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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민족에 필요하다면"… 삼양, 대형염전 개발해 소금난 해결 '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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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가 정신을 찾아서 ◆

매일경제

1969년 전북 전주시 삼양사 폴리에스터 공장 준공식에서 창업자 수당 김연수 선생(앞줄 가운데)을 비롯한 삼양사 경영진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삼양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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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찾은 전북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여름 햇볕이 쏟아지는 고목 옆으로 세월의 흔적이 담긴 한옥이 자리했다. 올해로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삼양그룹 창업주 수당(秀堂) 김연수 선생이 1896년 태어나 유년을 보낸 생가다.

수당은 인생의 말년인 1977년 현재 모습으로 생가를 복원했다.

1907년 부친이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며 이웃에게 무상으로 집을 내어준 지 70년 후의 일이다. 그동안 수당 생가는 사랑채, 안채 등마다 한 집씩 여러 가족이 신세를 졌다. 현장에서 만난 관리인은 "1977년 복원에 앞서 당시 생가 거주민들에게 인근에 집을 마련할 정도의 금전을 지원해줬다"고 말했다.

수당의 세심한 배려는 생가의 생김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사랑채 뒤편으로 가면 가슴께 높이의 소박한 굴뚝이 2개 있다. 지붕보다 높아 하늘로 연기를 내뿜는 다른 집 굴뚝과 달리 연기가 담을 넘지 않는다. 끼니를 거르기 일쑤인 마을 주민의 배곯는 고통을 가중시킬까 조심하는 마음에서 낮게 지었다고 한다.

수당의 공동체적 사고는 특유의 기업 경영으로 이어졌다. 수당은 생전에 "기업 하는 사람이 다 같은 생각은 아니겠지만 나는 몇 가지 신조가 있다"며 "이 사업이 민족적으로 필요한 것인가, 종업원들이 그 보수로 생활할 수 있는가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양그룹은 수당의 신조를 현실에서 구현한 결과물이다. 광복 이후 혼돈 속에서 사업 기반을 잃은 수당은 국민에게 필요한 염전 개발에 새로 투자했다. 일제가 북한 지역에 염전을 집중적으로 개발한 탓에 당시 남한에서는 소금 부족이 국가적인 문제였다. 수당은 인근 고창군 해리면 일대 농장을 국내 최초 민영염전인 해리염전으로 조성했다. 1949년 생산 첫해 8998가마의 천일염을 삼양소금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공급했다.

해리염전은 수당의 꺾이지 않는 의지를 증명한 사업이다. 해방 직전 삼양그룹은 현재 중국 만주 지역에 남만방적, 삼척기업, 오리엔탈비어 등 3개 회사와 6개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민족자본으로 쌓아 올린 사업체들이지만 광복과 함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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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열린 '삼양 이노베이션 페어 2023'에서 김윤 삼양그룹 회장(오른쪽 둘째)이 반도체 소재 등 전시품을 둘러보고 있다. 삼양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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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수립된 정부는 유상몰수·유상분배 원칙의 농지개혁을 시행했다. 문제는 보상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수당은 정부 시책에 부응해 소유했던 농지 대다수를 정부에 넘겼다. 연간 수확량 15만석에 달하는 땅이었으나 대가는 10만석에도 못 미쳤다. 삼양그룹의 외형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남겨진 농장을 염전으로 바꾸는 시도는 수당의 승부수였다. 바닷물을 염전으로 보내기 위한 저수시설을 축조하고 변전소를 설치했다.

당시 일반적이었던 불을 때 만드는 전숙염 대신 햇볕에 말리는 천일염 방식을 채택했는데 이를 구경하기 위한 인파가 먼 지방에서 찾아오기도 했다. 과감한 투자에 해리염전은 당대 최대 염전이자 국내 최고 제염기술자가 일하는 곳으로 거듭났다.

1950년대 삼양그룹의 설탕·섬유 사업 진출 역시 소금과 마찬가지로 국민 생활을 돕기 위한 수당의 결정이었다. 1955년 울산에 일일 생산능력 50t의 국내 최대 제당 공장을 준공해 수입에 의존하던 설탕 국산화에 성공했다.

1969년에는 화학섬유인 폴리에스터 사업에 뛰어들어 전북 전주시에 대단위 공장을 세웠다. 국민이 고품질 의복을 저렴하게 입을 수 있도록 기여한 것이다. 수당은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의식주가 필수"라며 "기업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도 삼양그룹은 수당의 유지를 이어받아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상품을 만들고 있다. 창립 100주년 기념 광고의 메시지 역시 '그 느낌 어쩌면 삼양 때문일지도'이다. 숙취해소제 상쾌환, 대체 감미료 알룰로스, 차체 경량화 플라스틱 등 삼양그룹의 여러 제품이 곳곳에서 쾌적한 생활을 돕고 있다는 내용이다.

수당의 공동체 중심 경영철학은 삼양그룹의 역사가 100년이 됐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익이 아닌 공익 추구가 기업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증명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수당은 기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남겼다. 그는 "기업은 영리를 추구하는 집단이긴 하지만 국가·민족 없이 황금의 노예가 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다"며 "기업이 국민과 같이 호흡하고 공존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삼양그룹은 한국경제인협회와도 인연이 깊다. 수당은 한경협 전신인 한국경제협의회 초대 회장을 지내며 경제개발계획 수립과 한일 국교 정상화 등을 장면 정부에 건의했고, 이를 통해 '한강의 기적' 초석을 놓았다.

수당의 3남인 고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은 1983년부터 10년간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경협) 부회장을 맡았다. 김상홍 명예회장의 장남 김윤 삼양그룹 회장은 2001년 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된 후 20년 넘게 회장단 활동을 하며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그는 현재 한경협 K-ESG 얼라이언스 의장을 맡고 있다.

<시리즈 끝>

[고창 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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