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병 악화 80대 이송 시도…담당 병원에선 거절
다른 병원은 "다니던 데로 가라"고 연거푸 거절
'환자 수용 불가' 통화녹음 들어보니…사유 제각각
전공의 사직 사태 후 병원 재이송 건수 46% 증가
119구급대원들 "환자 이송 결정 권한 부여 필요"
정부가 추석 연휴에 응급실 환자가 몰리는 상황에 대비해 11일부터 2주간 '추석 명절 비상 응급 대응 주간'을 운영하기로 한 가운데 11일 오전 서울시내 한 병원 응급의료센터로 환자가 들어가고 있다. 황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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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남성이 움직이지 못해요. 집에선 악취가 심하게 나요"
119구급대원 A씨는 지난달 14일 오후 8시쯤 이 같은 주민센터 직원의 신고를 받고, 서울의 한 주택으로 출동했다. 출동 당시 80대 남성 B씨는 곳곳에 오물이 묻은 집 안에서 홀로 방치된 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38도의 고열 등으로 인해 기력은 저하됐고 거동도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A씨와 동료 구급대원이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B씨는 치매와 파킨슨병, 간 질환 등을 동시에 앓아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정기적인 치료를 받고 있었다. 파킨슨병은 치사율이 높지는 않지만, 치료에 사용하는 약물을 갑자기 중단하면 고열 등을 동반하는 부작용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A씨와 동료들은 곧바로 B씨를 치료했던 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어 수용이 가능한지 문의했지만 거절 당했다. 당시 병원 관계자는 "심정지(코드블루) 환자가 있다"며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치료 받는 환자(팔로업 환자)라고 해도 상관없다"고 답했다.
이후 다른 대형 병원 세 곳에 이송을 추가로 문의했지만 "환자가 다니는 병원에 문의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B씨 응급실 이송은 실패했다.
정부가 추석 연휴에 응급실 환자가 몰리는 상황에 대비해 11일부터 2주간 '추석 명절 비상 응급 대응 주간'을 운영하기로 한 가운데 11일 오전 서울시내 한 병원 응급의료센터에 구급차가 주차돼 있다. 황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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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CBS노컷뉴스는 A씨 사례를 비롯해 지난달 구급대원들과 서울의 10개 병원 응급실이 나눈 '환자 수용 불가' 내용의 통화 녹음본 10개를 입수해 살펴봤다. 병원 응급실이 내세운 환자 수용 거부 사유는 주로 병원 인력 부족이었다.
구체적인 녹음 내용을 들어보면, 한 병원은 "열상 봉합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환자 수용을 거절했고, "CPR(심폐소생술이 필요한) 환자를 보고 있어 대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른 병원을 알아보는 게 좋다"고 답하거나 "5분 뒤에 다시 전화를 달라", "내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 병원도 있었다.
전공의 이탈 여파가 상대적으로 약한 하급병원 응급실에서도 환자 수용이 어려웠는데, "상급병원으로 가라"고 거절한 병원이 3곳이었고, 또 다른 한 곳은 구급대원들이 볼 수 있는 상황판에 '(환자) 수용 불가' 표시가 되지 않았는데도 "환자가 많다"며 난색을 표했다.
전공의 집단사직 후 '구급대 재이송' 증가…'전화 거부'는 제외돼
이처럼 환자가 병원으로 쉽게 옮겨지지 못해 헤매는 상황은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이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공의 사직이 시작된 올해 2월 19일부터 지난달 25일까지 190일 동안 119구급대가 병원으로부터 환자 수용을 한 번 이상 거부 당해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긴 '재이송 건수'는 총 3071건이었다. (관련 기사: [단독]전공의 집단사직 이후…'119구급대 재이송' 46% 증가)
이는 전공의 집단 사직 이전인 지난해 8월 11일부터 올해 2월 17일까지 190일 간 집계된 재이송 건수 2099건 대비 46.3% 증가한 수치다. 두 번 이상 재이송된 건수도 같은 기간 비교 결과 61건에서 114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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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 사태 후 190일 동안 집계된 재이송 건들과 관련해 병원이 내세운 수용 거부 사유들을 살펴보면, '전문의 부재'가 가장 많았다. 해당 이유로 구급대 재이송이 이뤄진 건은 전체의 40% 비중인 1216건에 달했다. 이전 190일 동안 같은 사유로 발생한 구급대 재이송 883건 대비 37.7% 증가한 것이다. 전공의 사직 사태 이후 현장을 지키던 전문의 이탈도 잇따르면서 의료 현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도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집계는 '병원 현장'에서 환자 수용을 거부 당한 숫자로, 통화상 거부 당한 이른바 '전화 뺑뺑이'는 반영되지 않아 현실은 더 혼란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일하는 구급대원 C씨는 통화에서 "코로나19 유행기 때부터 환자들이 응급실 가는 게 어려웠지만, (의‧정 갈등 이후엔) 전화 문의 단계부터 병원들이 환자 이송을 거절하고 있다"며 "(통화상 환자 수용 거부 사례들은) 기록에 남겨지지 않고 보건복지부에서 따로 제재하는 것도 아니어서 병원 입장에선 까다로운 환자들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화 뺑뺑이 고통' 구급대원들 "병원 선정 권한 부여돼야"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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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구급대원들 사이에선 대원들의 환자 이송 결정 권한이 확보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전공노 소방본부)는 '응급실 뺑뺑이' 현상 해결책으로 △병원 응급의료 평가 항목에 응급 환자 수용률 도입 △구급 대원에게 실질적인 병원 선정 권한 부여 △병원의 정당한 이유 없는 거부 행위 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전공노 소방본부는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밝혔다. 전공노 소방본부 서울소방지부 김종수 지부장은 "응급의료법에는 병원이 수용 불가 시 그 사유를 즉시 통보해야 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수용을 거부할 수 없음에도 현실은 거부 당하고 있다"며 "정당한 이유 없는 거부 행위에 관한 즉각적인 조사와 후속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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