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결·극단·증오의 언어 대신 대화·타협·배려 정신 발휘
“최대한 해 줄 수 있도록 하자” 법안 통과 공감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맹성규 위원장이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국토위는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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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재 국민의힘 의원님께서 제안해 주신 현명한 말씀에 따라…"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급하다고 한다면 오늘 밤을 새워서라도 논의해야 한다."(권영진 국민의힘 의원)
"김은혜 의원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복기왕 민주당 의원)
지난 7, 8월 국회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을 둘러싼 논의 과정에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여야 의원들이 한 발언이다. 한국일보가 14일 법안소위 회의록을 확인한 결과, 22대 국회 시작과 함께 막말과 고성으로 점철된 여야의 극단적 대립 분위기 대신 대화와 타협, 존중이 회의장에 자리했다. "피해자 지원에 서둘러야 한다"는 데도 여야가 없었다. 전세사기 특별법은 '최악의 출발'로 평가받는 22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 처리된 첫 쟁점 법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전세사기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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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행 처리' 대신 '대화와 타협' 선택한 여야
민주당은 21대 국회 막바지였던 지난 5월 국회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피해자 구제를 위해 정부 예산을 우선 투입하고, 나중에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선(先)구제·후(後)회수’가 골자다. 피해자 지원을 우선한 것이지만, '다른 사기 피해와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국가 재정 투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국민의힘과 충돌했다.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협의 없이 강행한 이 법은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에 가로막혀 폐기됐다.
정부도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같은 날 국토부는 법안소위 회의에서 '현금 지원 불가'라는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났다. 대신 '피해자 주거비 지원'이라는 간접적 현금 지원 방안을 대안으로 내놨다. 민주당에서는 "상당히 긍정적이다"(염태영 의원) "일부라도 현금성 지원은 참 다행이다"(이소영 의원)라는 평가가 나왔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전세사기 특별법은 비례·형평·평등 원칙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국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재난이고, 피해자 주거권이 무참하게 짓밟혔기 때문에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관계자가 지난 5월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공포 촉구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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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 없애자" 한걸음 더 나아간 정치권
'법안 처리'라는 공감대를 확인한 여야 의원들은 '사각지대'를 줄이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를 향해 "정말 사각지대 없이 주거안정을 확보할 수 있는지 자신할 수 있냐"고 물었다. 민홍철 민주당 의원도 "피해자가 거의 2만 명인데, 여러 피해 유형을 파악하고 있느냐"고 했다. "피해자들이 한결같이 빨리 해 달라고 한다"(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 "벌써 여덟 번째 피해자분이 돌아가셨다. 초조한 마음이 든다"(이소영)는 얘기도 나왔다.
국토위 여당 간사인 권영진 의원은 법안 의결 직후 "국토위에서 머리를 맞대고 전세사기 특별법을 합의 처리할 수 있어 참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야당 간사인 문진석 민주당 의원은 "이번 전세사기 특별법 통과가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계속 피해자들을 살피고 피해자 지원을 보완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여야 모두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민생 문제를 해결한 데 만족감을 드러낸 것이다.
※회의록 전문은 ‘국회 회의록’ 사이트(https://likms.assembly.go.kr/record/mhs-10-010.do)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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