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분노지수’ 높아져…처벌·단속만으로는 한계
전문가들 “심리적 원인 들여다봐야…예방적 접근도 필요”
경찰특공대 소속 장갑차가 지난해 8월 서울 강남역 교차로에서 비상대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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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곳곳에 흉기 살인 범죄가 이어지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이맘때 수도권 일대에서 이상동기 범죄가 빈발하자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하며 대응에 나섰지만 처벌·단속 위주의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4일 중국 국적의 30대 여성 A씨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함께 일하던 여성 B씨(20대)를 흉기로 살해했다. 서울에서는 지난 2일과 6일에도 흉기 살인이 발생했다. 지난 2일 숭례문 광장 앞 지하 보도에서 노숙을 하던 60대 남성이 60대 환경미화원을 흉기로 살해했다. 지난 6일엔 20대 남성이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주거지에서 70대 아버지를 살해했다. 지난달엔 서울 은평구의 아파트에서 한 남성이 일본도로 이웃을 살해하는 일도 벌어졌다.
경찰청의 분기별 범죄통계(잠정)를 보면 2024년 상반기에 발생한 살인 관련 사건은 총 390건(살인 146건, 살인미수 244건)으로 지난해의 살인 관련 사건 수 351건(살인 128건, 살인미수 223건)에 비해 증가했다. 살인 사건에 사용된 흉기는 2022년 355개에서 지난해 373개로 늘었다.
흉기 범죄가 계속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신림동 살인 사건 현장 인근에서 근무했던 최모씨(34)는 “무서워서 밖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예약했던 손님도 못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C씨(63)는 “1년 전에도 살인사건 벌어져 매출이 40%나 감소했다”며 “신림동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한 것이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분노지수’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사회 전반적으로 분노가 팽배한 상황에선 형사사법 체계에 의한 대응으론 한계가 있고 사회 정책 측면에서 예방을 고려한 새로운 치안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균 백석대 범죄수사학과 교수는 “최근 과거에 비해 우발적이고 분노억제형 살인 범죄가 빈번해졌다”고 말했다. 분노억제형 범죄는 분노가 누적되다가 특정한 상황에 처했을 때 한꺼번에 터지면서 벌어지는 범죄를 말한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사회적 완충장치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이미 사회에 분노가 공고해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벌어지는 흉기 난동 범죄들이 일상 속 차별과 무시, 빈곤 등 억눌려 쌓여 있던 분노가 폭발한 데 따른 범죄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정부 대책은 ‘대증요법’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교수는 “정부는 이상 동기 범죄가 발생했다고 하니 장갑차를 배치하거나 인원 중심 순찰 전략만 내놓고, 일본도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총포도검류 관리를 강화하는 식으로 표면적 원인만 제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형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범죄를 막으려면 범죄에 대한 명확한 정의, 관련 정보 수집, 원인 진단, 대응책 마련 순이어야 하는데 그를 위한 데이터와 통계도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은 사법 시스템을 통한 억제를 포함해 예방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특히 심리적 문제로 인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가 개입해 이를 차단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에서는 형사정책을 ‘형사사법복지정책’으로 본다”며 “통제와 처벌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현재 토양에 맞는 새로운 치안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만 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충격적인 범죄가 발생하면 대통령 지시로 위원회를 꾸려 형사사법 체계적 한계와 범죄의 사회적 요인 등을 심도 있게 진단하고 새로운 대응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이처럼 종합적 대안을 마련할 때 시민이 느끼는 공포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 “내 지갑 가져갔니?”…신림역 흉기살인, 오해가 부른 참극인가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8151458001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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