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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30대 공시생 여성 고독사…중국 온라인 들끓은 이유[사건으로 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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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해 충칭 취업박람회에 몰려든 청년들의 모습. 2023년 7월 17일 촬영.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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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33세 여성이 월세 아파트에서 홀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퍼져 중국 온라인이 들끓었다. 청년실업과 고립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온라인을 휩쓸자 당국은 내용 상당 부분이 과장됐다며 허위 사실 유포를 경고했다.

광저우일보, 계면신문 등 중국 각지의 언론들은 최근 ‘33세 명문대 졸업 여성의 사망 사건 내용은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니다’라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발단은 지난 16일 ‘정관’이란 이름의 위챗 계정에 올라온 글이다. 정관은 위챗에 기사의 형태로 ‘내 아파트에 세 들어 살던 타지 출신 33세 여성이 지난 6월 홀로 지내다 사망했다’는 글을 올렸다. 정관은 고인은 산시성 닝샤의 산골마을 출신 여성으로 베이징의 211대학을 졸업하고 회계사로 일하다 산시성 시안으로 돌아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여성이 수 차례 필기시험에서 1등 했지만 면접에서 낙방했다고도 전했다.

211대학은 1990년대 중국이 ‘21세기 일류대학 100개 육성’을 목표로 추진한 ‘211공정’에 속한 대학이다. 중국에서는 ‘985 대학’과 함께 명문대를 뜻하는 말로 불린다. 숨진 여성의 고향 닝샤 일대는 중국에서 가장 소득이 낮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소식은 일파만파 퍼져나가며 중국 온라인을 강타했다. 한동안 포털 등의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으며 관련 주제의 웨이보 게시글이 수천만회 조회 수를 기록했다. 블로그와 영상 논평 등에서 ”청년실업이 극심해 211대학을 졸업해도 안정적 직장을 구하기 어렵다” “반드시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려야 했을까. 눈이 너무 높았던 것 아니냐” 등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글의 진위에 대한 의심도 나왔다.

정관의 글은 지난 18일 삭제됐다. 하지만 논쟁이 거듭됐고 이야기는 부풀려졌다. 딸이라서 집에서 제대로 지원받지 못했고 결국은 돈이 없어서 굶어 죽었다, 농촌의 부모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딸의 유골을 받자마자 버렸다는 등의 이야기도 사실인 것처럼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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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챗에 올라온 최초의 글.


중국 언론은 당국을 인용해 숨진 여성의 이야기는 상당 부분이 부풀려졌다고 강조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보도를 종합하면 첸씨인 이 여성은 211대학이 아닌 화둥이공대를 졸업했다. 2018, 2019, 2022년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적 있지만 최고 성적은 필기시험 25등으로 면접까지 간 적은 없다. 농촌의 부모는 딸의 죽음을 알고 일을 손에서 놓을 정도로 슬퍼했으며, 가족들은 관습에 따라 화장해 강에 유골을 뿌렸다.

당국과 언론은 허위 사실을 지어내 온라인에 유포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글이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던 배경에 대한 보도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이 관심을 모은 이유는 젊은층에게 자신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개인 논평 등을 통해서 나오고 있다.

지난달 중국 청년실업률은 17%를 기록했다. 중국 당국이 지난해 재학생은 구직자에서 제외하도록 통계산출 방식을 조정한 뒤로 최고치이다. 이달 1179만명의 대학 졸업생이 쏟아져나와 청년실업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졸 청년 실업자를 일컫는 ‘란웨이와(烂尾娃)’라는 자조적 표현도 등장했다. 자금 부족이나 관리 부실로 시공이 중단된 건물을 의미하는 란웨이로우(烂尾楼)에서 딴 표현으로 대학 교육 단계에서 망친 ‘미분양 아이’ 정도의 뜻이 된다.

중국중앙TV(CCTV) 탐사보도 기자였다 일본으로 망명한 왕즈안은 유튜브에서 “고학력 젊은이들은 주변의 기대치도 높아 ‘블루칼라 직종’을 꺼린다”고 짚었으며 청년을 대상으로 한 사회 안전망이 부족한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젊은 여성이 집에 혼자 갇혀서 지내다 사망했다는 소식도 코로나19 봉쇄 시절의 ‘악몽’을 불러일으켰다는 해석이 나온다.

광저우에 거주하는 한·중문화교류활동가이자 저술가 김유익씨는 “지금 1990년대 후반~2000년대생 중국 젊은이들은 히키코모리(고립돼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사람) 성향도 이전보다 훨씬 강하다. 그들에게 (첸씨의 죽음은) 더욱 징후적인 현상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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