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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사이코패스’라는 편리한 설정 [이지영의K컬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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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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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회 시작할 때마다 나오는 내레이션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는 나에게 큰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이 내레이션은 ‘존재는 지각된 것’, 즉 지각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철학자 조지 버클리의 ‘아무도 없는 숲에서 큰 나무가 쓰러지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철학 전공자인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대체 이 철학적인 질문을 드라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어떤 식으로 풀어낼 것인가가 궁금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넷플릭스에서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는 8부작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현재 시점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영하(김윤석)의 사건과 2001년에 발생했던 구상준(윤계상)이 어쩌다가 우연히 연쇄살인범을 자신의 펜션과 모텔에 들이게 되고 이후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영하는 유성아(고민시)의 살인에 대해 아무것도 직접 보지 못했으니까 없었던 일인 양, 즉 쿵 소리가 나지 않은 것처럼 시늉했다. 하지만 모른 척 눈감은 결과는 오히려 더 큰 악몽처럼 영하의 삶을 무너뜨린다.

이 드라마는 ‘큰 나무는 쓰러졌고 쿵 소리는 너무나도 크게 났다’는 명백한 결론으로 내달렸다. 내가 상상했던 이야기와 결론은 아니었지만, 이 결론도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서 나쁘지는 않았다. 우리가 주변의 악행을, 사회적 부정의와 불평등을 못본 척 눈감는다면 그 결과는 유성아의 폭주 같은 그 끔찍한 악행들이 우리 자신에게로 결국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니까.

사실 나는 이 드라마가 깊은 숲속에서 큰 나무가 쓰러졌고 쿵 소리가 났을지 안 났을지 헷갈리게 하는 인식론적 질문을 던져줄 거라 예상했었지만, 실제로 드라마는 큰 나무가 쓰러지면서 내는 쿵 소리를 우리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이 드라마가 윤리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쿵 소리를 내며 나무가 쓰러졌다면 누가 왜 그 나무를 쓰러뜨린걸까라는 질문을 드라마에 던져야 하지 않을까. 즉 누군가 악행을 저질렀다면 왜일까를 분명히 해야만 악행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필연성이 생겨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제시된 답은 매혹적인 ‘사이코패스’라는 편리한 설정이었다. 모든 악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매혹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면, 이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에 적합하지 않은 것 아닐까.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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