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유세 현장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선택한 팀 월즈 미네소타주지사와 함께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
미국 대선이 8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해리스 vs 트럼프’ 대결 구도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초박빙을 형성했습니다.
지난 7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직에서 중도 사퇴하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바통을 넘겨줄 때만 하더라도 과연 해리스가 트럼프를 이길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팽배했습니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총기 피습 사건에서 의연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죠.
그러나 후보 교체 불과 3주만에 해리스 부통령은 주요 경합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빠르게 추격했고 오히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추월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은 결국 50대 50의 나라다. 양측이 각각 40%를 가지고 누가 더 가져가느냐의 싸움”이라는 말처럼 패색이 짙던 민주당 후보는 약진에 성공했고, 게임 판세를 뒤집으려 하고 있습니다. 과연 카멀라 해리스의 약진은 계속 이어질까요. 지난 2016·2020년 대선 상황을 복기하며 그 가능성과 향후 흐름을 매일경제가 조망합니다.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 후보들이 러스트벨트 지역 유세에 집중하기 때문이죠.
민주당 텃밭이라는 이유인데, 당시 55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캘리포니아주 선거인단을 모두 힐러리 클린턴이 가져갔습니다.
반대로 트럼프는 후보는 공화당 텃밭인 텍사스주를 딱 한번 방문하고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두 후보는 ‘경합주’로 분류된 플로리다주에서 ‘진심’으로 뛰었습니다.
2020년 대선 국면에서 조 바이든 후보의 승리를 가른 것도 바로 경합주 판세였습니다.
쇠락한 북동부 공업지대를 뜻하는 미국 오대호 주변 ‘러스트벨트’ 지역 |
쇠락한 북동부 공업지대를 뜻하는 ‘러스트벨트’ 내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와 일조량이 풍부한 지역인 남부 ‘선벨트’내 플로리다·노스캐롤라이나·애리조나 등 6개 주가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이번 대선에서도 운명을 가를 핵심 경합주로 분류됩니다.
올해 대선 기준 이들 6개 경합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은 총 101명으로 특히 과거 민주당 우세지역을 뜻하는 ‘블루월’ 경합주인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에서 최근 해리스가 트럼프를 4%포인트 앞서는 뉴욕타임스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 트럼프 캠프가 발칵 뒤집힌 바 있습니다.
특히 여성·유색인종 배경의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중도 후보 사퇴로 러스트벨트에서 백인 유권자 표를 대거 잃을 위험에 처한 상태입니다.
2016년과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출구조사 결과를 비교해보면 러스트벨트와 선벨트 지역 6개 경합주에서 백인표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2016년(힐러리 클린턴 vs 도널드 트럼프) 대선 때보다 2020년(조 바이든 vs 도널드 트럼프) 대선판에서 민주당 후보가 러스트벨트 경합주와 애리조나, 조지아에서 백인표를 더 많이 흡수하며 승패를 뒤집었습니다.
2016년 vs 2020년 대선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의 미시간주 백인 지지율 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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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콘신주 백인 유권자들의 40%가 2016년 대선에서 클린턴을 지지했는데 2020년 대선에서는 44%로 뛰었습니다. 미시간에서도 2016년 36%에서 2020년 43%로, 이밖에 애리조나(40%→ 47%)에서도 확연한 증가세를 기록했습니다.
그 결과 공화당 텃밭인 애리조나주에서 바이든이 49.4%로 트럼프(49.1%)를 간발의 차로 이기며 11명의 선거인단을 싹쓸이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2016년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공통 분모가 많은 해리스 부통령 입장에서는 이들 경합주에서 2020년 당시 바이든 후보가 거둔 백인 지지율 증가세를 2016년 수준으로 퇴행시킬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커버하고자 낙점한 월즈 부통령 후보가 과연 공화당 밴스 후보를 제압하며 경합주 백인표를 해리스에게 끌어모으는 ‘어게인 2020’을 만들지가 이번 미국 대선의 핵심 관전 포인트인 것이죠.
코로나19 팬데믹 발발로 좌충우돌하며 상대 후보에 대한 막말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바이든 후보는 오히려 목소리를 낮추는 로키 전략으로 트럼프의 실정을 국민들에게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해리스 부통령 역시 2020년의 로키 선거전략을 그대로 차용하며 트럼프의 거친 입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반면 급진좌파 이미지를 벗고 중도표를 확장하기 위해 트럼프표 정책을 따라하거나 포퓰리즘적 공약을 마다하지 않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해리스는 최근 네바다주 유세에서 노동자 가정을 겨냥해 팁 면세 공약을 제시했습니다. 이 공약은 본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두 달 전 네바다주 유세에서 먼저 내놓은 공약이었죠.
심지어 백악관도 “바이든 대통령은 팁 세금 면제를 지지한다”며 해리스 후보를 거들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왜 내 공약을 베끼느냐고 반발했지만 중도표 확장을 위해서는 적진에서 개발한 공약도 내것처럼 과감히 쓰는 전략을 택하고 있는 것이죠.
해리스 캠프는 미국 내 첫 주택 구매자에게 최대 2만5000달러(약 3400만원)를 지원하는 파격 공약도 준비 중입니다.
