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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현장에서] 김선희의 출근길, 김문수의 퇴근길...그리고 고 양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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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어제(26일)부터 오늘 새벽까지 진행됐습니다. 인사청문회는 김 후보자의 과거 막말 문제로 정회와 속개를 거듭하다가 결국 파행됐습니다. “일제 시대 한국인의 국적은 일본이다. 나라가 망했는데 국적이 어딨냐”는 김 후보자의 발언에 야당의원들은 결국 국무위원 자격 자체가 없다며 청문회장을 떠났습니다. 김 후보자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노동계와 야당에선 반노동, 노조 혐오, 극우 인사라며 진작부터 자진 사퇴와 지명 철회를 요구해 왔습니다. 하지만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청문회 때와 마찬가지로 윤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할 분위기입니다. 김 후보자도 인사청문회에서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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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출처 : 연합뉴스)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문수 전 위원장이 노동부 장관에 부적격한 인사로 규정된 데에는 역사인식을 포함해 많은 이유가 있지만, 노동자들에게 가장 크게 와닿는 것은 그의 노동 관련 ‘막말’입니다.

2009년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점거 농성을 했던 쌍용차 노조를 향해 ‘자살특공대’라고 했던 말, 2022년 2월 화물차 운전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운행할 권리를 요구하며 벌인 파업에 대해 “불법 파업엔 손배 폭탄이 특효약”이라고 했던 말 등이 그러합니다. 기업의 손해배상 소송 가압류에 수십 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과거 사례들을 생각한다면 함부로 할 수 없는 말들입니다.

김 후보자는 이날 “광장에서 외치던 소리와 재야에서 외치던 소리, 청년기의 말과 지금의 말, 국회의원 할 때의 말, 도지사 할 때의 말과, 지금 청문 절차를 받고 있는 김문수는 상황 자체가 많은 차이가 난다”고 해명했지만, 당장 김 후보자가 직전까지 몸 담았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시절에도 반노동적 발언은 계속됐습니다. 저임금, 무노조 사업장 사례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감동적”이라고 추켜세웠던 말이 대표적입니다. 노동 3권을 무시한 반헌법적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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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리던 지난 8월 26일 민주노총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했다.
열거하자면 끝도 없는 김문수 후보자의 막말 중 기자 입장에서 특히 지나치기 어려운 발언이 있었습니다. 노동절이었던 지난해 5월 1일, 윤석열 정부의 노조탄압에 항의하며 분신한 고 양회동 씨 관련한 발언입니다.

최근 김문수 후보자가 고 양회동 씨의 사망과 관련해, 분신 방조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음모론에 동조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해당 의혹은 경찰 수사 결과 무혐의로 종결된 사안입니다만, 그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습니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페이스북 글들을 슬쩍 지웠을 뿐입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유족에게 사과할 의사가 없느냐”는 야당 의원 질의에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만 했기에 문제가 없다”며 끝내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문제가 없을까요? 김문수 후보자의 뻔뻔한 말들을 들으며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이 올린 글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김 후보자의 말에 가장 가슴 아파할 사람, 오늘도 고 양회동의 억울함을 함께 호소하고 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김 후보자가 듣고, 사과하길 바라며 적습니다.

폭염 속 1인 시위 중인 고 양회동의 배우자
강원도 춘천시 강원경찰청 앞, 그곳에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자신의 몸만 한 피켓을 든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체감온도 35도에 달하는 한낮의 폭염에도 꼿꼿이 서 있는 그 사람, 김선희. 1년 4개월 전 세상을 떠난 건설노동자 고 양회동 씨의 배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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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지난 7월 31일, 고 양회동 씨 아내 김선희 씨가 강원경찰청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모습. 사진 제공 :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선희 씨가 시위 중인 강원경찰청은 고 양회동 씨가 작년 2월부터 이른바 ‘건폭(건설폭력배)’ 수사를 받았던 곳입니다. 강원도 속초, 고성, 양양, 강릉 북부 지역을 담당하는 노조 간부였던 양회동 씨에게 경찰이 붙인 혐의는 공동공갈죄. 양 씨가 건설사 측에 단체협약에 따라 조합원 고용과 노조 전임비를 요구한 것을 경찰은 공갈과 업무방해로 본 겁니다.

