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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전기차? 아직은 엔진차"…세계 1위 토요타가 옳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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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위기에 재조명되는 ‘아키오 전략’



■ 경제+

“일본 국민차의 몰락이다.” 모든 기업엔 위기가 온다. 역사가 오래된 기업일수록 위기도, 그 위기를 극복한 경험도 많다. 1937년 설립된 토요타 자동차 역시 그렇다. 지난 6월 품질 인증과 관련한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전 세계 언론은 세계 1위 토요타가 위기에 빠졌다고 대서특필했다. 품질 인증 항목은 엔진 출력과 후면 충돌 등 총 6개 항목에 달했다. 올해 1월 말에도 토요타의 자회사인 다이하쓰공업에서 64개 차종의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신뢰’를 저버린 책임을 지고 창업 3세인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여러 번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토요타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나갈 수 있을까.

중앙일보

토요타는 지난 5월 신형 하이브리드 엔진을 개발한다고 밝혔다. 자신이 잘하는 하이브리드카 등 ‘엔진’으로 돈을 벌어 전기차 연구 자금을 확보한다는 토요타의 전략은 전기차 업계가 캐즘에 시달리는 요즈음에 빛을 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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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이 심해지자 시장은 토요타를, 아니 아키오 회장을 다시 보고 있다. ‘전기차 시기상조’를 주장했던 토요타 제국은 하이브리드차를 앞세워 혼자 씽씽 달리고 있다. ‘토요타 전문가’로 유명한 제프리 라이커 미시간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최근 중앙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토요타가 향후 5년 뒤에도 세계 1위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레이서 ‘모리조’와 회장 ‘아키오’= 토요타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인간 아키오’를 알아야 한다. 그는 직접 운전대를 잡고 레이스에 참가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땐 도요다 아키오가 아닌 ‘모리조(MORIZO)’라는 가명을 쓴다. 레이싱에 대한 열정으로 40대인 2000년대 초반에 토요타의 마스터 드라이버 고(故) 나루세 히로무에게 운전 훈련을 받았다.

