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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삼성전자·TSMC 잡겠다더니”…‘1만5000명 해고’ 반도체 제국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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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취임 팻 겔싱어 CEO
파운드리 재진출 승부수 띄워
막대한 투자에도 성과는 미비

효율 핑계로 기술인재 해고
본업 CPU까지 경쟁력 추락
창사 56년만에 최악 실적


매일경제

인텔 로고 [로이터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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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미국의 반도체 기업 인텔이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수십조원을 투자했던 파운드리 사업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도 전에 이를 분할해 매각하는 것을 포함해 종합적인 구조조정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 2021년 취임한 팻 겔싱어 현 최고경영자(CEO)가 반도체 제국 재건을 앞세워 밀어부친 ‘승부수’가 처참한 실패로 귀결되면서 투자자는 물론 미국 제조업에도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인텔이 반도체 설계와 제조 부문(파운드리)의 분할, 제조시설 확장 프로젝트 중단 등 다양한 구조조정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인텔과 오랫동안 거래해온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매각 관련된 내용을 조언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지난 2분기 실적 발표 과정에서 대규모 영업손실이 드러난 인텔은 1만5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감원 계획을 발표해 시장에 충격을 줬다.

이후 인텔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파운드리 사업의 분리 매각 가능성까지 검토하게 된 데는 누적된 경영 실패와 기술 경쟁력 열위 탓이 크다.

인텔은 PC용 중앙처리장치(CPU)를 만들면서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반도체 제국을 건설했다. 인텔이 새로운 CPU를 내놓을 때마다 컴퓨터의 성능은 계속 좋아졌고 여기서 반도체의 성능이 18개월~24개월마다 2배씩 좋아진다는 ‘무어의 법칙’이라는 말이 나왔다.

매일경제

인텔은 한때 미국 전체기업 시가총액 2위에 오를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는 경영에서 엔지니어링보다는 재무를 우선시했다.

비용절감을 통해 좋은 실적을 내고 주가를 올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본 것이다. 인텔을 이를 위해 대규모 정리해고를 하면서 많은 기술자들을 잃었다. 이는 결국 인텔이 설계와 공정 양쪽에서 기술 인재를 포기하며 근본적인 경쟁력을 잃어버리는 원인이 됐다.

인텔은 CPU시장은 장악했지만 스마트폰 시장이 열린 후에는 스마트폰용 반도체(AP) 설계시장을 애플, 퀄컴, 미디어텍, 삼성전자 등에게 빼앗겼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저전력이 특징인 영국 ARM이 설계한 반도체들이 각광을 받은 것도 인텔의 경쟁력을 저하시킨 원인 중 하나다.

ARM 설계를 사용하면 인텔의 특허를 피해서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을 포함한 모든 스마트폰용 반도체와 빅테크 기업들이 직접 만든 서버용 CPU는 모두 ARM 설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TSMC에 첨단 반도체 제조능력을 추월당한 것도 인텔에게는 치명타가 됐다.

TSMC가 애플이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하면서 제조 공정에서 앞서 나가자, 인텔은 TSMC에게 첨단 공정에서의 제조경쟁력을 추월당하고 만다. 이는 TSMC에 제조를 맡긴 경쟁사 AMD가 CPU 시장에서 인텔의 경쟁력을 따라잡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인텔은 새롭게 열린 데이터센터용 AI반도체 시장도 엔비디아에게 모두 내주고 말았다. 인텔은 2016년부터 AI반도체 스타트업들을 인수하면서 엔비디아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과거 인텔의 최고기술자(CTO)였다가 12년만인 2021년 2월 인텔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팻 겔싱어 현 CEO가 ‘파운드리 사업 재건’을 외치며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지만 이미 상실한 기술 인재와 시장 평판은 돈으로 해결될 수 없는 한계였다.

당시 인텔은 파운드리 시장의 1·2위 기업인 TSMC와 삼성을 한번에 모두 잡겠다며 거센 나노 경쟁을 천명했지만 파운드리 미세 공정은 구축과정에서 막대한 지출은 물론 최적 수율을 확보하기 위한 안정화 기간이 필요하다.

또 첨단 공정이 구축된다 하더라도 인텔이 만든 반도체가 TSMC 생산품 만큼의 품질을 갖췄다는 업계의 엄정한 검증을 받아야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다.

파운드리 2위 기업인 삼성전자조차 이 업계 평판을 확보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투입하는 상황에서 사업 재건 2~3년만에 정상 진입을 기대한 겔싱어 CEO의 야망은 모래성과 같았던 것이다.

겔싱어 CEO가 파운드리 사업 재건에 필요한 자금을 미국 정부의 칩스법과 외부 투자자에 의존한 것도 패착이었다.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의 강력한 리쇼어링 정책에 편승해 현실성 없는 비전을 세우고 무리한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결국 본업인 PC와 서버용 CPU의 경쟁력은 계속 떨어지고 여기서 나오는 이익이 줄어들면서, 인텔은 지난 8월 2분기 실적발표에서 적자를 기록하고, 배당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하루만에 인텔 주가는 26% 폭락했다.

인텔 제국 재건을 목표로 시작된 파운드리 사업은 결국 역설적으로 인텔의 붕괴를 막기 위한 최우선 구조조정 대상으로 떠올랐다. 블룸버그는 다음달 열리는 인텔 이사회에서 파운드리 매각 등 검토된 방안들이 제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파운드리 분할 매각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파운드리부문를 매각하는 것이 설계와 제조 양쪽을 모두 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파운드리가 분리될 경우 인텔은 CPU 부문 경쟁사인 AMD와 차별화가 어려워지며, 분리된 파운드리는 막대한 투자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부문을 어떤 회사에게 매각하게될지도 중요하다.

미국이 반도체 자국 생산을 핵심 안보로 생각하고 있는 만큼 미국기업이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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