하지만 지난 5월 뉴스타파가 확인해 보도한 사실은 경찰 수사 내용과 달랐습니다. 구속영장에 피해자로 적시된 건설업체 4곳을 포함해 15곳의 건설업체 관계자가 양 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수사기관에 처벌불원서를 낸 겁니다. 처벌불원서에는 “양 씨가 노사간 다리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단협에 따라 노조 전임비를 문제없이 지급했고, 업무를 방해한 사실도 없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심지어 뉴스타파가 접촉한 피해 업체 관계자 중에는 “자신이 왜 피해자로 구속영장에 올라와 있는지 의아해서, 경찰에 직접 물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관계자와 양회동 씨 간 생전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오히려 사측이 업무방해를 호소한 쪽은 고 양회동 씨가 아닌 윤석열 정부였습니다.

노동부도 오고, 경찰도 오고 국토부도 오고 아주 미치겠다. 우리 민노(민주노총) 아무 이상 없다고 훑고 갔는데도 계속 네 군데에서 오네. 얘네들이 하라는 일들은 안 하고, 이상한 일 없다고 해도 왔다 갔다 또 오고….
- 고 양회동 씨-건설업체 관계자 전화통화 내용(2023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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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측의 항변에도 수사기관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양 씨에게 구속영장까지 청구했습니다. 동료들에 따르면, 고 양회동 씨는 윤 정부의 ‘건폭몰이’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쌍둥이 아이들에게 구속되는 모습을 보이게 될까 봐, 떳떳하지 못한 아빠로 보일까 봐 그 점을 가장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노동절이자, 법원의 구속영장 실질 심사가 예정돼 있던 2023년 5월 1일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노조, 정당 등에 남긴 5부의 유서 안에 자신이 분신하게 된 이유를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먹고 살려고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떳떳하게 바르게 노동조합 활동을 했는데 구속영장 청구라니 정말 억울합니다.”
- 고 양회동 씨가 가족에게 남긴 유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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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뉴스타파가 지난 5월 2일 보도한 고 양회동 씨의 유서. 가족, 노동조합, 정당, YTN기자 등에 남긴 유서에는 윤석열 정부의 노조탄압에 대한 억울함이 담겨 있었다
이런 남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아내 선희 씨가 나서고 있는 겁니다. 마트 노동자인 선희 씨는 주 5일은 일하고,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강원경찰청으로 출근합니다. 선희 씨 집이 있는 강원도 속초에서 춘천 강원경찰청까지는 1시간 30분 남짓한 거리. 오전 9시 중학생인 쌍둥이 아이들을 등교시킨 뒤 바로 춘천으로 이동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피켓 시위를 합니다. 선희 씨가 못 가는 날에는 고 양회동 씨의 동료와 시민들이 자리를 지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으로 갑니다. 고 양회동 씨 관련 분신 방조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 보도와 CCTV 유출 사건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섭니다. 잠시, 잊고 계실 분들을 위해 해당 조선일보 기사와 CCTV 유출 사건이 어떤 내용인지 간략히 설명해 드리면 이렇습니다.

고 양회동 씨 사망 2주 남짓 뒤였던 작년 5월 16일, 양 씨의 분신으로 윤 정부의 노조 탄압에 대한 비판이 거셀 때였습니다. 조선일보는 세간의 시선을 전혀 다른 곳으로 돌리는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기사 제목은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노조 간부가 양 씨의 분신을 말리지 않고, 보기만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사에는 양 씨의 분신 상황이 담긴 CCTV 장면이 유족 동의도 없이 사용됐습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해당 사진에 시너통까지 합성해 더욱 직접적으로 분신 장면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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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6일에 게재된 조선일보 온라인 기사
조선일보는 같은 내용의 기사를 지면에 한 번, 온라인에 두 번이나 반복 게재했습니다. 이 보도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이틀 사이 네이버에서만 가장 많이 본 조선일보 기사 1위에 올랐고, 댓글은 4,000여 개나 달렸습니다. 양 씨의 죽음을 두고, 분신 방조, 기획 분신이라는 음모론이 확산했습니다. 보도 다음 날, ‘건폭몰이’로 비판받던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해당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동료의 죽음을 투쟁에 이용하려 했던 건 아닌지 의문”이라며 분신 방조 의혹을 확대했습니다.

