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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뉴스페이스 강조하던 정부…공동연구 계약 가이드 없어 혼란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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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이 5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개청 100일 기념 우주항공청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9.5/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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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항공청이 2027년부터 공공위성 발사 서비스를 구매하는 사업을 추진해 본격적인 ‘뉴스페이스’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재사용발사체, 궤도수송선 등 여러 우주 경제를 이끌 사업 계획을 발표했지만 정작 뉴스페이스의 주역이 될 기업과의 공동 연구 계약에 대한 가이드라인조차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우주청은 5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개청 100일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재사용발사체를 기반으로 지구 저궤도까지 가는 수송비용을 1㎏당 1000달러 이하로 낮춰 2030년대에는 우주 경제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앞서 2045년까지 세계 우주항공 시장 점유율을 1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민간 기업이 (개발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와는 다르게 정부와 기업 간 협력을 위한 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준비 부족이 결국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간 지식재산권 갈등으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항우연은 올해 조달청을 통해 차세대 발사체 사업 체계종합기업을 공모했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최종 선발됐다. 차세대발사체는 약 10t의 화물을 지구저궤도까지 운송할 수 있는 대형 발사체로, 올해부터 2032년까지 총 2조132억 원이 투입된다. 아직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양측은 차세대발사체 기술의 지재권을 두고 갈등 중이다.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지점은 ‘차세대발사체 지재권을 공동 소유하는 것이 향후 뉴스페이스 시대에 어떻게 작용하느냐’다. 항우연은 민간에게 공평하게 기술의 혜택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항우연이 지재권을 단독소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재권이 한화에 귀속돼 있으면 다른 기업이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기업이 지재권을 공동 소유 해야 향후 시장에서 사업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국보다 일찍 뉴스페이스를 연 미국과 일본의 경우 이런 갈등을 막기 위한 계약 가이드라인 및 제도가 마련돼 있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2020년 4월 공개한 지적 재산 정책에 따르면 JAXA는 기업과 공동 지재권을 가지고 있더라도 제3자에 대한 실시 허락은 기업의 동의 없이 사전 통지로만 진행할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항우연 사태에 적용해보자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동의가 없더라도 항우연이 다른 기업들에게 공평하게 기술 사용을 허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기업이 일정 기간 동안 지재권을 제3자에게 공유하지 않고 독점하고 싶다면 지재권 출원에 드는 비용, 유지관리비용, 독점료 등을 부담하고 최대 10년간 독점권을 확보할 수도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경우에도 JAXA와 마찬가지로 지재권을 공동 소유하더라도 NASA가 사전 동의 없이 다른 기업에 기술을 사용하게 할 수 있다.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혁신제도연구단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워낙 오랫동안 뉴스페이스를 이뤄왔던 곳이기 때문에 여러 정책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뉴스페이스에 대한 정부의 준비가 너무 부족한 상황에서 이뤄진 계약이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주항공청 관계자는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담당 과에서 아주 일반적인 내용의 공문을 보낸 적은 있으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윤 청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지재권 분쟁에 대해 “제도적인 문제가 있다면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 산하에서 지재권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역시 마찬가지다. 지재위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며 “민간 기업이나 부처의 요구가 있을 경우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영진 국방대 교수는 “아직도 정부가 정부 주도의 우주 개발에 갇혀있는 것”이라며 “민간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으면 사전에 이런 가이드라인 마련부터 뉴스페이스에 대한 인식 제고 과정이 선행됐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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