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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너무나 친절했던 오빠라 믿었는데"…'악마'의 제안에 빚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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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홀로서기③] 시설 퇴소한 여성 지체 장애인

'먼저 다가와준 오빠' 말 믿고 3일에 걸쳐 1억 송금

[편집자주] 보육원에서 자란 장애 아동들은 18세에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인생의 첫 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범죄의 위험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자립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실태와 원인을 살펴보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봤다.

뉴스1

휠체어 탄 지체장애인 이미지.ⓒ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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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김태성 이수민 기자 = 전남 목포에서 거주하는 윤혜미 씨(25·여·가명). 그는 7년 전 아동양육시설에서 퇴소한 후천적 지체 장애인이다.

부모의 이혼 후 어렸을 때부터 아동양육시설에서 지내던 그는 15세 때 하굣길에 덤프트럭에 치어 하반신이 마비됐다. 18세 때 어머니와 연락이 닿아 시설에서 퇴소했다.

생전 처음 만난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 걱정됐지만 혜미 씨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어머니와 양육시설이 합의해 퇴소가 결정됐다.

재혼을 한 어머니는 혜미 씨가 가지고 있던 자동차 사고 보험금 5억 원으로 가족들이 함께 살 집을 사고 재혼한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치아 교정을 하는 등 마음대로 썼다.

화가 난 혜미 씨는 돈을 돌려달라고 했고, 어머니는 보험금 중 남은 돈과 혜미 씨가 시설 퇴소시 받은 자립정착금 등 1억 7000만 원을 돌려주며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 혜미 씨는 다시 혼자가 됐다.

2021년 8월께 혜미 씨가 혼자 살 전셋집을 구했을 무렵 고등학교 동창인 고예슬(여·가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예슬은 아는 오빠라며 차윤수(33·가명)를 소개해 줬고 3명은 금세 친해졌다.

차윤수는 무척이나 친절했다. 매번 안부를 묻고 혜미 씨가 일이 있을 때면 자동차를 몰고 와 태워다 줬다. 먼저 다가와 주는 '오빠'가 고마웠다. 어느날 차윤수는 "통장 잔액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했다. 혜미 씨는 별생각 없이 통장 내역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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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피해 이미지.ⓒ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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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차윤수는 '유치장에 있다. 벌금을 내야 하니 1000만 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날 오후에는 '휴대폰이 되지 않는다'며 요금 대납을 부탁하기도 했다. 혜미 씨는 이날 하루 1050만 원을 송금했다.

이튿날 차윤수는 혜미 씨에게 사업을 제안했다. 그는 '과거 미용실을 운영해 큰돈을 만진 적이 있다. 보증금과 인테리어비를 내주면 수익을 나누겠다'고 했다. 혜미 씨는 차윤수를 믿고 보증금과 장비값 등 8000만 원을 송금했다.

이후로도 가게 운영에 도움을 주려고 자동차비를 내주고 인테리어비와 인터넷, 홈 CCTV도 계약했다.

1억 원 넘는 돈이 차 씨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단 3일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혜미 씨는 차윤수가 사기꾼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너무 친절한 오빠여서, 사업 제안이 악마의 제안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며칠 뒤 고예슬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예슬은 '차윤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돈을 더이상 빌려주지 마라. 네가 돈이 있는 것을 알고 접근한 것이다'고 경고했다.

그제야 혜미 씨는 두 사람이 한 패였고 돈 배분 문제로 갈등이 생기니까 고예슬이 모든 걸 폭로했음을 알게 됐다.

혜미 씨가 차 씨에게 건넨 총 금액은 1억 3440만 원이다. 그는 2022년 9월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신고했고 차윤수에 대한 고소장도 접수했다.

"요즘 차윤수가 선고기일에 출석을 하지 않아서 재판이 미뤄지고 있어요. 당장 출석만 하면 징역형이 나올 것이라고 보이니까 아예 모습을 드러내질 않는 거예요. 현재까지 불출석만 5번째예요."

종잣돈을 날린 혜미 씨는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신체적인 여건상 취업조차 쉽지 않고 단순 사무업무가 가능하지만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 수년째 구직 중이다.

혜미 씨는 "통장으로 돈을 보내줬으니 기록이 남아 있고, 언젠가 당연히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면서 "보육시설에선 선생님들이 돈을 관리해주시기 때문에 돈을 관리하는 법을 몰랐고 보호자가 없다 보니 허튼 데 돈을 써도 말려줄 사람이 없다"고 호소했다.

또 "자립 역시도 '저 스스로'가 원해서가 아닌 '가족'의 요구로 이뤄진 게 황당했다. 가족이라면 언제든 나를 버려놓고 다시 데려갈 수 있는 것이냐"며 "자립금도 당사자의 자립을 위해 쓰이지 않고 가족들의 사치에 쓰이거나 사기 피해금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비판했다.

※ 장애인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언어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 경제적 착취, 유기 또는 방임을 하면 학대 행위에 따라 장애인복지법, 형법, 성폭력처벌법, 아동학대처벌법 등 다양한 법률에 의해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장애인 학대가 의심되면 1644-8295에 신고하시길 바랍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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