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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여자가 더 편리한 시대잖아요”, “페미니즘이 없어져야 좋은 세상이 되죠.”
최윤영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아하센터) 성교육 강사는 이달 초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성교육 강의를 하던 도중 학생들이 보인 당혹스러운 반응을 전했다. 성차별적 사회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언급하자 교실이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고 했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지 묻자 ‘인터넷’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최 강사는 5일 한겨레에 “성평등 이슈에 관한 사회 전반적 반감을 학생들이 그대로 흡수하고 있다”며 “이미 유튜브 등을 통해 부정적인 인식과 잘못된 정보를 내면화하고 있어 교육이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불법합성물(딥페이크) 성범죄의 배경으로 ‘놀이’처럼 번진 여성 혐오와 성적 대상화가 꼽히는 가운데, ‘또래 문화’ 형성에 결정적인 공교육이 왜곡된 온라인 정보를 교정하는 보루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다만 페미니즘 교육을 비롯한 ‘성평등 관점의 성교육’에 대한 무관심과 거부감으로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다.
여성 혐오가 만연한 문화와 분위기가 불법합성물 성범죄 배경에 자리 잡은 현실은 가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아하센터가 올해 1월~8월 상담한 디지털 성범죄 가해 청소년 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은 가해 동기(중복포함)에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함’(22%) ‘호기심으로’(22%)를 가장 많이 짚었다. 이어 ‘충동적으로’(21%), ‘재미나 장난’(12%), ‘성착취물을 따라해보고 싶어서’(8%)가 뒤를 이었다.
함경진 아하센터 부장은 “가해 청소년과 상담해보면 ‘운이 나빠서 걸린 거다’, ‘남들도 다 하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냐’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나 혐오 문화가 10대 청소년에게 하나의 놀이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짚었다.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대안으로 언급되는 건 성평등 관점의 성교육이다. 함경진 부장은 “결국 나와 타인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인권 의식을 배우는 것이 잘못된 또래 문화를 개선할 수 있다. 이것이 성평등 관점의 성교육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한 성평등 교육활동가도 “수업 뒤 아이들에게 수업 평가서를 받고 보면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왜 성평등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배울 수 있어 좋았다’란 답변을 많이 받는다. 아이들의 잘못된 인식은 생각보다 뿌리 깊지 않고, 교육을 통해 분명히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런 교육은 현재 학교에서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분위기다. 청소년 성교육 강사들은 수업 전 학교 쪽으로부터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쓰지 말아달라’, ‘성평등 대신 양성평등이란 말을 써달라’는 요구를 받기 일쑤라고 한다. 일부 학부모의 민원을 우려해서다.
필수 교과목이 아니기에 학교마다 받을 수 있는 성교육 수준이 제각각이라는 문제도 있다. 대부분의 시·도교육청은 성교육 방식을 학교 재량에 맡기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국어, 과학 등 교과 과목 시간에 성이나 사랑, 몸과 관련한 주제가 나오면, 이를 성교육 의무 시간(연간 15시간, 성폭력 예방교육 3시간 포함)으로 계산하기도 한다.
이한 활동가는 “공교육 안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을 수 없으니 사교육을 찾는 움직임까지 있는데, 아이들은 주변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혼자 사교육을 받는 건 큰 효과가 없다”며 “당연히 해야 할 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금기시되는 건 교육 당국이 이를 제도화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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