집값 상승에 신음하는 서민들을 위한 공약인데 막대한 세금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이 예상됩니다. 당장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베네수엘라식 공산주의’라는 비난이 나왔지만 해리스 캠프는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급상승한 미국 평균 주택 매매 가격 <자료=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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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체감하는 집값 상승의 고통은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실패와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만든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잡고자 바이든 행정부에서 급격한 금리인상이 이뤄지다보니 높은 대출 금리 때문에 구매 수요가 살아나지 않고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기존 주택 소유자들도 모기지론 금리 부담으로 인해 새 집으로 이사가기를 주저하면서 매물 절벽까지 발생하며 시장 침체를 가속화하는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이 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에서 대선을 앞두고 급기야 생애 첫 주택 구매자 세금 지원까지 고려하며 해리스 캠프는 바이든 행정부의 실기를 덮기 위한 진통제 공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바이든 행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재닛 옐런 재무장관을 앞세워 ‘고압경제(high-pressure economy)’ 방식의 경제 운용을 채택했습니다. 경기 침체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막대한 재정 집행과 완화적 통화 정책을 통해 과열 양상을 보일 정도로 경기를 띄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미국 기준금리 인상 추이(단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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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압박이 커지는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시장에 유동성을 대거 공급하는 1400조원의 초대형 인프라 법안 등을 강행했습니다.
이에 보조를 맞춘 제롬 파월의 미 연준은 2%가 넘는 인플레이션 오버슈팅을 용인하다가 2022년부터 뒤늦게 급격히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서민들이 체감하는 충격과 고통의 크기를 함께 키웠죠.
대선 승리를 안긴 2008년(오바마·바이든 vs 매케인·페일린), 2012년(오바마·바이든 vs 롬니·라이언), 2020년(바이든·해리스 vs 트럼프·펜스) 모두 정부통령 후보가 흑백 혼성팀으로 구성됐습니다.
2016년 대선 당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존 케인 정부통령 후보 조합. 당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패한 것과 관련해 부통령 후보가 클린턴 후보의 단점을 메워주는 보완재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
유일한 패배인 2016년 대선은 힐러리 클린턴과 존 케인이라는 백인 간 조합이었죠. 당시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에게 패한 요인으로 버니 샌더스와 대립 등 민주당 내 분열과 더불어 부통령 후보인 존 케인이 클린턴의 단점을 커버하는 보완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파이터인 클린턴과 달리 케인 후보는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전통적인 투견(attack dog) 역할에서 너무 젊잖았다는 것이죠. ‘힐러리 클린턴의 러닝메이트로 그때 누가 뛰었지?’라며 기억이 가물거릴만큼 그의 존재감은 미약했습니다.
러닝메이트 결정에서 흑백 조합의 루틴을 따른 해리스 캠프가 기대하는 또 하나의 성공 루틴은 바로 ‘오바마 사용법’입니다.
클린턴·바이든 대선 당시 각 캠프는 투표일이 임박한 시점에서 재임 당시 60%의 지지율을 기록한 오바마 전 대통령을 출격시켜 승리에 쐐기를 박는 효과를 노렸습니다. 해리스 캠프 역시 이와 비슷한 전략을 취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22년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인사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모습. <로이터 연합> |
오바마 전 대통령은 바이든과 트럼프가 맞붙었던 2020년 대선에서 투표 2주가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처음으로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로 출격해 소수층과 젊은 유권자 표를 결집시켰습니다.
당시 각종 여론 조사에서 박빙으로 트럼프 후보를 이기고 있던 바이든 캠프가 ‘굳히기’ 전략으로 오바마 카드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평가입니다.
2020년 11월 선거에서 패배한 트럼프는 당시 투표 결과를 바로 인정하지 않고 “12월 선거인단 투표에서 지면 백악관을 떠날 것”이라며 불복 시비를 일으켰습니다.
심지어 12월 14일 선거인단 투표에서 단 한표의 반란표 없이 바이든 승리가 확정됐지만 그는 계속 버티기에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바이든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공식 인증하는 1월 6일 상하원 양원 합동회의일에 미국 민주주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이 공격 받는 이른바 ‘의회 침탈 사건’이었죠.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해 침탈당한 미국 국회의사당 현장 모습. |
간접선거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은 11월 전국선거에서 주별 승리 결과를 토대로 비록 ‘요식행위’이지만 12월 각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이 투표권을 행사합니다.
예컨대 16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미시간주에서 해리스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할 경우 16명의 선거인단은 설령 개인적으로 트럼프 후보를 선호하더라도 12월 선거인단 투표에서 무조건 해리스 당선인을 찍어야 합니다.
2020년 대선 전국선거에서 패배한 트럼프는 주별로 ‘신의 없는 선거인’(Faithless Elector)으로 불리는 이 같은 다양한 이탈표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며 지지자들의 불복 심리를 부채질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4년 전의 트럼프와 지금의 트럼프는 달라졌을까요.
공교롭게도 바뀐 게 없어 보입니다. 트럼프는 지난 3월 연설에서 본인이 대선에서 패한다면 “미국 전체가 피바다가 될 것”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죠.
지난 14일 노스캐롤라이나 유세 현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세 후 주먹을 쥐며 자리를 떠나고 있다. |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질 경우 평화로운 정권 이양 가능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트럼프는 말한 바대로 행동할 것”이라는 게 바이든 대통령의 염려입니다.
트럼프 집권 1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참모였던 존 볼턴 역시 최근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후보 적격성에 시비를 거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태를 경고합니다.
“그가 2020년처럼 2024년에도 승자가 되지 못할 때 이는 또다시 불공정한 선거 탓이 될 것이며 또 한 번 도난당한 선거라는 주장을 펼 수 있다”는 게 볼턴의 예상입니다. 벌써부터 자신이 패할 일말의 가능성에 대비해 불복 논리를 쌓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오는 11월 선거가 끝나면 미국의 정치적 불확실성도 깔끔하게 정리될까요?
유권자 선택에 따라 오히려 이 때부터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현실 소동극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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