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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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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1실을 32개로 쪼개 등기… 1기 신도시 재건축 노린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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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주권 노린 일부 투기세력… 재건축 공약 尹정부 출범후 기승

아파트 원하는 상가와 협의 지연땐… ‘2027년 착공’ 정부 계획 차질 우려

“의결권 제한-이익금 차등배분 필요”

동아일보

1기 신도시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 아파트 단지 상가. 이 건물 2층의 73㎡ 규모 상가 1실은 지난해 8월 6개로 쪼개졌다. 재건축 후 아파트 입주권을 얻기 위한 작업으로 추정된다. 성남=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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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1기 신도시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내 한 아파트 단지 상가. 지하 1층에는 스포츠센터가 운영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1개의 상가로 보이지만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면 32개로 잘게 쪼개져 있다. 소유주인 자산관리회사가 860여 ㎡ 규모의 상가 1실을 15∼30㎡ 규모로 나눠 놓은 것이다. 이런 ‘상가 쪼개기’는 2022년 6월 이뤄졌다. 1기 신도시 재건축을 공약으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후였다.

이달 말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접수를 앞둔 가운데 상가 쪼개기가 향후 갈등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기 신도시는 아파트와 상가, 도로, 공원, 학교 등 기반시설을 광역적으로 조성하는 통합재건축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일반 재건축과 달리 사업 계획에 대한 상가 조합원과의 협의가 필수적이다. 쪼개진 상가의 조합원들이 각각 아파트 분양을 요구하고 나서는 경우 속도가 지연되고 일반 분양 물량이 줄어 신규 주택 공급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규제 도입 직전 이뤄진 ‘쪼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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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가 1기 신도시 경기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가운데 대표 지역인 분당 일대를 돌아본 결과 상가 쪼개기 사례는 서현동 상가뿐만이 아니었다.

대표적 유형은 상가 1실을 여러 개로 분할하는 것이다. 분당구 수내동 한 아파트 상가 건물에선 2층에 있는 73여 ㎡ 상가 1실이 6개 실로 나뉘어 있었다. 지분이 나뉜 시기는 성남시가 지난해 9월 지분 쪼개기를 금지하기 한 달 전이었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재건축 시 아파트를 저렴하게 분양받으려고 상가를 미리 쪼개둔 사례로 보여진다”고 진단했다.

단독 건축물을 여러 상가가 들어설 수 있는 집합 건축물로 용도 변경한 뒤 상가를 쪼갠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타깃이 유치원 건물이다. 성남시 정자동 한 아파트 단지 내 유치원 건물은 2022년 9월 상가동으로 바뀌며 등기가 14개로 쪼개졌다. 수내동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유치원 건물이 24개 상가로 나눠진 건물이 됐다. 이 지역 인근 공인중개사는 “법인이 매입한 물건인데, 향후 재건축을 할 때 상가 소유주가 아파트를 많이 요구해서 걸림돌이 될까 봐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상가 조합원들은 재건축 때 일반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입주권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노리고 상가의 지분을 잘게 나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분당구를 제외한 다른 4곳의 1기 신도시는 올해 7월에서야 지분 쪼개기를 금지한 만큼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일부 투기 세력에 먹잇감 준 것”

1기 신도시 내 아파트 분양을 노린 상가 쪼개기로 정부에서 계획한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통합 재건축은 기반시설과 함께 효율적으로 지역을 조성할 수 있는 게 장점이지만 단지 내 상가, 근린생활시설 상가 등과 함께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파트 소유주와 이해관계가 달라 충돌하는 경우가 잦다.

오학우 하나감정평가법인 감정평가사는 “정부가 주택 공급 속도와 물량에만 치중하느라 상가 쪼개기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일부 투기 세력에 먹잇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상가를 나누는 과정에서 투기 세력들이 유입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이태희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상적인 영업 목적을 위한 경우도 있어 분할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다만 상가를 분할한 경우 의결권 일부 제한, 세제 요건 강화, 이익금 차등 배분 등의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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