하지만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일보 보도 직후, 노조 간부가 양 씨를 말렸다는 증언, 당시는 불을 끌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는 강릉경찰서의 설명이 담긴 반박 보도가 바로 이어졌습니다. 분신 방조 의혹을 수사한 강원경찰청도 “자살 방조 혐의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특히 기사에 쓰인 CCTV 화면은 영상 감정 결과, 춘천지검 강릉지청의 CCTV 화면과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영상을 보유하고 있던 수사기관이 조선일보 기자에게 영상을 유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조선일보는 이 영상을 받아 유족과 건설노조에 대한 취재도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왜곡 보도를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보수언론과 국가기관의 공작으로 의심받는 기사를 원희룡 장관이 친히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확산시켰던 겁니다.

조선일보 보도로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본 선희 씨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친동생이나 다름 없던 양회동 씨를 눈 앞에서 잃은 것도 모자라 순식간에 자살 방조범으로 몰린 건설노조 간부, 홍성헌 씨는 일터를 떠나 지난 1년간 얼굴을 가리고 지냈다고 합니다.

선희 씨와 성헌씨, 건설노조는 조선일보와 해당 기사를 보도한 기자, 해당 보도를 인용해 고인과 노조간부의 명예를 훼손한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고발했습니다. 신원불명의 CCTV 유출자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하지만, 수사 결과는 1년 넘게 감감무소식입니다. 수사를 맡은 서울지방경찰청은 유족에게 수사 진행상황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에 선희 씨가 남편 1주기 즈음부터 시작한 강원경찰청과 경찰청 앞 시위는 벌써 석 달을 넘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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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고 양회동 씨의 배우자 김선희 씨가 CCTV 불법 유출 사건의 수사를 촉구하며 경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남편과 함께 뜬 그 이름 ‘김문수’
선희 씨가 남편을 떠나보낸 후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은 또 있습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매일 남편 이름과 건설노조를 검색하는 일입니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퇴근해서 또 한 번, 남편과 관련된 뉴스를 찾아봅니다. 남편 관련 경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진척은 있는지, 건설노조 조합원들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기 위해섭니다.

최근에는 남편 이름을 검색하다가 썩 반갑지 않은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그 이름 ‘김문수’. 윤석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전 경사노위 위원장의 이름입니다.

제 남편 이름과 김문수의 이름이 함께 떠서 보니, 김 후보자가 원희룡 전 장관과 마찬가지로 조선일보 기사에 동조한 글을 올렸다는 기사가 있더라고요. 정말 화가 나요. 이미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이 난 일인데, 사과도 안 했잖아요. 그런 사람이 노동부 장관 후보라니요.
- 김선희 / 고 양회동 씨 배우자


김문수와 고 양회동 씨의 연결고리는 페이스북이었습니다. 그가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페이스북에 문제의 조선일보 보도를 공유하며 음모론에 동조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난 겁니다. 김문수 위원장은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보다도 하루 앞선 작년 5월 16일, “충격적”이라며 조선일보 기사를 공유했습니다. 그러면서 “죽음은 막고 생명은 살리는 게 올바른 노동조합 정신이 아닐까요?”라며 마치 분신 방조 의혹이 사실인 양 동조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날은 고 양회동 씨 추모 집회가 열리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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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페이스북 게시글
“고인의 명복을 빈다”던 김문수의 두 얼굴
그런데 김문수 전 위원장은 위 페이스북 글을 올리기 일주일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선 고 양회동 씨 사망에 대해 유족에게 송구하다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말 명복을 빕니다. (고 양회동 씨) 가족들이 부인도 계시고, 어린 자녀들이 2명이나 있는데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요. 이런 일이 다신 일어나선 안 될 일인데, 일어난 데 대해서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중략) 건설현장의 불법을 바로 잡는 과정에 양회동 지대장님이 희생이 됐는데, 그런 과정에 어려운 점이 있지만 보다 더 잘 이렇게 어려운 점들을 이겨내고 서로 대화도 하고…(중략) 경찰관도 더 노력을 많이 해야되고, 건설현장에서 노사가 다 함께 노력해서 불법이 없도록 해서 이런 일이 다시는 없기를 기원합니다.
- CPBC 라디오 ‘김혜영의 뉴스공감'(2023.5.9)


