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목표물을 정밀타격하는 유도무기들이 널리 쓰인다. 하지만 예전에 만든 대포들이 전장에서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그만큼 대포가 현대전에서도 유용하다는 의미다.
최근 들어 대포는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한국군 K-9 자주포처럼 궤도형 차량에 포탑을 얹거나 프랑스산 시저 자주포처럼 화포를 트럭에 탑재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모양새다.
트럭보다 작은 군용차량에 강력한 화력을 지닌 화포를 장착하는 시도가 등장한 것이다. 기동성과 화력이 모두 중시되는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현대위아가 만든 소형전술차량 탑재 경량 105㎜ 자주포. 현대위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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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에 ‘빠른 발’ 추가한 경량 자주포
한국도 ‘한국형 험비’인 소형전술차량에 곡사포를 탑재한 무기를 만들고 있다. 이르면 다음달 초 충남 계룡시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국제방위산업전시회(KADEX 2024)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화포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국내 방위산업체인 현대위아는 소형전술차량에 KH178 105㎜ 곡사포를 탑재한 경량 자주포를 개발했다.
KH178은 1970년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미국산 M2 105㎜ 곡사포의 포신을 연장하는 등의 개량을 통해 만든 포다. 현재는 일선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
현대위아는 육군의 기술검토 요청을 받아 KH178을 소형전술차량에 탑재하는 방식으로 차륜형 자주포를 개발해 높은 수준의 화력과 기동성, 경량화를 확보했다.
육군 경보병여단이나 공정부대 화력지원용으로 만들어진 경량 자주포는 육군이 기존에 운용 중인 5t 트럭 탑재 K105A1 차륜형 자주포보다 우수한 성능을 지니고 있다. 운용 인원은 8명(포대지휘 4명, 화포운용 4명)이다.
K105A1은 수십년 전에 개발됐던 5t 군용 트럭을 플랫폼으로 쓴다.
유사시 비포장도로를 달리거나 진지로 이동할 때, 야지 기동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산지나 계곡 등을 이동할 경우에도 차체 너비에 따른 제약을 피하기가 어렵다.
현대위아가 만든 소형전술차량 탑재 경량 105㎜ 자주포. 현대위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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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경량 105㎜ 차륜형 자주포는 전투중량이 K105A1(18t)의 절반 이하인 7t에 불과해 교량 등의 이용에 제약이 적고, 대형 기동헬기로도 수송을 할 수 있다.
차체 폭도 민수용 대형 SUV보다 10∼20% 늘어난 수준에 불과해 폭이 좁은 산악도로나 계곡도 어렵지 않게 지날 수 있다.
포신도 K105A1보다 더 길다. 덕분에 최대사거리는 K105A1보다 3㎞ 정도 늘어난 14.7㎞에 달한다. 먼 거리에 있는 적군을 공격하는데 쓰는 로켓보조탄(RAP)을 쏘면 18㎞ 떨어진 표적도 타격할 수 있다.
현대위아의 경량 105㎜ 자주포는 표적을 향해 발사한 후 적의 반격을 피하기 위해 신속하게 위치를 변경할 수 있는 ‘슛 앤드 스쿠트’ 기능을 갖추고 있다.
포탄 궤적 등을 통해 포격 위치를 빠르게 파악하는 대포병레이더나 무인정찰기가 전장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상황에서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기능이다.
위성항법장치(GPS)를 이용한 자동 사격 제어와 더불어 정확한 표적 조준을 위한 관성항법체계(INS) 등의 첨단 기술도 적용됐다.
육군 K105A1 105㎜ 차륜형자주포가 해상 표적을 향해 사격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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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사격통제컴퓨터 등으로 구성된 자동사격통제체계가 함께 운용되면서 분당 최대 10발을 포격할 수 있다. 포 아래에는 지지대 4개를 장착, 발사 시 반동이 모두 차체에 전해지지 않고 지면으로 향하도록 한다.
경량 105㎜ 차륜형 자주포가 유사시 표적을 타격할 때 사격지휘차량과 탄약운반차량이 함께 움직인다. 지휘차량에선 사격제원을 계산하고 명령을 내리는 역할을 한다.
대대급 이하 전투지휘체계(B2CS)로 전장정보를 확인하고, 전술사격지휘체계(BTCS)로 사격제원을 확보한다. 탄약운반차량은 수십발의 포탄과 부수지원장비 등을 싣는다.
