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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금감원 “대출 과도한 은행 DSR 낮출 것”···사실상 ‘가계대출 총량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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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대출총량 계획 대비 높은 은행 규제 경고

금융권의 한도제한 조치는 중저소득 계층 피해 집중

경향신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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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에 대한 ‘더 센 개입’을 예고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발언이 나온 지 이틀만에 금감원이 대출이 과도한 은행을 별도 관리한다는 사실상의 ‘총량 규제’ 계획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때 도입됐던 총량규제는 일부 중저소득 차주들이 대출에서 배제되는 부작용 등으로 폐지된 제도다. 전문가들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강화라는 ‘정공법’ 대신, 지침도 없이 은행별 대출 총량을 제한하는 당국의 방식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금감원은 27일 설명자료를 내고 가계대출 증가액이 연초 계획 대비 과도한 은행에 대해 별도 규제를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박충현 부원장보는 “은행 전체의 현 DSR 평균은 20~30% 수준”이라며 “연간 가계대출 경영계획 대비 실적이 과도한 회사에 대해선 평균 DSR을 낮추도록 지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DSR 비율을 낮추거나 DSR 커버리지를 일괄 넓히는 게 아니라, 개별 은행이 계획한 대출 총량을 못지키면 은행별 DSR 평균값을 내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이달 21일 기준 4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이 연초 계획 대비 150.3% 수준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선 2021년 시행됐다가 폐지한 총량 규제가 사실상 부활했다고 말한다. 총량을 관리하지 못한 은행에게 ‘패널티’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도입된 총량규제는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율을 5~6%로 강제 제한한 규제다. 윤석열 정부는 이 총량 규제를 폐지했는데, 현재 당국과 은행의 대응은 2021년 당시와 판박이 수준이다. KB국민·우리·신한은행 등이 최근 내놓은 마이너스통장 한도 축소, 생활안정자금 제한, 주담대 보험 제한 등도 2021년 도입됐던 정책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2021년엔 당국이 은행권과 만나 별도 회의를 거쳐 대출 제한 조치들이 나왔다면, 이번에는 금감원장 발언 후 개별 회사가 우후죽순 대책을 내놓고 있다”며 “지침도 없이 부채를 줄이라는 황당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총량규제로 수도권 집값 상승 억제?
DSR 확대 대신 효과없는 우회로 택해


이런 방식의 총량 규제는 이미 2021년 부작용이 확인됐다. 자금 수요에 비해 대출 공급이 줄면서, 은행이 임의로 차주를 고르는 ‘신용할당’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업계에선 정책대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중저소득 실수요 계층이 이번에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본다. 이윤수 서강대 교수는 “상환능력이 충분히 되는 사람이 대출을 못받는 시장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총량을 못맞춘 은행의 평균 DSR값을 낮춰도, 같은 은행에서 누구는 한도가 높게 누구는 낮게 나오는 예측불가능한 상황이발생할 수 있다.

이 원장은 지난 25일 KBS 인터뷰에서 대출 규제로 수도권 집값 상승을 막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효과는 불분명하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전국 주택 수 1500만호 중 상승지역은 강남과 그 주변의 30만호이고 나머지는 보합이거나 거래가 저조하다”며 “강남권은 대출로 거래가 이뤄지지도 않는 만큼 일괄 대출 규제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라고 말했다. 변세일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이런 식의 대출 규제가 나오면 실수요자가 집을 못 사게 되면서 지니계수가 악화하는 일이 그간 반복됐다”며 “주택구입 구조의 불평등성이 조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DSR 규제라는 대출 관리 ‘정공법’ 대신, 지침도 없이 은행권을 쥐어짜는 ‘관치금융’을 한다며 비판했다. 현재 40%로 관리되는 DSR 규제는 전체 대출의 60%를 차지하는 전세자금·개인사업자·중도금 대출 등에서 모두 제외돼 있어 실효성이 낮다는 분석이 많다. 은행업감독업무시행 세칙상 금감원장이 예외로 규정하면서 수많은 대출 상품이 DSR 규제에서 빠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들은 DSR을 모든 부채에 30%대로 장기 관리하면서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감소하는 데 성공시켰다. 반면 한국은 DSR을 너무 늦게, 제한적으로 적용해 가계부채 비율을 줄이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DSR규제를 30%로 강화하면 엄청난 불만이 나올 수 있지만, 가계부채 관리의 정공법이고 특정 대상을 염두에 두지 않는 비차별적인 규제”라며 “당국은 물량 조절로 은행을 압박하는데, 이는 효과도 없고 시장 질서를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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