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6 (월)

“대출 안돼요, 돌아가세요”…전세금 막힌 은행창구, 집주인도 세입자도 주저앉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올해 말까지 수도권 5만7천여가구 입주
일부 시중은행 분양 주택도 전세대출 제한에
세입자·분양 계약자 모두 전전긍긍
실거주 의무 3년 유예 퇴색 우려도
1주택 갈아타기 등 제한되며
월세로 수요 옮겨가 주거비 되려 오를듯


매일경제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 전경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재건축단지 인근에서 대출을 취급하는 A은행 영업점엔 지난 2일부터 전세자금대출과 관련한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일부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유주택자에 대한 전세자금대출을 제한하는 등 9월부터 전세 대출 심사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단지 인근 재건축 조합은 이 은행에 조합원 안내용 입주자금대출과 세입자 전세자금대출 자료를 만들어 줄 것을 먼저 요구하고 나섰다.

9월부터 일부 시중은행이 소유권 이전이 완료되지 않은 주택에 대해 전세자금대출을 내주지 않는 등 전세자금대출 심사를 강화하자 입주를 앞둔 단지들의 혼선이 커지고 있다. 통상 재건축이 된 아파트는 이전 등기를 마쳐야 소유권이 조합에서 소유자에게 이전이 완료된다. 대출을 받아 전세를 들어가려고 계획한 세입자들은 대출이 나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보증금을 받아 잔금을 치르려 한 분양 계약자들도 은행들마다 다른 대출 정책에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4일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따르면 이 은행들은 전날 신규 분양 주택에 대한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 가이드라인을 재정비 했다. 국민·우리·농협은행은 분양 주택을 포함한 모든 주택에 대해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 취급을 일괄 제한하기로 했다.

조건부 전세 대출이란 새 집주인이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동시에 새로 들어올 세입자가 전세금을 대출받는 조건으로 진행되는 대출이다. 새 집주인의 잔금일과 세입자의 대출 실행일을 같은 날로 맞추고 그날 받은 전세금으로 새 집주인이 잔금을 치르는 것이다. 보통 갭투자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은행들은 가계부채 억제 일환으로 갭투자를 막겠다며 최근 이와 관련한 대출을 제한하고 나섰다. 문제는 해당 규제 대상에 분양 주택도 포함해 전세자금대출 취급을 제한하기로 하며 혼선이 커지고 있다.

국민은행은 이 대출을 올해 10월말까지만 운영할 예정이고, 우리은행은 기한을 아직 정하지 않았다. 농협은행은 대출 실행 전까지 임대인의 분양대금 완납이 이뤄졌다면 임차인에 대해 전세자금 대출을 내주기로 했다. 반면 국민·우리은행은 집주인이 잔금을 다 치렀어도 소유권 이전 등기가 안 돼 있다면 세입자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기로 했다.

은행들의 이 같은 정책 변화에 입주를 앞둔 단지들의 혼선은 커질 전망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9월부터 올해 말까지 수도권에서 입주를 앞둔 단지는 총 5만7373가구다. 전국 최대 단지인 1만2000여 가구 규모의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도 11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은행들이 전세자금대출을 내주지 않으면 그만큼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지급하기 위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세입자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려던 분양 계약자들의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앞서 올림픽파크포레온의 경우 준공 후 ‘즉시’ 실거주 의무가 적용됐지만 이런 규제가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뺏는다는 지적에 3년 유예된 바 있다. 하지만 전세자금대출이 제한되면 이런 규제 완화 효과는 퇴색될 수 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에서는 여전히 분양 주택 전세대출을 취급한다. 하지만 은행마다 제각각 대출 제도를 운영하며 자금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이 은행마다 다른 규정을 일일이 알아봐야 하는 등 불편함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새 집 입주를 꿈꾸고 있던 재건축 조합원들도 이런 대출 규제 강화로 애꿎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전세 만기가 준공 일정에 맞춰져 있는데 전세 대출이 제한되며 신규 세입자가 쉽게 구해지지 못하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입주가 미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둔촌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조합원의 경우 (이주 기간 살았던)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입주를 할 수 있는데 전세대출이 제한되면서 전세가 잘 빠지지 않으면 제 때 입주가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전세자금대출 제한 조치는 월세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세자금대출을 받기 어려워지면서 오히려 월세 수요가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보앱 아실에 따르면, 이날 서울 월세 매물은 1만5300개로 월세 매물이 정점이던 지난 23년 1월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매물이 감소하는 만큼 가격 상승도 빠르다. 한국부동산원 서울 월세통합가격지수는 지난해 10월 100.88에서 올해 7월 102.92로 지속 상승하고 있다. 전세대출 규제로 전세 이동이 제한되는 실수요자들이 보증금을 낮춰 반전세나, 월세를 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월세 매물 감소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은행들이 1주택자에 대한 전세자금대출 취급도 제한하기 시작한 점도 월세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고준석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상남경영원 교수는 “은행권의 대출 심사 강화는 1주택자에 대한 갈아타기 또는 전세 입주를 제한한다”며 “대출이 막힌 상황에서 월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실수요자의 경우 주거비가 올라가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