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비타민 타주던 사람
이젠 호의로 못 받아들여”
마약을 접한 사람들./ 일러스트=김성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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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등 수백명 대학생들이 참여한 연합 동아리에서 마약 사건이 벌어지면서, 대학가에서는 연합 동아리 기피 분위기가 일고 있다. 대학생들은 “섣불리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두려워졌다”고 했다.
최근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수도권 13개 대학 학생들이 포함된 수백 명 규모의 동아리에서 집단 마약 투약 및 유통, 집단 성관계를 벌인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부장 남수연)는 지난 5일 마약법 위반 등 혐의로 이 동아리 회장 등 대학생 4명을 구속 기소하고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마약을 단순 투약한 대학생 8명에 대해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연합 동아리에는 여러 대학 출신 학생들이 모여 여행·스포츠·미식 등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거나 친분을 쌓는다. 일반적으로 동아리 활동은 대학이나 학과 내에서 이뤄지는데, 학생들은 대학의 울타리를 벗어나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연합 동아리에 가입한다. 특히 코로나 시기 대학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돼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진 대학생들 사이에서 연합 동아리가 인기를 끌었다.
연합 동아리 마약 사건이 알려지자 학생들은 “학교라는 최소한의 공통점도 없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 망설여진다”고 했다. 한국외대 19학번 재학생 A(24)씨는 “회원 150명이 넘는 배드민턴 연합 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 ‘마약 동아리’ 사건 이후 동아리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모임에 나가면 물에 타서 먹는 비타민을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건 이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친절을 단순한 호의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경계를 낮추면 범죄에 휘말릴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다고 한다. 연세대 22학번 B(24)씨는 “회원 60명이 넘는 여행 연합 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 한 학기 활동이 끝나면 부원 절반이 교체될 정도로 여러 사람이 오간다”고 했다. 그는 “‘마약 동아리’ 사건처럼 나도 모르는 새에 마약을 권유 받거나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잘 모르는 사람들과 경계심을 풀고 함께 여행을 가기 두려워졌다”고 했다.
연합 동아리 활동에 오명이 씌워지자 동아리 회장을 맡은 학생들도 걱정이 커졌다. 1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한 문화 기획 연합 동아리의 회장 조은혁(26)씨는 “우리 동아리가 마약 사건 터진 동아리와 같은 파티문화기획 카테고리로 분류 되다 보니 동아리 모집 공고를 올린 익명 커뮤니티에 ‘그 동아리와 비슷한 곳 아니냐’는 댓글 달렸다”며 “억울한 마음을 담아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즉시 제명 하는 등 대처할 것’이라고 답 댓글을 달았다”고 했다.
일부 연합 동아리는 지원자 수가 급감해 애를 먹고 있다. 13년째 운영되고 있는 한 여행 동아리의 회장인 김근하(22)씨는 “이전에는 한 번 모집하면 200명 넘게 지원했는데 이번 하반기 모집 지원 인원은 50명 정도로 줄었다”고 했다. 이 동아리에는 20여개 대학에서 모인 100명 가량의 학생이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마약 동아리 사건 이후 새 회원 모집 공고를 올리면서 ‘어떤 불법적인 행위와도 관련이 없다’는 문구를 추가했다”고 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마약 확산 위기감이 커지자 대학 차원에서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고려대는 다음 달 5일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와 마약 예방 캠페인을 진행한다. 한국외대 총학생회는 학교 본부와 마약 예방 관련 캠페인을 논의 중이다.
정부도 마약 예방 교육에 나선다. 지난 14일 식약처는 ‘마약예방부스’를 운영하는 등 대학생 대상 마약 예방 교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대검찰청이 지난 2일에 게시한 ‘마약류 월간동향’ 통계를 보면 올해 상반기에 적발된 20대 마약 사범은 전체의 32.7%인 2852명으로 나타났다.
[김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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