방송에 나와서는 송구하다고, 서로 대화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고 해놓고 일주일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는 유족에게 2차 가해가 되는 조선일보 보도를 사실확인 없이 공유하고 확산시켰던 겁니다. 사회적 대화로 노사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경사노위 수장으로 있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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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회노동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위원회 비전 소개 화면
양회동 분향소 철거 현장 외면한 김문수의 퇴근길
고 양회동 씨와 관련해 김문수 후보자의 두 얼굴을 보여준 장면은 또 있습니다. 2023년 5월 31일, 고 양회동 씨 사망 한 달째가 되던 날 저녁 7시경의 일입니다. 이날 서울 광화문 인근 파이낸스 센터 앞에선 건설노조와 시민사회·종교계가 공동 주최하는 고 양회동 씨 추모제가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이날 경찰은 6년 만에 캡사이신 분사기를 동원하는 등 추모 집회에 앞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그리고 고 양회동 씨의 시민분향소를 행정대집행 예고도 없이 강제 철거했습니다. 도로법상 인도 위 적치물은 관할 구청에서 우선 행정대집행 예고를 한 뒤, 그래도 치우지 않을 경우 철거를 합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습니다. 법 절차를 지키라는 노조 측 변호사의 항의에도 경찰은 가차 없이 분향소를 뜯어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건설노조원 여러 명이 쓰러지고, 다치고, 연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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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지난해 5월 31일, 서울시 중구 파이낸스 센터 앞 인도 한쪽의 잔디밭에 설치된 고 양회동 씨 천막분향소.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려는 경찰과 이를 막으려는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대치 중이다
그렇게 시민과 노조, 경찰이 뒤섞여 아수라장이던 현장. 그곳에서 낯익은 얼굴이 발견됐습니다. 김문수 전 위원장이었습니다. 유튜브 ‘김문수 TV’ 총괄제작국장 출신으로 사적 채용 논란이 일고 있는 최창근 경사노위 자문위원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의 평소 태도가 어찌 됐든, 사회적 대화기구의 수장이 고 양회동 씨 추모제에 자문위원과 함께 등장했다니 무언가 중재를 하거나 현장 파악 차 들렀나 싶었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냥 지나쳐 갔습니다. 당시 김 위원장을 발견한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경사노위 위원장이 여길 그냥 지나가네”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김문수 위원장을 발견한 기자와 시민들이 그를 뒤쫓아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기자와 시민들이 이 현장은 왜 찾은 건지, 지금 상황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등을 물었습니다. 노동계 최대 현안인 건설노조 집회 현장에 경사노위 위원장이 나타났다면, 당연히 물을 수 있는 질문들입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대꾸하지 않고 가던 길을 걸어갔습니다. 보수 지지자들이 질문하려는 시민들을 밀치고, 넘어뜨리는 상황에서도 못 본 척 걸어갔습니다. 곁에 있던 최창근 자문위원이 그의 호위무사 역할을 했습니다.

그 때, 김문수 위원장과 친분이 있어 보이는 기자가 웃는 얼굴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집회 때문에 현장을 찾은 건가요?.” 그제서야 밝은 얼굴로 김문수 위원장이 답변을 합니다.

“나 퇴근하는 길이야. 우리 사무실이 여기여서 나 퇴근하는 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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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2023년 5월 31일 김문수 전 경사노위 위원장이 고 양회동 씨 분향소 강제 철거 현장을 지나가며 기자의 질문에 웃으며 답하고 있다
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답변이었습니다. 그냥 퇴근길이었다니. 경사노위 사무실이 추모 집회 현장 근처였으니 진짜 퇴근길일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퇴근길에 발생한 경찰과 노동자 간 충돌 상황에 대해 경사노위 위원장으로서 어떤 생각이나 입장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김문수 위원장의 밝은 표정에 용기를 얻어 저 역시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기자 / 아무래도 관심 사안인 것 같은데, 지금 현장을 좀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김문수 전 경사노위 위원장 / 아니 지금 길 가는 사람을 이렇게 하는 건 완전히 불법이야. 나 퇴근하는 길인데 왜 따라다녀.
기자 / 지금 (고 양회동 씨 추모제) 현장을 좀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해서요.
김문수 전 경사노위 위원장 / 이거 지금 길 가는 사람을 완전 이렇게 하는 건 불법이지.
기자 / 퇴근하시는데, 워낙 중책을 맡고 계시니까 지금 현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요.
김문수 전 경사노위 위원장 / 퇴근하는데 인터뷰하고 이러는 건 불법이지.
기자 / 어떤 게 불법이죠?
- 뉴스타파 기자-김문수 전 경사노위 위원장간 대화