아키오 회장이 글로벌 경영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09년이다. 직전 해 미국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토요타가 세계 1위 자동차 회사에 오른 이후 그는 최연소 사장(당시 43세)에 올랐다. 2010년 그에겐 큰 위기가 찾아왔다. 토요타에서 생산한 자동차에서 운전석 매트가 가속 페달에 끼여 급발진을 유발한 이른바 ‘페달 게이트’다.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대의 토요타 차량이 리콜됐다. 설상가상으로 2011년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 생산시설 곳곳이 타격을 입었다. 이 여파로 GM과 폭스바겐에 밀려 토요타는 세계 자동차 판매 1위에서 3위로 다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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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는 지난 5월 신형 하이브리드 엔진을 개발한다고 밝혔다. 자신이 잘하는 하이브리드카 등 ‘엔진’으로 돈을 벌어 전기차 연구 자금을 확보한다는 토요타의 전략은 전기차 업계가 캐즘에 시달리는 요즈음에 빛을 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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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커 교수는 이때 아키오 회장을 만났다. 2011년 당시 아키오 회장과의 대화 일부를 소개했다. 그는 아키오 회장의 위기관리 능력과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며 그를 ‘작은 거인’이라 했다. 2011년 『토요타 언더파이어』 라는 책을 발행하고 (토요타 본사가 위치한) 나고야에서 아키오 회장을 만났는데, 그때 그는 최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라이커 교수가 꼽은 토요타의 대응은 크게 둘이다. 조직 효율화, 신흥시장 개척. 그는 “(아키오 회장이) 조직문화를 가장 먼저 손봤다”는 데 주목했다. 그런 절치부심 노력 끝에 2020년 토요타는 세계 자동차 판매 대수 1위를 되찾았고 지난해까지 4년 연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토요타 ‘가이젠(改善)’의 위기=토요타를 세계 1위로 회복시킨 아키오 회장에게 올해 ‘인증 데이터 조작’ 위기는 더 뼈아프다. 이번 인증 조작 사태를 보고 많은 전문가는 토요타가 ‘효율 경영의 덫’에 걸렸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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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오 회장은 지난 1월 30일 나고야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룹사의 잇단 품질 인증 부정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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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는 마른 수건도 쥐어짜는 식의 비용 절감 경영으로 유명하다. 한때는 ‘가이젠(개선·改善)’이 토요타의 혁신 비결이었지만 경직된 조직문화와 섞여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커졌다. 토요타에는 직원들이 익명으로 사내 부정을 고발할 수 있는 ‘제보 창구’가 있었지만, 이번 인증 사기는 국토교통성의 지시에 따라 조사를 하던 중 드러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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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최근 토요타는 이런 경직된 조직문화를 바꾸려고 시도 중이다. 직원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가장 대표적인 건 주 3일 휴무제 도입이다. 라이커 교수는 향후 5년간 고령자들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젊은 인재들이 그 자리를 채우며 이전과는 다른 문화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엇보다 최근 소프트웨어 인력을 크게 늘리고 있다. 기존의 조립 생산라인은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며, 완성차가 소프트웨어 기반의 자동차로 진화할 것이란 예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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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주도면밀한 ‘전기차 비관론자’의 계산=아키오 회장에겐 ‘전기차 반대론자’란 꼬리표가 붙는다. 테슬라가 주도해 왔고, 전 세계 완성차 기업들이 속속 합류한 전기차 시장에 대해 토요타는 소극적이다 못해 비관적이다. 하지만 토요타는 다른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전환을 앞당길 때 자신들이 가장 잘 만드는 분야인 하이브리드차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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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모두 탑재하는 하이브리드차는 전기차보다 생산 과정이 복잡하다. 두 가지 동력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조정하는 기술이 핵심이다.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카가 당분간 더 팔릴 것이란 토요타의 전략은 적중했다. 지난해 토요타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4~6월엔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한 97만 대의 하이브리드 차량을 판매했다. 전체 토요타 판매량의 40%가 하이브리드차였다. 캐즘을 겪으며 고전하고 있는 전기차 시장과 정반대다. 토요타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한 1조3084억 엔(약 11조9283억원), 같은 기간 매출은 12% 늘어난 11조8378억 엔(약 107조9217억원)으로 집계됐다.

중앙일보

정근영 디자이너


올해 초 아키오 회장은 “아무리 전기차 전환이 진행되더라도 전기차의 시장점유율은 최대 30%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70%는 하이브리드나 수소전기차, 수소엔진차 등이 차지할 것이다”라고 전기차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엔진차는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토요타가 전기차 개발에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5월엔 전기차 투자에 1조 엔을 더 늘려 2030년까지 총 5조 엔(약 45조653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토요타의 변신, 리더십부터 공장까지=아키오 회장은 전동화 시대로 점진적 변화를 앞두고 지난해 4월 사토 고지에 후임 사장을 맡겼다. 2020년 렉서스 사장에 올랐던 사토 고지는 렉서스의 첫 번째 순수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RZ’를 출시하는 등 그룹의 전동화를 주도한 인물이다. 아키오 회장은 사토 고지 사장에 대해 “현장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한 직원으로 향후 토요타가 모빌리티 컴퍼니로 나가는 데 최고의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세 명의 부사장을 뛰어넘고 기용된 파격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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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토요타는 모빌리티 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도 진행 중이다. 컨베이어벨트 없는 공장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6월 테크니컬 워크숍에서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과 함께 새로운 조립 방식을 제시했다. 공장 내 컨베이어 벨트를 없애고 조립 중인 전기차가 공장 안에서 다른 조립 라인까지 스스로 주행하는 방식이다. 초기 설비투자 부담이 줄고, 자동차 산업에서도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해진다. 라이커 교수는 토요타가 향후 5년 뒤에도 세계 1위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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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우·오삼권 기자 novemb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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