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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100만 인도 의사, 성폭행·살해당한 동료 위해 거리 나섰다… "여성 폭력 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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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국립병원 수련의 성폭행·살인사건에
전국 의사들 분노… "일터 안전 보장해야"
"인도서 지속되는 여성폭력, 문화적 병폐"
한국일보

인도 의사들이 17일 우타르프라데시주 프라야그라지에서 국립병원 수련의 성폭행 및 살인 사건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프라야그라지=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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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서 피가 끓는 것 같다. 우리의 직장은 더 안전해져야 한다."

세계 인구 최다 국가 인도에서 100만 명 넘는 의사들이 17일(현지시간) 파업을 선언했다. 수일 전 한 국립병원에서 여성 수련의가 무참히 성폭행·살해당한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병원 대신 거리로 나선 이들은 '안전한 일터'와 '여성 폭력 규탄'을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동료 죽음에 파업 나선 의사들


AP·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인도 최대 의사 단체 인도의학협회(IMA)는 이날 오전 6시부터 24시간 동안 비응급 의료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날 인도 전역에서 파업에 가담한 의사는 100만 명이 넘는다고 로이터는 추산했다.

가운을 벗은 의사들은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다. 동료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폭력을 규탄하는 촛불이었다. IMA는 성명을 통해 "의사, 특히 여성은 직업 특성상 폭력에 취약하다"며 "병원과 캠퍼스 내에서 의사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당국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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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의사들이 17일 우타르프라데시주 프라야그라지에서 국립병원 수련의 성폭행 및 살인 사건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프라야그라지=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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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의 분노를 일으킨 것은 지난 9일 인도 서벵골주(州) 주도 콜카타 소재 RG카르 국립대학 병원에서 일어난 성폭행·살인 사건이다. 이 병원에서 일하던 31세 여성 수련의는 격무 끝에 잠을 자러 세미나실로 향했으나, 잔인하게 성폭행당한 뒤 목이 졸려 살해된 상태로 이튿날 발견됐다. 인도 매체 힌두스탄타임스(HT)는 부검 보고서를 인용해 피해자 신체 여러 곳에 폭행과 성적 고문의 흔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후 수사 결과 병원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산제이 로이(33)가 범인으로 지목됐다. 본인도 혐의를 인정했다. 그러나 경찰 수사는 신뢰받지 못했다. 이 사건이 한 명의 소행이 아닌 '집단 성폭행'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HT는 "부검 보고서를 살펴본 고참 의사 수바르나 고스와미는 '피해자가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병원이 다른 의사의 연루 사실을 은폐한다고 의심하기도 했다.

사건 현장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점도 불신을 더했다. 인도 국가여성위원회(NCW)는 성명을 통해 "피해자가 성폭행·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진 현장은 갑자기 리모델링되고 있다""이는 증거 조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이 사건은 인도 중앙수사국(CBI)으로 이관됐고, 현장 조사·병원장 수사 등이 진행되고 있다.

"안전한 일터" "여성 폭력 규탄"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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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수의과대학 학생들이 17일 구와하티에서 국립병원 여성 수련의 성폭행 및 살해 사건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구와하티=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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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대다수였던 이번 시위에서 의사들은 안전한 근무 환경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피해자는 오전 3~5시에 범죄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동료들은 로이터통신에 "기숙사·휴게실이 없는 탓에 그는 근무를 마치고 세미나실 카펫 위에서 자곤 했다"고 말했다.

여성 폭력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인도 매체를 비롯한 외신들은 이번 사건이 2012년 인도에서 일어난 '집단 성폭행·살인사건'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당시 수도 뉴델리에서 23세 여성이 버스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잔인하게 살해되면서 인도 전역이 공분에 휩싸인 바 있다. 이후 인도 정부는 여성 보호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인도에서는 여전히 성폭력이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며 "인도 내 여성 폭력 범죄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악명 높은 성폭행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WP는 또 "이는 성적 괴롭힘과 폭력을 축소시키고, 가해자에게 처벌을 면제해 주는 (인도) 문화의 결과물이라고 많은 이들은 지적한다"고 덧붙였다.

김나연 기자 is2n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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