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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나는 신의 아들" 성착취 목사에 필리핀 골머리… 경찰 3000명 투입도 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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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정신적 조언자’
12~25세 여신도 상대로 성범죄 자행
한국일보

지난 26일 필리핀 민다나오섬 다바오시에 위치한 대형 교회 단지 ‘예수 그리스도 왕국’ 앞에서 성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아폴로 퀴볼로이 목사를 체포하려는 경찰과, 이를 저지하려는 신도들이 충돌하고 있다. 다바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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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정부가 아동 성착취·인신매매 등 혐의를 받는 대형교회 목사의 신병 확보조차 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력 3,000여 명을 투입해 대대적 검거 작전을 벌였지만, 추종자들에게 가로막혀 교회 내부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해당 목사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의 친구이자 정신적 조언자인 까닭에 사건은 정치적 문제로까지 번지는 분위기다.

10·20대 여성 성착취 혐의


30일 필리핀스타와 인콰이어러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필리핀 경찰청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 60여 명이 남부 민다나오섬 다바오시 대형 교회 단지 ‘예수 그리스도 왕국’에서 아폴로 퀴볼로이(74) 목사 체포 작전을 수행하던 중 신도들과 충돌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퀴볼로이는 이 단지 설립자다. 1985년 필리핀에 처음 교회를 세웠다. 방송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세력을 넓혀 현재 신도가 전 세계 200개국에 걸쳐 700만 명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다바오시에 위치한 ‘왕국’은 30만㎡ 규모 거대 신앙촌으로, 교회와 학교 격납고 등 건물이 40개에 달하며, 공항으로 바로 통하는 도로마저 연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도 교회 본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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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착취와 인신매매 등 혐의를 받고 있는 필리핀의 아폴로 퀴볼로이 목사가 2016년 5월 필리핀 다바오시에서 방송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다바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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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볼로이는 필리핀과 미국에서 스스로를 ‘신의 아들’로 부르고, 자신을 거부하면 ‘영원한 지옥’에 빠질 수 있다고 협박하면서 수십 년간 12~25세 여성 신도를 성적으로 착취한 혐의를 받는다. 2021년 아동 성매매와 결혼·비자 사기, 돈세탁, 현금 밀반입 등 혐의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연방검찰에 의해 기소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두테르테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그의 권력을 뒷배 삼아 영향력을 발휘했다.

일주일 가까이 대치 이어져


필리핀 수사 당국은 2022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정부 출범 이후에야 퀴볼로이 추적을 본격화했다. 올해 4월 경찰이 퀴볼로이 및 공범 4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를 시도했지만, 신도들이 입구를 막고 저항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경찰은 지난 25일 교회에 경찰 2,000명을 배치하며 체포영장 재집행에 나섰다. 교회 내에 퀴볼로이가 은신해 있을 가능성에 대비, 콘크리트 뒤 인기척을 감지할 수 있는 장비까지 동원했다고 현지 ABS-CBN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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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필리핀 민다나오섬 다바오시에 위치한 대형 교회 단지 ‘예수 그리스도 왕국’에서 신도들이 경내에 진입하려는 경찰을 저지하고 있다. 다바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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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 번째 진입 시도 역시 신도 수백 명에 의해 가로막혔다. 일부 신도가 돌을 던지거나 칼을 휘두른 탓에 경찰 측 부상자가 속출했고, 대치 과정에서 신도 한 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기도 했다. 이후 정부가 경력 1,000여 명을 더 증원했지만 일주일 가까이 대치 상태만 이어지고 있다.

추가 충돌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필리핀 경찰청은 “퀴볼로이가 여전히 시설 내 지하 벙커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를 체포할 때까지 영내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필리핀 항소 법원도 30일 퀴볼로이와 종파 이름으로 등록된 계좌 및 부동산 등 자산 동결 연장 명령을 내리며 재정 압박에 동참했다.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자 필리핀 복음주의교회총연합회(PCEC)는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성명을 내면서 퀴볼로이와 공범에게 자수를 촉구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 측은 거세게 반발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과 아들 서배스천 두테르테 현 다바오 시장은 한목소리로 “경찰이 적법 절차를 어기고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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