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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정말 개처럼 뛸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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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14일 쿠팡 캠프에 직접 들어가 배송 업무를 체험하고 있다.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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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오 | 국회의원(진보당)



지난 7월30일 쿠팡은 현장 점검을 하러 온 민주당 소속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을 가로막았다. “개처럼 뛴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신 고 정슬기님이 일했던 캠프(지점)였다. 쿠팡은 작업자의 안전 때문에 출입할 수 없다며 바리케이드로 캠프를 막았다. 8월1일에는 김두겸 울산시장이 폭염특보 현장점검 차 쿠팡 울산2캠프를 가려고 했지만, 쿠팡은 하루 전날 출입 불가라고 통보했다.



도대체 뭘 그렇게 감추고 싶은 걸까? 캠프에 직접 들어가 분류부터 배송까지 체험하기로 했다. 날짜는 8월14일 ‘택배 없는 날’로 택했다.



14일 오후 1시30분 서울 송파캠프 입구에서 함께 일하기로 한 강민욱 기사(전국택배노조 쿠팡본부 준비위원장)를 만났다. “어때요? 동네 아재 같아요?” “좋습니다. 일하러 오신 거니까 열심히 시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 혹시나 신분이 드러날까 봐 캠프에선 카메라도 안 들고 가고 복장도 내 나름대로 신경 썼다.



캠프에 들어가 시키는 대로 롤테이너(운반차) 속 A, B, C, D 뒤섞인 물품을 분류하고 오늘 배송할 C 물품을 골라냈다. 쿠팡은 분류작업을 인정하지 않고 단순 상차작업(분류한 물건을 차에 싣는 작업)이라고 하지만, 2021년 택배업계·정부·국회의 ‘택배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에선 개인별 물품을 구분하는 업무를 ‘분류작업’으로 정의하고 분류 전담 인력도 투입하도록 했다. 쿠팡은 사회적 합의에 불참했다.



일은 알파벳을 읽고 분류하면 그만인데 문제는 캠프 환경이었다. 휴게실은 물론이고 잠깐 앉을 의자도 없었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하 생활물류법) 36조를 보면 휴식공간, 휴게시설을 제공해야 하지만 현장은 그러지 못했다. 또 에어컨도 창문도 없었다. 35도가 넘는 무더위에 다른 곳을 향한 선풍기가 야속하기만 하다. 한 노동자가 옆에서 불만을 토해낸다. “(냉풍기) 오전에만 잠깐 틀고 꺼버려. 그런데 사무실은 그냥 시베리아야. 얼어 죽어요.”



간선 차량이 지연되었다. 롤테이너 1개 분량 때문에 30~40분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뒤에 들어오는 차는 죽는 거예요.” 기사 수보다 캠프의 공간이 작게 배정되어 택배 차량이 다 들어오지도 못한다. 뒤에서 대기하다 늦게 분류작업을 한 차량은 배송 마감을 지키느라 말 그대로 개같이 뛸 수밖에 없다.



오후 5시에야 배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좁은 골목에 빌라가 많은 강남구 청담동 일대를 뛰기 시작했다. “일 도우러 왔다가 방해하게 생겼네.” 어릴 때부터 이 일 저 일 닥치고 해서 자신감이 있었는데 애플리케이션이 문제였다. 배송 인증과 프레시백(배달 가방) 스캔이 익숙지 않아 도움이 필요했다.



“205호가 3개, 201호 1개, 105호 1개 이렇게요.” 물품을 한가득 안고 뛰다 보니 하마터면 계단을 못 봐 넘어질 뻔했다. 엘리베이터 없이 4층을 넘어가는 건물은 장난이 아니다. 땀이 팥죽처럼 흐른다. 그래도 점점 나아진다. “옆에 프레시백이 한 개 있고 여기는 아홉 개.” 배송지를 확인하고 배송 물품과 프레시백 숫자도 확인한다. 일이 좀 손에 익어갈 때쯤 예정된 체험 시간이 끝났다.



“오늘 물량의 3분의 1을 해주셨습니다.” 강민욱 기사가 활짝 웃자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나온다. 혹여 방해할까 걱정이었는데, “국회의원이 현장에 와서 땀 흘려 일한 것만으로도 너무 큰 힘이 됩니다”라고 말해준다.



땀 흘려 일하는 만큼 제대로 대접받고 존중받으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개처럼 뛰고 있다던 고 정슬기님 사연을 접하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지난해 10월 홍용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대표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나와 “근로여건이 그렇게 열악하다고 보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 이후 쿠팡에서 과로사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적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쿠팡은 얼마 전 물류센터 직고용과 격주 주 5일제 시행을 내놓았다. 현재 쿠팡 기사들 근무시간을 감안하면 격주 주 5일제로도 사회적 합의가 규정한 과로사 기준에 못 미친다. 물류센터 직고용의 경우, 분류 인력 투입에 관한 내용이 있어야 한다. 해답은 간단하다. 쿠팡도 다른 택배사처럼 사회적 합의에 들어오고 생활물류법을 준수하면 된다. 그러지 않고 내놓는 대책이란, 대표는 “열악하지 않다”고 말하고 과로사는 계속 터지는 국민 기만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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