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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에이리언' 배우, 4년 전 사망했는데"…죽은 이들이 되살아났다 [이슈크래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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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이리언 로물루스'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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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인기 시리즈, '에이리언'이 7번째 작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21일(이하 한국시간) 기준 누적 관객 수 85만3214명을 기록하면서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습니다.

시리즈의 시작은 영화 '에이리언'이 개봉한 1979년입니다. 무려 50년 가까이 된 영화는 지금 봐도 뛰어난 연출력, 크리처들의 압도적인 비주얼이 일품이죠. 우주에서 외계 생명체를 조우한다는 간단한 서사 구조지만, 에이리언을 이용하려는 인간들의 욕망, 치열한 사투가 더해지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인간이 '숙주'로서 몸을 강탈당하고 번식의 도구로서 이용되는 데에서 나오는 공포감도 충격적인데요. 기생 에이리언이 인간의 가슴을 뚫고 머리를 내미는 장면은 아직도 시리즈 '근본'(?)으로 평가받습니다.

1편은 개봉과 동시에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오리지널 시리즈인 에이리언 1~4편, 프리퀄인 '프로메테우스', '에이리언: 커버넌트'까지 시리즈는 총 12억 달러를 넘는 흥행 수익을 거뒀는데요. 소설, 만화, 게임 등 타 매체로도 진출했습니다. '에이리언' 시리즈가 공상과학(SF) 호러물의 선두·대표주자라는 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진 않겠죠.

이번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전작 '에이리언: 커버넌트' 이후 7년 만의 시리즈 신작입니다.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1편과 2편 사이 시간을 배경으로 설정했고, 시리즈 광팬으로 알려진 페데 알바레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것도 기대감을 높였죠.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21세기 폭스 인수 이후 20세기 스튜디오가 공개하는 첫 '에이리언' 시리즈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기대가 높았던 만큼 영화는 개봉 첫 주 전 세계 수익 1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국내에서도 14일 개봉 이후 하루를 빼고는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면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죠.

그러나 마냥 웃고 넘길 수 없는 문제 하나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한 배우를 인공지능(AI) 기술로 재현했다는 건데요. 특히 이 배우는 4년 전 별세한 '고인'이라 논란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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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언 홈.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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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한 배우가 인조인간 캐릭터로?…"디지털 강령술이냐"


21일(현지시간) 미 일간지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와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지난주 세계적으로 개봉한 '에이리언: 로물루스'에는 고인이 된 배우 이언 홈을 닮은 인조인간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이언 홈은 '반지의 제왕' 팬이라면 익숙한 배우입니다.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의 '빌보' 역으로 많이 알려진 영국 출신 배우로, 2020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했죠.

그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원조 '에이리언'에서 비중 있는 인조인간 캐릭터 '애쉬' 역으로 열연한 바 있는데요. 이번 신작에서는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AI 기술로 생성해 새로운 캐릭터 '루크'로 깜짝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등장은 일부 관객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 네티즌은 "딥페이크 기술로 구현한 이언 홈은 내가 인생에서 본 최악의 것"이라고 혹평했고, 또 다른 네티즌은 "이 캐릭터가 꼭 이언 홈이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며 "이것은 그저 모든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고 썼죠. 심지어 "디지털 강령술이냐"는 조롱까지 나왔습니다.

평론가들도 윤리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온라인 매체 슬레이트의 비평가 샘 애덤스는 "활용할 수 있는 지식재산권(IP)이 있는데 죽은 사람을 왜 쉬게 놔두겠느냐"며 "이 시리즈에서 단 하나의 변함없는 존재는 괴물들의 존재를 넘어, 인간 생명 존중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거대 대기업의 영향력"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영화를 제작한 월트 디즈니 컴퍼니 산하 20세기 스튜디오를 영화 속 악덕 기업에 빗대 꼬집은 겁니다.

작품을 연출한 페데 알바레즈 감독은 최근 LA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에이리언' 시리즈 역사에서 이 배우의 위치를 기리고자 하는 진정한 열망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을 하게 됐다며 "그에 대한 큰 존경심을 갖고 모든 작업에 임했다"고 밝혔는데요. 그는 제작진이 수년에 걸쳐 '에이리언' 시리즈에 등장한 모든 인조인간 캐릭터를 살펴보고 신작에서 다시 등장시킬 수 있는지 고민했다면서 "그동안 재등장하지 않은 배우 중 유일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이언 홈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AI 기술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는 "우리는 배우로서 그 사람의 재능을 재현하는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 캐릭터들이 가진 공통점은 닮았다는 것뿐"이라고 강조했죠.

알바레즈 감독은 홈의 유족인 부인 소피 드 스템펠에게 먼저 이런 구상을 설명하고 의견을 구했으며, 스템펠 역시 열렬한 반응을 보여 실행하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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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 삼달리' 속 고(故) 송해의 모습. (출처=JTBC '웰컴투 삼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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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유명인의 부활, 처음 아니다…메릴린 먼로→송해까지


사망한 유명인을 부활(?)시켜 논란이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영화부터 드라마, 게임, 음악까지 분야도 다양하죠.

