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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목로주점엔 됫병 소주가 있었다 [달곰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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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일보

요즘 유행하는 2홉들이 소주들. 한 홉은 한 되의 10분의 1로 약 180mL다. 추억 속으로 사라진 됫병은 한 되 분량으로 약 1.8리터를 담을 수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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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들어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에서 껄껄껄 웃던/ (중략) 오늘도 목로주점 흙 바람 벽엔/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중략)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 그래 그렇게 산에 오르고/ 그래 그렇게 사막엘 가자/ (하략)"

1981년 이연실이 작사·작곡에 노래까지 부른 ‘목로주점’이다. 동네 어귀에 있던 목로주점은 싸구려 술집이다. 널빤지로 좁고 기다랗게 만든 술상이 ‘목로’다. 붙박이식 술상으로 생각하면 된다. 몇몇 의자가 없는 목로주점에선 서서 술을 마셨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선술집이다. 월급날, 싸구려 술집에서 사막 여행을 꿈꾸며 한잔하는 청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목로주점은 목롯집, 대폿집, 목로술집 등으로도 불린다.

목로주점에선 막걸리와 막소주가 잘 팔렸다. 막소주는 주로 어둠의 경로로 유통되던 밀주다. 막고무신, 막과자, 막담배와 마찬가지로 막소주의 막은 '품질이 낮은'의 뜻을 더한다. 알코올 도수 30도 정도로, 됫병에 담겨 있었다. 됫병은 한 되, 약 1.8리터를 담을 수 있는 분량의 병이다. 되들잇병이라고도 한다.

됫병은 2홉들이 소주에 밀려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댓병’이라는 잘못된 표기는 종종 눈에 들어온다. 큰 병(大甁)으로 생각해 ‘대병 소주’ ‘댓병 소주’로 썼을 게다. 하지만 우리말에 대병, 댓병은 없다. 됫병만 바른 말이다.

함께 마시는 사람과 마음이 잘 통하고 안주가 맛있으면 됫병도 한순간에 비워지는 법. 술을 제대로 마시는 친구는 늘 이렇게 말한다. “술 마신 다음 날 새벽에 '대자'로 뻗지 않으려면 영양가 높은 안주를 '대짜'로 시켜 잘 먹어야 한다.” 대자와 대짜. 생김새도 발음도 뜻도 다르니 잘 구분해 써야 한다.

대자는 한자 ‘大’자처럼 팔과 다리를 양쪽으로 크게 벌린 모양을 말한다. “대자로 누워 잤다”, "대자로 뻗었다"처럼 주로 '대자로' 꼴로 쓰인다. 대짜는 큰 것을 뜻한다. 전골을 대짜로 주문하고, 대짜 티셔츠를 사고, 대짜 잉어를 낚을 수도 있다. 중짜는 중간 것, 소짜는 작은 것이다. 어원이 분명치 않은 말은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규정을 따랐다.

목로주점의 목로는 한자로 木壚다. 壚는 주로 흙을 뜻하지만, 숯불을 담아 놓는 화로(火爐)의 의미도 있다. 화롯불을 피우는 술집. 백열등이 춤을 추는 술집. 힘든 하루 일을 마친 후, 술 한잔에 꿈을 나누는 친구가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한국일보

노경아 교열팀장 jsjy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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