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정책사회부 |
전공의(인턴, 레지던트)가 병원을 이탈한 지 반년이 넘으면서 의료 현장 곳곳에선 “더 이상 못 버틴다”는 아우성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국민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인 응급실은 전문의 사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이어 29일 예고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총파업까지 ‘삼중고’에 맞닥뜨리게 됐다.
위기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는데 정부 대응은 과거 발표를 되풀이하는 수준이다. 정부는 25일 보건의료노조 파업에 대비해 “필수유지 업무와 정상 진료 여부를 지자체와 협력해 지속 모니터링하고 응급·중증 등 필수진료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의 24시간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면서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공공의료기관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한계에 이른 의료 현장에 정부가 말한 여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25일 기준으로 전국 응급의료기관 408곳 중 405곳은 24시간 운영 중이고 나머지 3곳도 완전 폐쇄(셧다운)가 아닌 일부 진료 제한 중”이라며 응급실 대란 우려는 과장된 것이란 입장이다. 또 보건의료노조가 실제로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대응이 가능하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의사와 간호사를 막론하고 “정부가 숫자를 내세워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24시간 운영 중이라는 응급실 대다수가 실제로는 당직 시 응급의학과 전문의 1명만 있고 신경외과나 흉부외과 등 필수의료 배후 진료과 전문의가 없어 환자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도권 대형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이 무인 편의점도 아닌데 24시간 문만 열었다고 ‘이상 없다’고 할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26일에도 호남권에서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환자가 받아주는 병원이 없는 상황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지방의 한 권역응급의료센터 응급의학과 교수는 “혼자 당직을 서다 검사 결과를 확인도 안 한 상태에서 환자를 퇴원시킬 뻔했다. 피로가 한계에 달해 언제 무슨 사고가 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7일 “응급의료, 중환자 치료, 수술, 분만, 투석 등 병원의 필수유지 업무는 법에 따라 기능이 유지된다”며 국민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필수의료는 법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응급실은 물론이고 필수의료과 상당수가 차질을 빚고 현장 의료진이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상황에서 누구를 어떻게 동원해 공백을 메우겠다는 것인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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