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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기고]벤츠 전기차 화재, 중국산 배터리는 왜 의심을 받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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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벤츠 전기차 화재 사고로 전기차 폭발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의 한 대형 주차장에는 전기차 충전 및 주차 구역 근처 주차면들이 텅 비어 있다. 2024년 8월 16일. 강성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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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일부 지하 주차장이나 주타 타워는 아예 전기차의 입차를 금지하고 있다. 보조금까지 지원해주면서 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전기차는 주차를 할 때도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가 됐다.

화재의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가운데 배터리 제조 회사가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다. 정확히는 벤츠가 만든 자동차의 '배터리 팩' 안에 어느 회사가 만든 '배터리 셀'을 넣었느냐는 것이다. 한국산 배터리를 주로 사용하는 현대·기아차는 선제적으로 자사 전기차에 들어간 배터리 셀의 제조사를 모델 별로 낱낱이 공개 했다. 하지만 벤츠 코리아는 결정을 미루다 뒤늦게 공개했다. 공개 결과 화재가 발생한 벤츠 EQE 350+에 장착된 배터리 셀은 중국산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벤츠 전기차에 사용되는 배터리 셀의 대부분인 76%가 중국산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졌다.

벤츠 코리아는 당초 자사 전기차에 어느 회사의 배터리가 사용 됐는지는 영업 비밀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벤츠는 불이 난 차량에 중국산 배터리를 썼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영업 비밀이라며 둘러댄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게 됐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중국제 배터리에 대해 짙은 불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도 널리 공유가 됐다.

최근 들어 중국의 기술 수준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미국과 경쟁을 하거나 미국을 넘어선 것으로 평가를 받는 분야도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도 그런 예다. 하지만 이번 화재 사고를 통해서 보면 중국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는 아직 낮은 듯하다. 가격이나 외관, 기술 수준 등은 충족됐을지 몰라도 가장 중요한 안전의 측면에서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피터 나바로 교수는 지난 2011년 저서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 원제목 『Death by China』, 피터 나바로·그렉 오트리 지음)에서 중국 제품은 소비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제를 쓰다가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다. 그리고 그 원인을 5가지로 적시했다.

첫째, 중국의 노동자들이 숙련도가 낮고 저임금과 과로에 시달려 품질을 보장할 여건이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안전하지 않은 제품을 생산한 중국 제조 회사들에 대해 책임을 묻고 법정에 세우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셋째로는, 제품의 안전을 책임지는 중국 당국의 부패나 솜방망이 처벌을 들고 있다. 5개 원인 가운데 이상 3개는 중국 내부에서 야기된 문제이다. 나바로 교수가 지적한 나머지 2개 원인은 수입하는 국가의 검사 소홀과 수입 업체의 소극적 대응이다.

결국 숨어 있는 안전 비용까지 고려하면 중국산 제품은 다른 나라 것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이 나바로 교수의 결론이다. 중국산 제품이 초래할 수 있는 상해나 사망 위험은 물론 소송 비용, 단속 비용 등까지 합치면 그렇다는 논리다. 나바로는 이후 트럼프 행정부 시절 백악관의 국가무역위원장과 무역제조업정책국장에 발탁됐고, 중국에 대한 강경한 조치를 실행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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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나바로 전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 위원장(사진 가운데)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 대중 강경 정책의 입안을 주도했다. 사진은 2017년 3월 31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오벌 오피스)에서 무역에 관한 행정 명령에 서명하기 직전 나바로가 짧게 연설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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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로는 중국의 기술 절취, 환율 조작, 불공정 보조금 등의 의혹에 대해 단호한 제재와 강력한 응징으로 맞섰다. 그리고 이것은 점차 초당적인 지지를 받았다. 현재 바이든 정부도 트럼프 대통령 시기에 입안된 대중 제재 조치를 대부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아직 벤츠 전기차 화재의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중국산 배터리의 품질 문제를 부각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설령 화재 차량의 배터리에서 결함이 발견됐다 하더라도 모든 책임을 배터리 제조사에 떠넘기는 것도 옳지 않다. 부품의 안전성을 엄격히 검사했어야 할 전기차 제조사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사고 원인에 대한 결론이 나기도 전에 소비자들이 중국산 배터리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데는 중국이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과거 고속 성장 과정에서 '중국 제품은 싸지만 안전하지 않다'는 오명을 얻게 됐고, 아직 그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지난달, 중국에서 세척도 하지 않은 유조차 탱크에 식용유를 넣어 운송을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적발됐다. 중국 제품이 소비자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피터 나바로의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나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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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중심가의 톈안먼 광장. 광장 안으로 들어가려면 신분증과 소지품 검사를 받고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곳곳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시카메라가 24시간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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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도 중국에는 기업의 안전 불감증과 당국의 권력 남용을 감시해야 할 소비자단체나 언론 등의 역할은 아직 미미하다. 반대로 공산당의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는 더 디지털화되고 촘촘해지고 있다. 인권 의식이 약하고 민주적 언로는 좁고 사회의 투명성이 낮을 경우, 소비자들이 당국이나 기업을 믿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저자는 YTN 베이징 특파원과 해설위원실장을 지내는 등 30년 동안 언론계에 몸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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