현재 경량 105㎜ 차륜형 자주포는 시험평가가 진행 중이며, 올해 말에는 육군에서 시범운용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대위아는 다음달 열릴 대한민국 국제방위산업전시회를 통해 국내외 군 및 업계 관계자들에게 경량 105㎜ 차륜형자주포를 소개하면서 수출 가능성 등을 타진하는 한편 군 당국의 소요제기에 맞춰 전력화 관련 준비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위아 관계자는 “육군에 (경량 자주포를) 선보였을 때 K105A1보다 화력이 뛰어난 장비를 소형전술차량에 올린 것에 놀라워했고, 이런 장비가 육군·해병대에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우리 군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장비로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위아가 만든 소형전술차량 탑재 경량 105㎜ 자주포. 현대위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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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경쟁 제품보다 우수
현재 해외에는 경량 105㎜ 차륜형자추포와 비슷한 무기가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에 출시되어 있다.
냉전이 끝난 직후부터 한동안은 자주포의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미국은 포병 대신 공군의 정밀유도무기에 더 의존했다.
이같은 기조가 지속되면서 신형 궤도형 자주포 개발은 정체됐다. 대신 제3세계 국가에서의 평화유지활동과 반군 토벌, 대테러 등에 필요한 차륜형자주포 수요가 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차륜형·궤도형 자주포 수요를 모두 끌어올렸다. 대규모 전면전 상황에서 방호력을 지닌 궤도형 자주포는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신속한 이동과 사격이 가능한 차륜형 자주포도 필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155㎜ 차륜형자주포가 개발·생산되고 있고, 이보다 위력은 낮으나 아직까진 전투에서 쓰임새가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105㎜도 차륜형자주포로 바뀌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군의 경우 신속한 사격·이동이 강조되면서 민수용 픽업 트럭에 작은 로켓발사관 여러 개를 설치, 빠르게 쏘고 나서 곧바로 이탈한 뒤 또다른 표적을 공격하는 전술을 쓰고 있다.
작지만 이동 및 험지 주파능력이 우수한 차량에 강력한 화력을 더하는 방식이 주목받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AM 제너럴에서 개발한 호크아이(HAWKEYE)다.
미군 장병들이 험비 탑재 105㎜ 차륜형자주포인 호크아이에 포탄을 장전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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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쓰는 군용차량인 험비에 105㎜ 곡사포를 얹은 형태다. 포를 쏠 때 발생하는 반동을 포 하부에 설치된 지지대 4개를 통해 지면으로 흘려보낸다.
포는 360도 회전이 가능해서 별도의 설치작업이 필요치 않다. 기존 견인포보다 빠르게 방열해서 사격하고 이탈할 수 있다.
미군을 비롯해 다수의 국가에서 민·군용으로 사용되는 험비를 플랫폼으로 활용해 차체에 대한 정비나 후속군수지원도 용이하다. C-130 수송기나 헬기에 의한 이동이 가능하다.
사격통제장치나 통신장비 등은 첨단 디지털 방식이 적용됐다. 105㎜ 곡사포나 험비는 오래 전부터 사용되던 것으로서 차별화된 성능을 내세우기가 쉽지 않다.
명중률과 작전효율성 등에 영향을 미치는 사격통제 및 통신 등의 분야에 신기술을 적용, 성능 향상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수십년째 쓰이는 미국산 AR-15나 러시아산 AK 소총에 각종 조준장비와 손잡이 등을 추가해서 성능을 높이는 방식과 비슷하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에 일부 물량이 인도됐다.
영국의 군용차량 브랜드인 슈퍼캣도 AM 제너럴과 함께 105㎜ 차륜형자주포를 만들었다.
미군 장병들이 험비 탑재 105㎜ 차륜형자주포인 호크아이를 조작하고 있다. AM 제너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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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로드 군용트럭인 HMT 익스텐더에 105㎜포를 탑재한 형태다. 표적을 향해 발사한 후 신속하게 위치를 바꾸는 ‘슛 앤드 스쿠트’ 기능이 있다.
전반적으로는 경량 105㎜ 차륜형자주포보다는 K105A1에 더 가까운 컨셉이다. 다만 플랫폼의 차이가 크다.
K105A1은 오래 전에 개발된 5t 트럭을 쓰고 있고, 조만간 중형전술트력으로 바뀔 예정이다. 반면 슈퍼캣의 차륜형자주포는 오프로드 능력이 뛰어난 차량을 쓴다.
현대위아가 개발한 경량 105㎜ 차륜형자주포는 사거리가 호크아이보다 더 길다. 먼 거리에 있는 적군을 타격하기가 쉽다. 360도 사격능력도 갖추고 있어서 해외 시장에서 호크아이와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평가다.
향후 경량 105㎜ 자주포가 육군에서 전력화되거나 수출된다면, 경보병부대나 공정부대, 특수전부대 등의 작전을 지원할 화력을 충분히 제공해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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