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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논단]서울대병원급의 대형병원 15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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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의대 정원 조정은 필수

의료공백 해결 특단대책 마련을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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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7개월째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는 폭압적인 ‘의료 개혁’을 걱정하는 원로 교수 49명이 애끓는 심정을 담은 시국선언을 내놓았다.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섣부른 의료 개혁이 의료체계를 공멸(共滅)의 길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의대 증원 시도를 중단하고, 미래를 위한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젊은 의대생·전공의와 뜻을 같이하는 요구다. 대통령과 국민을 기망한 관료의 덫을 과감하게 뿌리쳐야 한다.

응급·특수·지역 의료의 난맥상은 단순히 의대 증원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당장 한 바가지의 맑은 물이 필요한 의료 현장에 10년 후 1만 명의 의사 추가 배출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급격한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의료 행정을 바로잡는 일이 훨씬 더 절박하다. 당연히 의료계의 전문성이 반영된 의료 행정의 기틀을 바로 세우는 것이 진정한 의료 개혁의 목표가 되어야만 한다.

의대 입학정원 65% 증원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폭거(暴擧)다. 정원이 큰 폭으로 늘어나면 의학 교육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증원이 5년 한시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도 불가능하다.

설상가상으로 의사 양성은 의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의사면허’를 받은 후에도 4년 이상의 ‘수련 과정’을 거쳐야만 독자적으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전문의’가 된다. 이번에 병원을 떠나버린 ‘전공의’가 바로 그런 수련생이다. 현재 211개 수련병원에서 매년 선발하는 인턴은 의대 정원보다 많은 3200명 수준이다. 그중 47개 상급종합병원(의대부속병원)에서 72%인 2300명을 뽑는다. ‘빅5’ 대형 병원이 감당하는 전공의가 고작 100명 수준이다.

결국 의대 정원을 1509명이나 늘리려면 서울대부속병원 규모의 초대형 상급종합병원 15개가 추가로 필요하게 된다. 건물·시설을 갖추는 일도 벅차지만, 의료인력과 환자를 확보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상가상으로 5년 후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 천덕꾸러기가 된다.
현재의 의료 공백은 의사의 파업이 아니라 정부의 무모한 의대 증원에 절망한 전공의가 의사의 길을 포기해 버렸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교육부·보건복지부 장관의 안이한 ‘최대한 설득 노력’도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의대생들이 여전히 복귀를 거부하고 있다. 의예과의 수강신청률은 7%에 지나지 않고, 본과의 사정은 훨씬 더 심각하다. 등록금 납부자가 한 명도 없는 의대도 적지 않다.

결국 교육부의 행정적인 유급 인정 여부에 상관없이 내년 3월의 의과대학은 7500명의 재학생·신입생이 북새통을 이루게 된다. 정상적인 교육은 기대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내년의 의대 진학은 마치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격의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비현실적인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기 위해서 의대생·전공의·전문의를 악마화하는 의료 개혁은 당장 멈춰야 한다. 전공의를 PA간호사로 대체하면 전문의 양성이 불가능해진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전공의를 옭아매기 위한 ‘진료면허제’도 어불성설이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의료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내년도 의대 정원 조정은 필수다. 병원을 떠나버린 전공의가 복귀할 수 있는 명분이 절실하다. 더욱이 전공의가 떠나버린 응급실에서 응급의학 수련도 받지 않은 군의관이나 대통령실 비서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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