대표적인 사례는 역시 막대한 규모의 자본이 몰린 할리우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팬덤을 거느린 SF물 '스타워즈'에서도 이미 고인이 된 배우가 등장해 화제를 빚은 바 있는데요. 2016년 개봉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는 1994년 사망한 피터 쿠싱이 등장합니다. 촬영장에서 연기한 실존 배우를 기반으로, 쿠싱의 얼굴, 목소리가 합성됐죠. 그는 1977년 빌런 '그랜드 모프 타킨' 역으로 시리즈에 첫 등장했습니다.

영화 촬영 중 비극적인 사고로 세상을 떠난 배우들을 되살린 사례도 있습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브라이언 오코너' 역을 맡았던 폴 워커는 '분노의 질주: 더 세븐' 촬영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요. 제작진은 워커의 캐릭터를 빼는 대신 대역을 사용해 나머지 장면들을 촬영하기로 했습니다. 체격과 생김새가 비슷한 워커의 형제가 대역으로 열연했고, 워커의 얼굴은 화면 위에 덧입혀졌죠.

이 밖에도 1955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제임스 딘은 사망 7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백 투 에덴'이라는 영화 주인공으로 캐스팅됐고요. 워너 뮤직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전기 영화를 생성 AI 기술을 활용해 만들고 있습니다.

1993년 사망한 오드리 헵번은 2013년 영국 초콜릿 회사 '갤럭시 초콜릿'의 광고 모델로 등장했습니다. 또 올해 3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린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행사에서는 메릴린 먼로가 디지털 아바타 챗봇으로 부활했습니다. 'GPT-3.5' 기반의 '디지털 메릴린'은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 차림에 익숙한 금발머리로, 컴퓨터 화면을 통해 나타나는데요. 카메라와 마이크 기술을 통해 사용자의 감정을 읽고 그에 따라 메릴린의 목소리로 반응합니다.

지난해 11월에는 1980년 사망한 비틀스(비틀즈) 멤버 존 레논의 목소리를 AI를 활용해 재현한 비틀스의 신곡 '나우 앤 덴'(Now and Then)이 발표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JTBC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에 방송인 송해가 딥페이크 기술로 구현됐습니다. 한국 드라마에선 이례적인 시도였는데요. JTBC 측은 당시 "조용필을 좋아하는 주인공 조용필이 '전국노래자랑'에서 '단발머리'를 부르는 장면은 중요했고, 시청자와 송해를 향한 그리움도 나누고 싶었다"고 설명한 바 있죠.

2020년엔 Mnet 특별 프로그램 'AI음악프로젝트 다시 한번'에서 3인조 혼성그룹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의 생전 모습이 AI로 재현됐습니다. 이 방송은 대중이 그리워하는 아티스트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음성 복원 기술과 페이스 에디팅, 홀로그램 등 AI 기술로 재현한 특집 음악 방송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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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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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문제는 '선택의 권한'…AI 활용에 대한 문화예술계 판단은


좋아하는 배우가 변함없는 모습으로 활동하는 최신작을 볼 수 있다는 건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기이함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인데요. 단순히 AI로 생성한 고인의 모습이 어색해서가 아니라, 이 사안이 윤리적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한 배우의 생전 영상에 대한 저작권은 대체로 영화사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히트작을 만든 영화사도, 심지어는 유가족도 고인을 대체할 순 없습니다. 아무리 생전 고인과 가까웠던 인물이더라도 그의 철학과 가치, 페르소나를 완벽히 이해할 순 없다는 건데요. 섣부른 AI 구현으로는 추억 속 당사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AI로 구현된 인물의 특성만 전달할 수 있다는 맹점도 지적됩니다. 여기에 고인에 대한 추모로 포장된 상업 행위로 변질된다거나, 기성 예술인 AI가 신인 예술인의 기회를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는 상황입니다.

한 네티즌은 X를 통해 "'에이리언: 로물루스'의 문제는 AI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언 홈이 세상을 떠났고, 그의 얼굴이 영화에 사용되는 것에 동의할 수조차 없었다는 것"이라며 "생성형 AI든 컴퓨터 생성 이미지(CGI)든 애니마트로닉(Animatronic) 로봇이든 분명 그 배우의 얼굴이고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죠.

AI 기술을 활용해 작고한 배우, 가수, 모델 등 유명인을 '부활'시키는 사례는 꾸준히 발견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진 자연스러운 모습을 구현하는 데에 큰 비용이 드는 탓에 '유행'(?)으로 일컬을 정도는 아니지만, 기술 발달 속도에 맞춰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기도 하죠.

자연스럽게 윤리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이름, 초상, 목소리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권리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논의도 아직 완전히 판이 깔리지 않은 상황이라, 일단 'AI 부활(?)' 선택의 주체는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되겠는데요. 윤리적인 문제와 상업성, 개인 철학에 대한 고민을 거쳐 탄생할 새로운 작품들에도 시선이 쏠립니다.

[이투데이/장유진 기자 (yxxj@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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