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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검찰 발표 위주로 써라” 수상한 보도지침 폭로, 무죄까지 10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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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보도지침’ 공연 장면. 마포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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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발표 위주로만 쓸 것. 1면 말고 사회면에 실을 것. 성 모욕 사건이라고 완화된 표현을 쓸 것. 검찰 발표 외에 독자적인 취재를 하지 말고 다른 단체의 성명서도 싣지 말 것.”

여대생이 성고문을 당한 사실을 폭로하려고 하자 편집국장이 이런 지침을 내린다. 기자는 여대생이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당한 성고문이 부조리하다고 느끼지만 편집국장은 그게 1면에 실을 정도로 기사가 없느냐고 따져 묻는다. 보도지침이 엄연히 존재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보도지침’의 한 장면이다.

‘보도지침’은 1986년 당시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가 월간지 ‘말’에 정부의 보도지침을 폭로한 실제 사건을 법정 드라마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사건에 연루된 언론인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1995년에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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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보도지침을 폭로한 ‘보도지침’의 실제 주인공 김주언씨. 마포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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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을 폭로한 기자는 ‘주혁’으로, 월간지 ‘말’은 ‘독백’으로 각색됐다. ‘독백’의 발행인 ‘정배’와 변호인 ‘승욱’, 이들과 맞서는 검사 ‘돈결’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가 대학 시절 연극반 동기로 나온다. 작품은 함께 금서를 읽으며 정권에 맞섰던 과거와 양쪽으로 갈라져 다투는 현재를 속도감 있게 오가며 언론자유의 본질을 묻는다.

주혁과 정배, 승욱은 “가장 진실한 말, 마음의 소리를 독백이라 부른다”는 연극반 선배의 말을 철저히 추종한다. 이들에게 정부가 아침마다 내리는 보도지침은 독백을 막는 절대악이다.

반면 돈결은 정부의 보도협조사항이 국익을 위한 것이라 변호하며 이를 폭로한 친구들의 행동을 지적한다. 서로 다른 팽팽한 생각들이 맞붙어 접점 없는 치열한 논쟁이 이어진다.

지금이야 보도지침을 내린 정부가 당연히 잘못했지만 서슬퍼런 군사정권은 반기를 든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다. 관객들이 납득할 수 없는 부당한 결과는 당시 시대가 얼마나 부조리했는지 더 극대화해 드러낸다.

연극이 꼭 교훈적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소재가 소재인 만큼 이 작품은 지금은 사라진 보도지침이 이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게 만든다. 이와 관련해 김주언씨는 “반국가 세력이 암약하고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얘기를 듣는 순간, 유신 시절로 다시 돌아간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면서 “과거엔 정부가 직접 지침을 내려 보도를 통제했다면 지금은 공영방송 사장을 바꾸는 등 간접적인 통제로 바뀌었다. 일선 기자, 언론인들이 중심에 서지 않으면 언론개혁은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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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의 실제 보도지침 문서. 민주언론시민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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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대로 겉으로는 언론자유가 보장되지만 실제로는 공영방송과 담당위원회가 당연한 듯이 정치적으로 다뤄진다는 점은 이 시대가 여전히 그 시절의 보도지침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는 걸 보여준다. 공공선을 위해 철저히 경계해야 할 요소지만 여야 모두 경계하는 목소리를 찾기가 어려운 현실은 이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에 무감각하고 나태한지 돌아보게 한다. ‘보도지침’은 제목 그대로 보도지침을 소재로 했지만 이를 통해 사회 정의에 대해 보다 폭넓게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고정 무대지만 책상을 가지고 다양한 연출을 시도해 관람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당대 일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작품을 더 탄탄하게 만든다. 작은 공연장의 이야기지만 세상을 향한 큰 울림을 지닌 내공이 만만치 않다.

다섯 번째 시즌인 이번 ‘보도지침’은 8일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

류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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