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벌찬의 차이나 온 에어]
중국산 게임 ‘검은 신화 오공’
출시 2주 만에 1800만부 판매, 매출 1.2조원
지난 5일 중국 선전의 한 게임 기기 전문점에 손님들이 몰려 들어 계산하고 있다. /선전=이벌찬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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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셴훠(現貨·당장 들고 갈 수 있는 제품) 있나요?”
5일 오후 중국 최대 전자상가인 선전 화창베이(華强北) ‘완상 컴퓨터성(城)’의 한 게임 기기 전문 매장. 작은 가게에 몰려든 손님들은 대뜸 게임기 재고부터 확인했다. 지난달 20일 중국산 PC·콘솔(TV와 연결해서 사용하는 게임기) 게임인 ‘검은신화:오공’이 흥행 신화를 쓰면서 온·오프라인에서 플레이스테이션5(PS5)가 동이 난 탓이다. 주인 천씨는 “매주 100대씩 PS5를 들여오는데, 사흘이면 다 팔려 판매 가격이 끝없이 오르는 중”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 가게의 PS5 가격은 오공 출시 직후 3200위안(약 60만원)에서 4200위안(약 80만원)으로 올랐고, 주변 기기인 컨트롤러도 100위안 이상 뛰었다. 매장의 위챗 계정엔 ‘20년 동안 게임 기기 판매점을 운영한 끝에 중국 최초의 3A(a lot of time, a lot of money, a lot of resources·시간, 비용, 자원을 총동원한 수작) 게임을 보게 됐다”면서 “‘오공’에 존경을 표한다”고 썼다.
중국 게임 ‘검은신화:오공’이 지난달 20일 출시 이후 2주 만에 1800만 부 판매의 대기록을 세우면서 경제가 침체된 중국에서 소비를 ‘봉인 해제’하고 있다. 게임 자체로 61억위안(약 1조2000억원) 매출을 달성한 것은 물론이고, 전자 기기 판매·요식업·관광업 등의 회복을 촉진하고 있다. 이 게임은 텐센트 출신이 창업한 소형 게임사 ‘게임사이언스’가 6년 동안 750억원을 들여 개발한 것으로, 중국 고전 ‘서유기’ 속 주인공 ‘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다니며 여의봉과 분신술 등으로 적을 물리치며 나아가는 내용이다.
가장 큰 ‘오공 효과’는 중국 게임 산업의 부흥이다. 베이징의 게임 업계 관계자는 “‘오공’의 흥행으로 국내외에서 중국 게임의 족쇄가 풀렸다”면서 “정부는 민간 경제 회복을 위해 작년만 해도 강하게 규제했던 게임 산업을 적극 밀어주고 있고, 사기가 오른 중국 게임사들은 해외 시장 진군을 노린 블록버스터 게임 개발에 매진할 것”이라고 했다. 2021년 중국 관영 매체가 게임을 ‘정신적 아편’이라고 비난한 이후 당국은 게임 업계를 겨냥한 각종 규제를 내놓았지만, 지난달에는 2년 만에 최다인 117종의 게임에 판호(허가증)를 발급해 주식 시장에서 게임주가 급등했다.
중국 게임사 게임사이언스 신작 '오공'. /게임사이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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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중국 선전의 한 조립 PC 판매점의 사장(오른쪽)이 '오공 전용 PC 5단계 가격표'를 내걸었다. /선전=이벌찬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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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게임 회사들이 향후 개발 비용이 많이 들고 컴퓨터 그래픽 작업이 어려운 PC·콘솔 게임(세계 시장 점유율 45.5%·2023 한국 게임 백서)의 약세를 뒤집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원신’ 등 모바일 게임(점유율 44%)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중국이 불모지 개척에 나선다는 것이다.
‘원숭이’ 한 마리가 일으킨 중국 전자 기기 판매 호조도 계속되고 있다. 이날 화창베이 사이거전자상가의 조립 컴퓨터 전문점에는 ‘오공 전용 PC 가격표’가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3D 게임 구현에 필수인 그래픽카드의 사양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가장 비싼 ‘5단계 PC’는 1만5488위안(약 292만원)이었다. 사장은 장부를 보여주며 “한 대도 팔기 어려웠던 고사양 컴퓨터를 매일 수십 대씩 팔아치운다”면서 “오공을 즐기려면 최소 지포스 RTX 4060Ti를 탑재한 PC가 필요하고, 2K·4K 화질을 원하면 1만위안 이상 써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게임 출시 이후 징둥(중국판 쿠팡)의 게임 기기 매출은 다섯 배로 뛰었다.
요식업계와 콘서트 시장·자동차 업계에서도 오공은 소비 봉인을 해제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중국 대표 커피 브랜드인 루이싱커피가 내놓은 오공 패키지 상품은 품절 사태를 빚었고, 바오리 엔터테인먼트가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 5곳에서 개최하는 게임 주제곡 콘서트는 지난달 28일 티켓 오픈 2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중국 전기차 업체 웨이라이의 리빈 CEO(최고경영자)는 “웨이라이 차 내부 디스플레이는 충분히 오공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오공에서 집중 조명된 산시(山西)성의 관광지들은 중추절(추석)을 앞두고 인기가 치솟았다. 게임 속 36곳의 관광 명소 가운데 옥황묘(玉皇庙)와 숭복사(崇福寺) 등 27곳이 산시에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여행 플랫폼 퉁청의 ‘2024 중추절 여행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산시성 다퉁시와 숴저우시 등의 여행 예약 건수는 전년 대비 100% 이상 증가했다.
중국 지도부는 오공의 흥행을 민간 경제 회복과 더불어 자국 소프트파워 확대의 계기로 삼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전통문화에 대한 태도가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뀌었는데, 오공 흥행 또한 게임 산업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바꾸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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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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