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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미적대다 AI 패권 선점 다 놓쳐… ‘先지원 後규제’ 목소리 [심층기획-발도 못 뗀 AI기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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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늑장 처리에 불안감

22대 국회 발의 6개 법안 소위 계류

韓기업, 불확실성에 투자 속도 못 내

국내 AI 연구자 2만1000여명 불과

41만1000명 넘는 中의 5%에 그쳐

일각 “딥페이크 범죄 막을 장치 마련”

“무분별 지원 땐 빅테크 장악” 시각도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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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산업의 육성과 규제를 담은 AI기본법은 기업들에 중요한 지침표가 된다. 정부의 지원과 육성책을 등에 업고 개발에 나서고, 규제책을 고려하며 사업을 확장한다. 유럽연합(EU)을 필두로 AI에 대한 규제가 탄력을 받는 것도 그 이면에는 자국의 AI 산업을 육성하면서 다른 국가의 AI 산업 확장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도가 자리한다. EU, 미국, 중국 등 ‘AI 3강’이 만든 AI기본법을 통한 가이드라인이 글로벌 표준이 될 경우 우리나라는 글로벌 AI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21대와 22대 국회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AI 관련 법안은 총 13개에 달한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AI 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안 등 총 7개의 관련 법안이 올라왔고 이를 통합한 AI기본법안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지만 1년 넘게 방치되다 결국 폐기됐다. 이후 22대 국회 들어 현재까지 올라온 AI 관련 법안만도 총 6개다.

여야와 의원에 따라 차이는 보이지만 이들 법안에선 공통으로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기술·정책의 제도적 기반을 조성하는 동시에 AI 기술 개발 및 산업 진흥을 위한 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 육성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21대 국회에 제안됐던 법안과 비교하면 22대 국회에선 △국외행위에 대한 적용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인공지능안전연구소 △생성형 인공지능 안전 확보 의무 등 새로 신설된 것이 눈에 띈다.

글로벌 AI 강국들은 각 국가에 맞는 AI기본법을 제정 및 준비하고 있다. EU의 AI법은 세계 최초의 AI에 대한 포괄적 규제법으로, AI 시스템의 위험 수준에 따라 금지, 고위험, 제한된 위험, 저위험으로 구분해 고위험 영역을 대상으로 엄격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중국은 생성형 AI 서비스로 만든 콘텐츠에 사회주의의 핵심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는 규제법안을 만들었고, 미국은 상원에선 AI 콘텐츠에 대한 사업자의 법적 책임을 묻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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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기업들은 AI기본법의 조속한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먼저 정부는 대통령 직속의 국가AI위원회를 신설해 주요 정책 등에 관한 사항을 효율적으로 심의·조정하고, AI 신뢰 기반 유지를 위한 전문기관인 국가인공지능센터 및 AI안전연구소 지정·운영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16일 취임식에서 “EU, 일본, 중국 등 기술 선도국들은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AI를 비롯한 전략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새로운 디지털 질서 정립과 AI기본법 제정에 힘쓰고 국가인공지능위원회가 ‘AI 빅텐트’가 되도록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들의 기대와 달리 국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현재 국회 과방위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비롯해 방송장악 청문회 등으로 여야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며 정작 AI 산업 발전에 필요한 AI기본법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조만간 시행이 확정된 메타버스 법안(가상융합산업 진흥법)처럼 ‘선 허용 후 조치’ 원칙을 적용해 규제 샌드박스 등 AI의 도입 및 활용의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결정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AI 산업 투자 및 육성을 위해 정부가 규제보다는 지원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AI 연구자 수는 2만1000여명으로 중국(41만1000명)과 비교하면 5%에 불과해 규제보다는 지원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업계는 AI 경쟁력 확보에 비상인 상황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등 글로벌 ‘빅테크’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기술 우위를 굳혀가는데, 국내 업체들은 제대로 된 국내 법규가 없어 이렇다 할 플랫폼을 내기도 어렵다. 업계는 국가 차세대 산업 동력이 될 AI 기술 성장을 위해 제대로 된 기준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다만 현재 딥페이크 범죄 등 AI 기술 발전과 함께 등장한 신종 범죄 등을 미연에 막기 위해선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또 무분별한 지원 및 육성책은 그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국내 시장 장악에 물꼬만 터줄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AI 산업의 역동적인 성장뿐 아니라 AI가 갖고 있는 딥페이크 등 범죄 영역 또한 AI기본법의 부재로 제대로 된 처벌 및 방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인정보 수집, 저작권 여부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AI를 활용한 딥페이크,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활용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과도한 규제에 초점 맞춘 법안이 아닌 기초적인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국내 AI 산업을 보호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는 AI의 기준 및 범위를 명확히 정의하고, 처벌에 대한 규정도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창배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IAAE) 이사장은 “역동적인 AI 산업 생태계 조성과 글로벌 선도를 위해선 타국가가 아닌 우리나라 AI 산업 상황에 맞는 AI기본법이 조속히 시행돼야 한다”며 “AI로 인한 폐해가 우려되는 부분은 정부 규제를, AI 사업에 필요한 부분은 자율 규제라는 원칙하에 여야가 AI기본법 통과를 위해서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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