라나 미군을 겨냥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를 규탄하면서 북한의 핵 보유를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북한의 핵 위협이나 도발에 굳건한 한미동맹 체제를 기반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의 이런 확고한 태세를 북한이 모를리 없지만 여전히 굴복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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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 시설을 현지지도 했다고 지난 13일 전했다. 위 사진의 공장 내부에 빼곡히 들어선 원통형 시설은 핵무기의 원료인 고농축 우라늄(HEU)을 만드는 원심분리기로 추정된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무기급 핵물질의 생산에 총력을 집중해 비약적인 성과를 내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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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무기 보유국 지위 굳히나?…한국의 독자 해결은 역부족


물론 대화와 외교를 통해 북한의 핵을 폐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미국조차 의지가 약해진다면 북한 비핵화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이번 대선 과정은 미국에서 북한 핵 폐기라는 목표가 점점 잊혀지고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한국이 직접 나서볼 수도 있겠지만 동력은 약할 것이다. 북한이 한국을 핵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독자 핵능력을 보유하는 것도 쉽지 않다. 미국이 앞장 서서 반대하고 있다. 이대로 시간이 가면 북한만 핵보유국으로서 지위를 사실상 굳히게 되는 것인가? 안타깝지만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 저자는 YTN 베이징 특파원과 해설위원실장을 지내는 등 30년 동안 언론계에 몸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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