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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고농축 우라늄 생산시설 최초 공개한 북한…무엇을 노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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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원심분리기 등 시설 사진 공개

김정은 “신형 원심분리기 도입 추진”

미국 대선 앞두고 협상력 제고 의도

핵보유국 지위 확인…‘핵군축’ 강조

경제난·수해 등 민심 다독이려는 목적도

경향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시설을 현지지도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에 총력을 집중해 비약적인 성과를 낼 것을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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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3일 고농축 우라늄(HEU) 생산시설을 최초로 공개한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고농축 우라늄은 핵탄두 제조에 필요한 핵심 물질이다. 북한은 우선 핵물질 보유 능력과 이에 따른 핵탄두 생산 능력을 과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 대선을 50여일 앞둔 상황에서 미국의 관심을 끌고, ‘핵보유국’ 지위 강조를 통해 향후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최근 대규모 수해와 이에 따른 각종 사업의 목표 달성에 차질이 예상되자 ‘핵무력 발전’ 성과를 강조해 내부 결속을 도모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다만 북한의 향후 7차 핵실험 가능성을 두고는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무기급핵물질 생산기지’ 등을 현지 지도했다고 보도하면서, 고농축 우라늄 생산 시설이 담긴 사진 여러 장을 실었다. 북한은 2010년 미국의 핵물리학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그에게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 내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여준 바 있으나, 이를 직접 공개한 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이 현지 지도한 시설은 영변 핵시설이나 미국이 비밀 핵시설로 지목해온 평양 인근 강선 단지 가운데 하나로 추정된다. 제3의 장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신형 원심분리기 도입 사업 추진


통신이 보도한 사진을 보면, 고농축 우라늄을 제조하는 데 사용하는 원심분리기와 이들을 연결하는 장치인 캐스케이드가 시설 내에 빼곡히 들어서 있다. 고농축 우라늄은 핵탄두를 만들 때 사용하는 물질이다. 이 우라늄이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면서 순간적으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된다. 자연 상태의 우라늄에는 핵분열 물질인 U-235가 0.7%밖에 없는데, 핵무기에는 U-235 비율이 90% 이상인 우라늄이 쓰인다.

이런 고농축 우라늄을 제조하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원심분리법이다. 원심분리기에서 우라늄가스(육불화우라늄)를 극한의 속도로 회전시켜 U-235를 따로 추출하는 것이다. 이런 절차를 수천 번 이상 반복해야 한다. 원심분리법은 소규모 시설에서도 가능하다. 또 분리 효율이 높으며 전력 소모도 적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의 감시망을 피해 지하에 시설을 갖추고 은밀하게 농축 작업을 할 수 있다. 핵탄두에 쓰이는 또 다른 핵물질은 플루토늄은 대규모 재처리 시설을 갖춰야 한다.

군 당국은 북한이 1980년대부터 영변 등 핵시설 가동을 통해 핵물질을 생산하고 있으며, 고농축 우라늄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보통 핵무기 1개를 만드는 데 약 15~20kg의 고농축 우라늄이 사용된다.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750~1000개에 이르는 원심분리기를 1년 동안 돌려야 한다. 북한은 최대 1만개 원심분리기를 보유한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현지 지도에서 원심분리기를 더 늘리고, 분리기의 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른 새형의 원심분리기 도입 사업도 계획대로 내밀어 무기급 핵물질 생산 토대를 더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고농축 우라늄 제조 능력을 과시하면서 ‘핵무기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간 미사일 생산에 비례한 핵물질 생산의 한계를 지적하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서 핵물질 생산 역시 증가하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짚었다.

김정은 방문 날짜 공개 안해


북한의 이번 공개는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한 매체는 김 위원장이 고농축 우라늄 생산시설을 방문한 구체적인 날짜는 알리지 않다. 다만 해당 사실을 이날 보도한 것은 미국 대선을 50여일 앞둔 상황에서 미국의 주목을 이끌고, 추후 협상 국면에 대비해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향후 미국과 협상에서 핵보유국 지위에서 ‘비핵화’가 아니라 ‘핵군축’을 논의해야 한다는 점을 피력했다는 얘기다.

경향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시설을 현지지도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에 총력을 집중해 비약적인 성과를 낼 것을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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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을 향해 비핵화를 요구하는 게 비현실적이고, 그런 요구를 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가장 핵심으로 보인다”라고 짚었다. 박 교수는 김 위원장이 ‘전술핵’을 언급한 것을 놓고도 “한국을 향해 핵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이미 갖춰졌기 때문에 비핵화라는 비현실적인 얘기를 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며 “북한이 올해 들어 아직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지 않은 점도 고려하면, 향후 미국과 협상에서 미국은 건드리지 않을 테니 나머지 핵능력은 인정받는 식으로 풀어가려는 생각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라는 의견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면 북한과 비핵화보다 핵군축 등을 협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반면,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기존 비핵화 원칙을 유지할 것이란 예상이 많기 때문이다. 홍민 연구위원은 “이번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는 트럼프 후보에게는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를 보여주는 좋은 소재로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며 “북한은 의도적으로 이 시점에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함으로써 대선 국면에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는 한편, 양 진영에게 북핵 접근의 변화를 압박하려고 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예고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만 북한이 중국과 대북제재 등을 의식해 핵실험을 강행하지는 않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농축 우라늄을 강조한 건 대미 압박용으로 7차 핵실험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라며 “핵실험이 중국의 반대 등으로 여의치 않더라도, 우선 시설 공개를 통해 단계적으로 핵능력을 과시하고 위협 수위를 높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홍민 연구위원은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는 핵실험을 대체하는 최상위 카드”라며 “핵실험을 하면, 국제사회로부터 정치적 오명을 집중적으로 받아 대북제재 강화론이 힘을 받게 되고, 그러면 해리스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중국과 관계가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다”라며 “또 트럼프 후보에게 외려 불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후보가 김 위원장과 친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책임의 화살이 트럼프 후보에게 쏠릴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을 예단하지 않고 예의주시한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날 “핵실험 시기는 북한 지도부의 결심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예단하는 건 제한이 된다”라며 “미국 대선 등 대내외 정세를 포함한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 시기를 저울질할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미 정보당국이 긴밀히 추적 중”이라고 했다.

또 만성적인 경제난에 최근 대규모 수해까지 겹친 상황에서 민심 이반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를 통해 국방분야 성과를 강조하면서 내부 결속을 다지려 한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의 현지 지도 내용은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도 실렸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북한의 공개 의도 등을 면밀히 파악하는 중”이라며 “북한 전반 동향을 관찰하고 분석 중에 있다”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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