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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이슈 미술의 세계

뉴욕 소호·첼시 갤러리 시대를 연 전설적 갤러리스트 폴라 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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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 서울 참가 계기 한국 언론 첫 인터뷰…"한국과 관계 재구축하고 싶어"

"돈이 모든 것의 동기가 되는 시대에 '신사적인 미술품 딜러'로 남을 것"

연합뉴스

폴라 쿠퍼[폴라 쿠퍼 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968년 미국 뉴욕의 프린스 스트리트 96-100번지. 지금은 '소호'로 불리는 이 지역에 폴라 쿠퍼라는 30세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딴 갤러리를 열었다. 가로등 하나 없이 불법 작업장과 중고 의류상들이 있던 이곳에 들어선 첫 갤러리였다. 이 지역에는 이후 속속 갤러리가 생기기 시작했고 1975년이 되자 90개 가까운 갤러리가 밀집한 지역이 됐다.

폴라 쿠퍼 갤러리는 상업화된 소호를 떠나 1996년 뉴욕 맨해튼 첼시로 이전했다. 소호에서 그랬던 것처럼 폴라 쿠퍼 갤러리가 첼시로 옮겨간 이후 다른 갤러리들도 따라서 이전하면서 소호에 이어 첼시가 예술의 거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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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미국 뉴욕 소호에 있던 폴라 쿠퍼 갤러리 모습.[폴라 쿠퍼 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소호와 첼시가 예술의 거리가 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폴라 쿠퍼 갤러리의 창립자 폴라 쿠퍼를 최근 서면으로 만났다. 갤러리의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프리즈 서울 참가를 계기로 한 인터뷰로, 올해 86세로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폴라 쿠퍼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쿠퍼는 갤러리를 처음 열었던 때를 두고 "소호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대부분 불법 운영되던 스웨트숍(sweatshop. 열악한 환경의 저임금 작업장)과 중고 의류상들과 함께 살았다"면서 "내가 아는 예술가들은 모두 소호 시내에 살았기 때문에 나도 자연스럽게 거기 살게 됐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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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첼시의 폴라 쿠퍼 갤러리 외관
[폴라 쿠퍼 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폴라 쿠퍼 갤러리는 특히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1968년 갤러리의 첫 전시 역시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위주였다. 칼 안드레, 댄 플래빈, 도널드 저드, 로버트 라이먼 등이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다. 이 전시는 개념미술의 대가 솔 르윗이 그의 대표작인 드로잉 벽화를 처음으로 선보인 자리이기도 하다.

현재는 생존 여성 작가 중 가장 작품값이 비싼 작가로 꼽히는 세실리 브라운을 비롯해 2010년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이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크리스천 마클레이, 서울 청계천의 소라 모양 조형물 '스프링'의 클래스 올덴버그와 코셰 반 브루겐 부부 등을 비롯해 루돌프 스팅겔, 소피 칼, 제니퍼 바틀렛, 조엘 샤피로, 칼 안드레, 토바 아우어바흐 등 40여명의 전속 작가를 두고 있다.

다른 유명 갤러리들과는 달리 폴라 쿠퍼 갤러리는 미국 내 다른 지역에 지점을 늘리거나 해외로 진출하지 않고 오랫동안 뉴욕을 벗어나지 않았다.

쿠퍼는 "갤러리를 뉴욕 밖으로 확장하지 않고 예술과 작가에 집중하며, 공간보다는 아이디어를 확장하는 데 집중하기로 한 것은 매우 의식적인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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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 쿠퍼[폴라 쿠퍼 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폴라 쿠퍼 갤러리는 한국에 직접 진출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아트바젤 홍콩에 2019년 참여하며 아시아 시장에 처음 발을 디뎠지만, 그 후에는 아트바젤 홍콩에는 참여하지 않고 대신 프리즈 서울에 2022년부터 계속 부스를 내고 있다.

쿠퍼는 1980년대 후반 국제갤러리를 통해 소속 작가들을 한국에 소개했던 일을 돌아보며 "한국 미술시장의 확장과 한국과의 관계를 재구축하는데 열정이 있다"면서 "1980∼1990년대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났던 컬렉터들과 다시 연락하고 새롭고 역동적인 관객을 만나 함께 소통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쿠퍼는 한국 작가 중에서는 "이승택 작가의 열렬한 팬"이라면서 올해 1∼2월 폴라 쿠퍼 갤러리에서 열렸던 '책'(Books)전에서 이승택의 초기작을 소개했다고 전했다. 또 한국의 단색화를 두고는 "우리 갤러리 소속 작가들의 미니멀하고 단색조 작업과 다양한 방식으로 공명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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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폴라 쿠퍼 갤러리에서 열린 '솔 르윗: 드로잉 벽화 & 조각'전 전시 모습[폴라 쿠퍼 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폴라 쿠퍼 갤러리는 현재 파트너 4명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쿠퍼는 "일상적인 갤러리 운영에서는 한발 뒤로 물러나긴 했지만, 은퇴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작가들과 직접 소통하고 전시를 설치하는 일은 계속하고 있다. 전시 설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부침이 심한 미술 시장을 56년째 지켜본 그는 가장 어려웠던 때를 묻자 "지금"이라고 말했다.

"지금이 가장 도전적인 시기입니다. 돈이 모든 것의 동기가 되어버렸어요. 세계 곳곳에 지점을 두고 수백명의 직원을 고용한 대형 갤러리들이 몇몇 있죠. 그들이 다루는 것은 상품이고 일부는 결국 운영비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살아남는 갤러리들은 '사치품 공급자'로 살아남고요."

쿠퍼는 "작품을 전시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학구적이고 사려 깊은 태도로 예술과 예술가들에게 집중하며 '신사적인 미술품 딜러'(gentleman art dealers)로 남는 게 우리의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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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파이퍼, Justin Bieber Head (Manila), 2018-2023, Santol wood, paint, 41.3 x 20.3 x 22.2 cm[폴라 쿠퍼 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폴라 쿠퍼 갤러리는 다음 달 4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하는 프리즈 서울에서 솔 르윗과 칼 안드레, 리처드 세라, 크리스천 마클레이, 제니퍼 바틀렛 등과 백남준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갤러리는 특히 올해 가을 스페인의 구겐하임 빌바오에서 회고전이 열리는 미국 작가 폴 파이퍼의 팝스타 저스틴 비버 나무 조각 작품을 주목할 작품으로 꼽았다.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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