“퇴근길 인터뷰는 불법”이라는 황당한 말로 답변을 피한 그는 일주일 뒤, 서울대 총동창회 조찬 포럼에 나와선 그날의 퇴근길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양회동이라는 건설노조, '건폭' 이렇게 해서 분신해서 죽었잖아요. 거기에 대해서도 서울대병원에 지금 아직까지도 영안실에 모셔다 놓고 아직까지도 장례를 안 치릅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는 언론이 문제가 있다라고 해줘야 하는데 안 합니다. 왜 안 하냐면 당장 여기 조선일보 앞에서도 시위를 하고, 어떤 해악을 끼칠지 모르잖아요. 저도 퇴근길에 가다 보면 시위하는 사람들이 저보고도 막 달려듭니다.
- 김문수/ 전 경사노위 위원장 (2023.6.8)


장례도 미룬 채 억울함을 호소하던 건설노조와 고 양회동 씨를 ‘건폭’에 비유하고, 조선일보 보도에 항의했던 사람들과 자신에게 질문하려던 시민들을 시위꾼으로 매도한 겁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해 봤습니다. 김문수 위원장이 그날 그렇게 퇴근했더라도, 강연장에서 고 양회동 씨를 ‘건폭’으로 매도했더라도, 건설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건설노조나 유족과 한 번쯤 대화 시도를 하지 않았을까.

김문수 후보자에게 직접 고 양회동 씨와 관련해 경사노위 수장으로서 한 일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답은 오지 않았습니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그의 재임 기간 2년 치 업무추진비 내역, 회의 기록 등을 확인해 봤습니다. 건설노조와 만난 일정이나 회의 기록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경사노위 대변인실 역시 “김문수 전 위원장이 건설노조를 만난 기록은 없다”고 확인해 줬습니다.

결국 그가 경사노위 위원장으로서 분신까지 하며 억울함을 호소한 고 양회동 씨 사건과 한 일이라고는 페이스북에 조선일보의 허위 보도를 공유하며 음모론을 퍼트린 것,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양 씨를 ‘건폭’으로 규정하며 또다시 명예를 훼손한 것, 그 뿐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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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동자 고 양회동 씨
김문수가 외면한 건설노동자들의 진짜 현실
김문수 후보자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이 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큰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노동현장의 법치주의가 바로 세워졌다고 합니다. 그럴까요.

윤석열 정부는 대대적인 ‘건폭’수사를 벌이며, 작년 1월부터 6월까지 6개월간 20차례 넘게 건설노조를 압수수색했습니다. 2000명의 조합원을 조사하고, 37명을 구속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 양회동 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분신했고, 사망했습니다.

이후 수많은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조합원 채용을 꺼리는 분위기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최근 건설노조가 인천지역 고용 실태를 조사했는데, 형틀목공, 해체공 등 4개 직종의 건설노조 소속 조합원 914명 중 고용된 사람은 180명으로 20%에 불과했습니다.

임금도 줄었습니다.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에 따르면, ‘건폭’ 수사 이후 건설노동자 임금은 월 100만 원 가량 줄었습니다. 건설현장에서 노조가 사라지자 노조가 단협으로 어렵게 얻어냈던 노동자들의 유급 연차수당도 다시 사라졌습니다.

건설노동자 임금체불은 점점 늘고 있습니다. 노동부 조사 결과, 지난해 건설업 임금체불액은 4363억원으로 2022년에 비해 1.5배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올해 상반기 임금체불액만도 2478억원으로 작년 대비 26% 늘었습니다. 건설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건설업체의 불법이 사라졌을까요? 국토부가 고 양회동 씨 사망 이후인 지난해 5월 23일부터 8월 30일까지 석달간 전국 건설 현장 500여 곳을 점검했는데, 35%가 넘는 179개 건설 현장에서 불법 하도급이 적발됐습니다. 총 300건이 넘는 불법 사례 중, 무자격 업체의 불법 시공이 221건으로 가장 많았고, 하청이 또 하청을 내리는 불법 재하청도 111건이나 됐습니다.

