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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연금과 보험

‘주주가치 훼손’ 주장 남발하는 국민연금[기고/조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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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금액은 158조7000억 원. 전체 자산 1147조 원의 13.8%로, 현대차그룹의 시가총액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증시의 큰손이기에 국민연금의 결정 하나하나가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의미다.

최근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며 ‘주주가치 훼손’을 주장한 경우가 많았다. 지난달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지난해 신한금융지주 회장 선임과 2022년 삼성전자 이사 선임 모두 같은 이유로 국민연금이 반대했던 안건들이다.

물론 국민연금도 ‘주주가치 훼손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주주가치 훼손의 구체적인 평가 기준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어떤 이유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연금의 주인인 국민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주주가치 훼손’이라는 말 한마디로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SK 합병은 자산 100조 원 규모의 아시아태평양 최대 민간 에너지 기업을 탄생시키는 사건이다. 중국 같았으면 ‘에너지 굴기 기업’이란 표현이 쓰였을 법도 하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뚜렷한 근거 없이 “합병법인의 대주주 지분이 올라 일반주주에게는 해롭다”는 주장에 기대어 반대했다. SK이노베이션이 자산가치보다 적은 시장가치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이유다.

하지만 자산가치 추정은 신의 영역이다. 따라서 주식이나 자산의 가격이 그 내재가치를 반영하고 있다는 ‘효율적 시장가설’을 바탕으로 상장사에는 시장가치로 자산가치를 대용하고 있다. 이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6조에 명기된 사안이다. SK 합병은 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찬성 권고와 외국인 주주 95% 동의에 힘입어 85.75% 찬성률로 통과됐다.

신한금융지주와 삼성전자의 이사 선임 건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은 두 회사의 이사 후보자들에게 주주권익 침해, 기업가치 훼손 우려가 있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두 회사의 주가는 주주총회 당시보다 올랐고, 최고 실적을 갈아치우며 순항 중이다.

2000조 원 규모의 세계 최대 일본 공적연금(GPIF)은 의결권 행사의 상세 내역을 공시하고, 미국의 연금법(ERISA)은 연기금 운용자가 의결권 행사에 대해 판단 근거를 정확히 남기며 제3자가 감독하도록 하고 있다. 854조 원을 운영 중인 캐나다 연기금(CPPIB)의 10년 평균 수익률이 10%에 달하는 것 또한 지속 가능한 수익 확보를 목표로 수익률과 무관한 요소들은 의사결정에서 배제한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의 10년 평균 수익률은 4.7%다.

최근 국민연금의 행태를 보면 기업 경영권과 지배구조에 직접 개입해 영향력을 과시하는, 이른바 ‘연금 사회주의’의 유혹에 빠져든 건 아닌지 우려된다.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과정은 구체적이고 투명한 기준에 따라 운영되고 공개돼야 한다. 또한 공공기금으로서 국가 경제에 대한 기여와 책임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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