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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컬처핏? 취준생 스펙에 또 하나의 스펙 얹는 꼴 [視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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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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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채용시장의 메인 키워드는 ‘컬처핏’이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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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기업들이 채용할 때 학위와 같은 스펙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바로 '컬처핏'이다. 컬처핏은 기업과 지원자의 성향이 잘 맞는지 보는 거다. 이런 컬처핏 트렌드가 국내 채용시장에도 밀려들었다. 국내 기업들 중에서 컬처핏을 보는 곳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스펙에 또다른 스펙을 추가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세계 톱 OTT 넷플릭스에 지원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갖가지 스펙을 나열해 놓은 서류보다 중요한 게 있다. 넷플릭스의 '컬처메모'를 숙지하는 거다. 이는 넷플릭스의 조직문화를 정리한 일종의 문서다. 지원자가 이를 충분히 숙지하지 않았다간 면접장에서 큰코다칠 수 있다. 면접관이 '넷플릭스의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꼼꼼히 묻기 때문이다.

일례로 '규칙 없음이 곧 규칙(No Rules Rule)'이란 조직문화를 살펴보자. 넷플릭스는 휴가·출장비 등 경비의 내용과 한도를 명시한 규정이나 승인절차가 없다. 규정과 절차가 직원의 창의성을 방해하고 결국 성과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느슨한 자율성'보단 '강한 책임감'을 중시하는 성향의 지원자라면 넷플릭스가 원하는 인재상이 아닐 수 있다.

다양한 인재를 이런 방식으로 찾는 건 넷플릭스만이 아니다. 구글, 아마존과 같은 빅테크들은 인재를 뽑을 때 스펙보다 '성향'에 무게를 둔다. 실제로 구글은 지원할 때 내야 하는 필수제출서류에 '학위'가 없다. 이런 트렌드를 사람들은 '컬처핏(Culture-fit)을 맞춘다'고 말한다. 조직문화에 걸맞은 인재를 선발한다는 거다.

이런 변화의 바람은 국내 채용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HR테크 기업 인크루트가 지난 8월 국내 기업 인사 담당자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의 49.0%가 채용할 때 컬처핏을 확인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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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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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핏 트렌드는 취준생의 부담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줄 수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정량적이면서도 과한 '스펙쌓기'는 부담이 된 지 오래다. 자격증, 대외활동, 동아리 활동 등 취업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비용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취업 콘텐츠 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1년 이상 구직 중인 1473명에게 '취업 준비 비용'의 규모를 물어본 결과, 52.0%가 '지난해에 비해 비용이 늘었다'고 답했다. '지난해와 비슷하다'고 답한 비율은 40.0%, '지난해에 비해 줄었다'는 응답률은 8.0%에 불과했다.

비용 부담이 가장 큰 항목은 '카페·스터디룸 등 공간 이용료(33.0%)' '학원비·강의 수강료(26.0%)' '자격증 취득비(22.0%)'였다. 취준생들이 스펙을 쌓는 데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단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컬처핏은 '쓸데없는 스펙'은 버리고 '필요한 스펙'만 쌓는 문화를 유도할 수 있다. 그러면 취업 준비에 들이는 비용이 줄어드는 경제적 효과로 나타난다. 취업을 준비 중인 20대 청년 정가윤(가명)씨는 "어떤 실무 경험을 쌓아야 할지, 어떤 자격증을 따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컬처핏이 가이드라인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컬처핏 효과가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다. 되레 컬처핏이 또다른 스펙이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성향과 가치관을 평가 기준에 넣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서다.

다른 취준생 김하린(가명)씨는 "이젠 기업의 컬처핏을 숙지하는 것도 필수가 됐다"면서 말을 이었다. "기업이 자사와 잘 맞는 인재를 뽑기 위해 컬처핏을 확인한다는 점은 인지하지만 취준생 입장에서는 어쨌든 입사가 목표기 때문에 그 틀에 맞출 수밖에 없다. 컬처핏이 취준생에게 도움을 주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 때문에 컬처핏이 또 다른 스펙 경쟁을 유발하지 않도록 기업들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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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기업은 컬처핏을 활용한 채용에 적극적이다. 사진은 넷플릭스 CEO 테드 서랜도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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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교육의봄 전선희 연구팀장은 "컬처핏은 지원자가 기업에 잘 적응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확인하는 지표"라며 "채용할 때 평가하는 기준보다는 기업과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해 참고하는 내용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은 구직자들이 컬처핏을 역량 적합성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때 채용시장엔 '블라인드 채용' 붐이 일었지만 스펙 경쟁을 끊어내진 못했다. 지금 확산하는 컬처핏을 두고도 부정적인 시각이 나온다. 블라인드 채용이든 컬처핏이든 그럴싸한 말이 중요한 게 아니다. 스펙이 업무 성과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건 입증된 지 오래다.

이제 기업이 스펙보다 중요한 자신들만의 가치를 앞세워 채용 문화를 바꿔야 할 때다. 그러지 않고서 "뽑을 인재가 없다"는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건 기업 내세운 기준을 맞추기 위해 애써온 취준생들에게 또 다른 아픔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또한 병폐다.

조서영 더스쿠프 기자

syvho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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