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7 기후정의행진’ 현장
강남을 메운 ‘기후정의’ 행렬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삼성역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한국에서 네 번째로 열린 이번 기후행진에는 주최 측 추산 3만여명, 경찰 추산 7000∼1만명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고 외쳤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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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청소년 등 다수 포함
주최 측 추산 3만여명 모여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될 것”
빅테크·쿠팡·포스코 등 향해
항의 표시로 ‘다이인’ 시위도
“윤석열 대통령은 왜 기후위기에 대한 숙제를 안 하고 있나요? 헌법재판소가 어린이들이 위기를 겪을 것이라 판단했는데도 움직이지 않는 정부·국회가 정말 답답합니다.”
지난 7일 각양각색 손팻말을 든 시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서울 강남대로에 모였다. 주최 측 추산 3만여명, 경찰 추산 7000~1만명이 모여 “세상을 바꾸자”고 외쳤다.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615개 시민단체와 정당, 노동조합, 종교단체 등으로 구성된 907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는 이날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강남구 신논현역~강남역 일대에서 기후정의행진을 개최했다. 매년 9월 유엔총회를 앞두고 전 세계에서 다양한 이들이 참여하는 기후행진이 열린다. 한국에서는 2019년 시작됐는데,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0·2021년을 제외하고 올해 네 번째로 진행됐다.
현장에서 만난 참가자들은 기후위기가 이미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음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오히려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정부·국회·기업에 분노했다.
전남 곡성에서 왔다는 노송이씨는 “우울하다 못해 위협적인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앞으로 투표하라는 얘기를 못할 것 같다”며 정치권에 대한 답답함을 표시했다. 두 자녀와 함께 참여한 노씨는 “아이들과 함께 행진 때 사용할 손팻말을 만들었는데 ‘여러분 멸종위기종이 지나갑니다. 우리는 멸종위기종입니다’와 ‘대통령은 왜 기후위기 숙제를 안 하나요’라는 문구를 적었다”고 소개했다.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중학생들이 직접 쓰고 그린 손팻말을 들고 앉아 있다. 김기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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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예년보다 더 많은 어린이, 청소년과 가족 단위 참가자가 눈에 띄었다. 이전에는 학교나 지역아동센터, 동아리 등에서 단체로 참가한 사례가 다수였는데 올해는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어린이, 청소년들이 스스로 모여 두세 명씩 참여한 경우도 많았다.
서울 목동 신목중학교에 다니는 차하윤양(13)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친구랑 행진에 참가했다”면서 “지난해 923기후정의행진 직전 학교 수업에서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얘기를 들었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면서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했었다”고 말했다. 함께 참가한 이재인양(14)은 “북극곰들이 죽어가는 모습 등 기후위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작년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뒤 느낀 바가 많아서 환경동아리에도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행진은 서울뿐 아니라 대전·부산·제주·포항·지리산(산청)·통영 등 6개 지역에서도 동시에 진행됐다. 서울에는 전국 참가자가 모였으며, 자체적으로 참가단을 조직한 21개 지역에서 버스·열차를 타고 상경하기도 했다.
행진에 앞서 열린 본집회에서 정록 907기후정의행진 공동집행위원장은 “노동·인권·여성·환경·반빈곤 운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다른 세상을 일구기 위해 분투해온 우리는 ‘기후정의운동’으로 서로를 넘나들며 연결됐고 이렇게 모였다”고 말했다. 이어 “착한 자본이, 그리고 녹색 기술이 온실가스도 감축하고 모두를 행복하게 할 거라는 지난 30년 동안 국제기후 체제의 거짓과 위선의 역사가 우리를 이곳에 모이게 했다”며 “기후정의운동의 다양한 현장들을 조직하자. 일터에서, 지역에서, 거리에서 동료들과 시민들을 만나며 다른 세계를 열어가는 대중투쟁을 조직하자”고 외쳤다.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지난달 29일 헌재가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며 “위기 속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삶이 삭제된 기후 대응은 위기를 막을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기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박규석 공공운수노조 발전HPS지부장은 “석탄발전소 폐쇄로 생존권을 위협받는 발전노동자들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공공재생에너지를 통한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국내 첫 파업이 성사됐다”면서 각계각층의 연대를 요청했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테헤란로를 거쳐서 삼성역까지 행진하면서 도로 위에 죽은 듯 드러눕는 ‘다이인(die-in)’ 시위를 벌였다. 행진 코스로 역삼역 인근 구글코리아, 선릉역 인근 쿠팡 로켓연구소, 포스코사거리 인근 포스코센터 등을 지나갔다.
기후정의행진 조직위는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빅테크 기업, 기후재난 속에서 소속 노동자들이 잇따라 죽어가고 있는 쿠팡, 국내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포스코 등에 대한 항의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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