노동자 처우만 문제가 아니에요. 건설 안전이나 불법하도급, 건설업체에서 노동자들 부르는 호칭까지도 과거로 돌아갔어요. 그동안 건설업체의 불법을 노동조합이 많이 견제하면서 노동환경이 나아진 부분이 있었어요. 건설현장 내 눈치가 보이는 주체가 있는 거랑 없는 건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런데 이제 노조가 집회만 하면 정부에서 알아서 잡아가니 기업은 노동자 부리기가 더 쉬워졌고, 굳이 노동 환경도 개선할 필요가 없어진 거죠. 정말 딱 2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에요.
- 김현웅 /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사무국장


결과적으로 소위 윤 정부의 ‘건폭 수사’ 이후, 건설 노동현장의 불법하도급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생존권만 더 위태로워졌습니다. 숙련된 건설노동자들은 조합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자리를 잃었고 그 자리는 외국인 노동자가 대신 메우고 있습니다. 사측에 문제제기 하기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들로 채워진 건설현장의 노동여건은 이전보다 더 악화되고 있고요. 대체 무엇이 노동개혁의 성과라는 것인지 근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건설노동자 모욕한 사람이 노동 약자 위한다고요?”
지난 1일, 김문수 전 위원장은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고용노동부 강남지청 사무실에 출근하며 기자들 앞에서 포부를 밝혔습니다. 임기 중 노동 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노동 약자) 이분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실태조사에 역량을 좀 집중하고 싶다.
-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2024.8.1)


이런 말을 들은 선희 씨는 헛웃음만 나왔다고 합니다.

저도 마트에서 만 12년을 일한 비정규직이에요. 1년 마다 근로계약을 체결하지만 그래도 무기계약직 신분이라, 일용직 건설노동자들 보다는 상황이 나아요. 우리 사회 가장 약한 노동자가 건설노동자에요. 그런 건설노동자들을 폭력배 취급했잖아요. 그런 사람이 노동 약자를 우선하겠다고한약속을지킬까요? 저는 기대하지 않아요. 다만 지금보다 상황이 악화될까 봐 걱정입니다. 건설노동자들이 다들 가장인데 일자리가 없어서, 더 힘들어질까봐 그게 가장 걱정이에요.
- 김선희 / 고 양회동 씨 배우자


선희씨는 지금도 아이들 앞에서 남편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편 기억을 소환하면 그리워지고, 아픈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아들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내 얼굴색은 왜 이래?”라고 묻기에 “아빠 닮아서 그렇지” 라며 오랜만에 남편의 기억을 꺼냈다고 합니다.

철근공이었던 양 씨는 얼굴은 물론 어깨까지 늘 까맣게 익어 있었다고 합니다. 폭염 속 뜨겁게 달궈진 철근이 양 씨의 어깨까지 달군 겁니다. 그렇게 폭염 속에서 몸에 철근 자국을 남겨가며 일을 했지만, 정당한 대가는커녕 임금 체불위기에 놓이는 일이 다반사로 발생하자 노조에 가입했던 겁니다.

요즘 같은 날씨면 이런 생각을 해요. 그늘 하나 없는 곳에서 남편이 정말 힘들었겠구나. 어깨에 수건을 덧대고 일했어도 철근 자국이 남았거든요. 건설노동자들은 다들 그렇게 일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들을 ‘건폭’으로 몰다니요.
- 김선희 / 고 양회동 씨 배우자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윤석열 정부의 ‘건폭’ 발언은 시민들에게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형성함으로써 노조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노조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이런 발언으로 인해 차별이 확산되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국가기관의 지적에도 김문수 후보자는 결코 건폭 발언을 사과하거나,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 보도에 동조한 부분에 대해서도 끝내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김문수 전 위원장이 노동부 장관이 된다는 건, 선희 씨가 바라는 진상규명의 날이 더욱 멀어졌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습니다. 선희 씨는 앞으로 얼마나 더 강원경찰청으로, 경찰청으로 출근해야 할까요. 남편을 잃은 노동자가 대체 언제까지 휴일을 반납하고 1인 시위를 해야 할까요.

김문수 후보자에게 앞으로 기대하는 바는 정말 없어요. 하지만 분신 방조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확인됐잖아요. 그건 사과해야죠. 반드시 사과해야 합니다.
- 김선희 씨 / 고 양회동 씨 배우자


뉴스타파 홍여진 sara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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