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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감사원 “대통령 집무실·관저 이전 계약도 없이 공사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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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이전 불법행위 의혹 감사 결과

전 비서관에 징계성 조치 요구

조선일보

2022년 4월 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현관에 이사 업체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국방부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실 용산 이전 결정에 따라 인근 청사로 옮겨졌고, 국방부 청사엔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왔다. /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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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이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국가계약 및 공사 관련 법령을 다수 위반했다며, 이전 작업 실무를 책임졌던 김오진 당시 대통령실 관리비서관의 비위사실을 인사혁신처에 통보하라고 12일 대통령실에 요구했다. ‘인사자료 통보’라 불리는 이 조치는 징계해야 할 공무원이 이미 퇴직해 징계가 불가능한 경우, 나중에 해당 인사가 공무원으로 다시 임용될 소지가 생겼을 때 불이익을 받도록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다. 감사원이 집권 중인 정부의 대통령 참모였던 인사에 대해 징계성 조치를 요구한 것은 처음이다.

감사원은 12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대통령실·관저의 이전과 비용 사용 등에 있어 불법 의혹 관련’ 감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감사원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관해 감사해달라는 참여연대의 청구를 받아들여 2022년 12월부터 1년 8개월간 감사를 진행해 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옛 국방부 청사를 대통령 집무실로, 옛 외교부 장관 공관을 대통령 관저로 개장하기 위해 공사 계약 56건이 체결됐다. 계약 금액은 총 341억원이었다. 공사는 행정안전부와 대통령경호처, 대통령비서실이 발주했고, 모든 공사의 업체 선정과 계약은 공개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이뤄졌다.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는 최고 등급의 국가 보안 시설이므로, 이와 관련된 공사 계약을 수의계약으로 한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계약 절차 위반, 공사 관리·감독 부실

그러나 실제 계약과 공사 단계에선 윤석열 정부가 국가계약법 등 관련 법령이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이다. 대통령 관저는 2022년 5월에야 옛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옮기기로 결정돼 공사가 급하게 추진됐고, 필요한 예산이 확보되고 민간 업체와 정식 계약을 체결하기도 전에 공사가 먼저 시작됐다. 그러고는 뒤늦게 상세 견적을 내고 계약서를 작성하고 대금을 지급하는 절차가 뒤따랐다. 일의 앞뒤가 바뀌어 진행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공사를 수주한 업체가 ‘사전에 작성한 계약서대로’ 공사를 진행하는지를 따져 업체를 관리·감독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관저 보수 공사를 맡긴 대통령비서실이나 공사를 수주한 민간 업체 모두, 실제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통상적인 인테리어 공사 정도만 하면 될 것으로 예상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실제 공사를 진행하다보니 증축 공사와 구조 보강 공사 등이 추가됐다. 공사 수주 업체는 이렇게 늘어난 일감을 18개 이상의 다른 업체에 하도급했는데, 이는 대통령비서실의 승인을 받지 않은 불법 하도급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 과정에서 전기공사업으로 등록돼 있는 업체가 통신 공사까지 하는 등 하청 업체들이 각자 등록돼 있는 업무 범위에서 벗어난 공사까지 하는 일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무자격 업체’들이 관저 공사 일부를 불법으로 도급받아 한 것이 됐다.

감사원은 다만 관저 보수 공사를 맡은 업체들이 공사비를 부풀리는 등의 방법으로 부당한 이득을 챙기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했다. 업체들이 받은 대금은 30억5475만원이었고, 이 가운데 27억8926만원이 하도급에 지출됐으며, 업체들의 차액은 공사비의 약 8.5%인 2억6549만원이었다.

집무실 이전 공사에서도 일감을 수주한 업체들이 일부 공사를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불법으로 하도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공사 계약을 진행한 행정안전부가 준공 정산 시 원가 산정을 제대로 하지 않아, 2개 업체에 공사비 3억2000만원이 과다하게 지급된 것으로 드러났다.

업체 선정은 추천 방식으로 이뤄져

한편 집무실과 관저 이전 관련 공사를 맡길 업체의 선정은 일정한 절차 없이 ‘추천’을 받는 형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대통령실 내 사무실 칸막이 공사가 필요해지자 대통령비서실 담당자는 과거 국토교통부 근무 당시 행사에서 알게 된 민간 협회장에게 업체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고, 이 협회장은 친형제가 운영하는 업체를 추천했다. 대통령비서실은 그로부터 2주 만에 해당 업체와 6억8208만원에 계약했다.

관저 공사 업체는 2022년 4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청와대 이전 TF팀에서 선정했는데, 당시 TF팀장이었던 김오진 전 비서관은 “보안과 전문성, 신속성 등을 고려해 업체들을 ‘탐문’”했다고 감사원에 진술했다. 그는 인수위 관련자들과 경호처 등으로부터 몇 개 업체를 추천받았고, 내부 논의를 거쳐 특정 업체를 선정했다고 했다.

감사원은 이런 방식으로 업체를 선정한 것이 위법하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또 관저 공사 업체 선정 과정에 김건희 여사가 개입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감사원 관계자는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 관계자, 공사를 수주한 민간 업체 관계자에 대한 문답 조사 어디에서도 김건희 여사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방탄 창호 공사에선 10억원대 공사비 유용

경호처와 행안부가 별도로 진행한 방탄 창호 설치 공사에서는 경호처 간부의 비리가 적발됐다. 방탄 창호 공사 담당자인 경호처 A부장은 2022년 3월 평소 알고 지내던 브로커 B씨를 방탄 창호 설치 공사의 사업 관리자로 선정했고, B씨는 C사가 방탄 창호를 20억4000만원에 집무실과 관저에 설치하는 공사 계약을 경호처 및 행안부와 체결하게 했다. 그러면서 B씨는 유령 회사 D사를 만들어, 실제로는 C사가 만든 방탄 창호 1억3000만원어치를 D사가 C사에게 17억원에 납품하는 계약을 별도로 체결하게 하는 방식으로 공사비를 부풀렸다. 감사원은 공사의 원가는 4억7000만원에 불과하고, 15억7000만원은 B씨가 챙긴 것으로 봤다.

A부장은 또 경호처 사무 공간 조성 등의 공사를 다른 E사에 맡기면서, 경호처가 E사가 1억원 부풀린 공사비대로 계약을 체결하게 했고, 대신 E사에 추가 공사를 계약 외로 맡겼다. E사에 맡긴 일부 공사비는 B씨에게 대납하게 했다. E사에게는 경호처 전 직원이 갖고 있는 토지를 비싼 값에 사들이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감사 과정에서 A부장의 비리를 포착하고, 지난해 10월 A부장과 B씨 등을 먼저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대통령실 “특혜는 없었음이 확인됐다”

감사 결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이번 감사 결과를 통해, 대통령실·관저 이전 관련 특혜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실은 “정부는 대통령실·관저 이전과 관련된 주요 공사 종류별로 시공 자격을 갖춘 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했고, 대통령실 등 국가안보와 직결된 고도의 보안 시설 공사의 경우, 긴급과 보안을 요하는 이전의 특수성만 감안하더라도 수의계약으로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며 역대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또 “감사원은 과다한 공사비 지급 등 특혜 제공 여부를 확인한 결과, 업체 이윤은 통상적인 수준 이내로 확인됐다고 밝혔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공사 계약과 감독 과정에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선 “사업의 시급성, 보안성 등으로 인해 빚어진 절차상 미비점”이었다며 “점검 후 재발 방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경호처 간부의 비위행위에 대해선 “직무에서 배제돼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며, 수사 결과에 따라 추가 조치가 취해질 예정”이라고 했다.

[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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