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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 (수)

선수 '앵벌이'에 '빨대' 꽂고…'안세영 파문' 근본원인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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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문화연대 집행위원(uppercutrules@gmail.com)]
지난 일요일 폐막한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대표선수단은 예상 밖 좋은 성적을 거뒀다. 종합순위에서 메달 합계 10위, 금메달 수 8위다. 대회 초반 '총·칼·활' 종목인 양궁(메달 7개), 사격(6개), 펜싱(3개)의 선전으로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동시에 대한민국 스포츠의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난 이벤트이기도 하다. 전체 메달의 절반인 16개가 총·칼·활 종목에 몰렸다. 그리고 개인 종목에서만 메달이 나왔고 팀 종목은 전멸했다. 아니, 여자핸드볼을 제외하면 출전조차 못했다. 종합하면 메달의 종목 편중이 심해졌고 팀 종목은 몰락했다. 호성적임에도 한국 스포츠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안세영 선수의 협회 비판에서 드러났듯 협회의 무능과 '막장행정'은 한국 스포츠 발전에 심각한 저해 요인임이 밝혀졌다. 배드민턴협회는 소속 선수들이 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올리는 참담한 수준이다.

K스포츠의 근본적 문제, 선수가 없다!

협회들이 막장행정을 불사하고, 소속 선수, 지도자들과 갈등을 빚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선수가 없다 보니 국내대회는 재미(?)가 없다. 결국 국가대표 선수와 이들의 국제대회 성적에 의존하게 된다. 무엇을? 협회 재정을. 협회는 '대표 선수들의 국제대회 성적'에 집착하게 된다. 이들에게 국내대회나 그 외 선수들은 부차적 문제일 뿐이다. 저변 확대, 종목 활성화? 그런 거 모른다. 해본 적도 없고.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보자. (일본의 인구가 한국의 두 배라는 점은 감안하자.) 예를 들어 한국의 고교 축구팀 수는 200개가 채 안 되는 반면 일본은 4000여 개다. 한국 고교 야구팀의 수는 100개가 안 되는데 일본은 4000개가 넘는다. 고교 농구팀은 한국이 50여 개인데 일본은 무려 7000여 개다. 배구는 한국이 40여 개, 일본이 역시 7000여 개다.

나는 이 숫자를 접하고 '고교 농구팀, 배구팀 7000개'가 말이 되나 의구심을 가졌었다. 사실이다. 일본의 고교 수가 약 5000개인데 (한국은 약 2400개) 대부분의 학교가 남녀팀을 각각 하나씩 운영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축구부, 야구부의 경우 한국은 한 학교에 30~40명인데 반해 일본은 100~200의 학생들이 참여한다. 그래서인가.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아시아 국가 중 농구와 배구에 남녀팀이 모두 진출한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다른 종목 등록선수 숫자에서도 두 나라 간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현재 대한체육회 등록선수 총수는 약 37만5000 명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인 19만여 명은 취미로 즐기는 생활체육클럽 소속이다.) 그런데 일본은 농구 등록선수만 63만, 배구 40만, 육상 40만, 배드민턴 25만, 수영 23만이다. 대표적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은 한국이 전체 등록선수가 2000명 정도인데 일본은 9만 명이다. 축구는 100만이다. 이제 일본 스포츠는 우리에게 '넘사벽'이 됐다.

그들이 대표팀에 '몰빵'하는 이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우리 '메달밭'이라는 복싱, 유도, 빙상, 양궁, 탁구 등은 전체 선수 수가 2000에서 4000명 남짓이다. 그럼에도 양궁, 쇼트트랙 등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쓸어 담는다. 괴력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간단하다. 극소수의 선수지만 첫째, 가혹한 방식으로, 둘째, 하루 종일 '죽어라' 훈련만 시키면 가능해진다.

이게 한국 스포츠의 노하우다. 그래서 많은 협회들이 선수들을 통제하고, 이를 위해 합숙을 기본으로 하고, 또 이를 위해 선배, 후배 간 군대문화, 얼차려문화를 묵인, 조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온 메달로, 또 그 메달을 따라 들어온 스폰서십으로 협회의 곳간이 풍성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극소수의 선수들을 이렇게 가둬놓고 운동만 시키는 방식이 과연 지속가능할까?

스스로의 미래를 갉아먹는 한국 스포츠

예를 들었듯 한국의 고교 농구, 배구팀은 40~50개인데 일본은 7000여 개다. 첫째, 어디에 더 좋은 선수들이 많을까? 둘째, 어디가 더 재정적으로 풍족할까? 셋째 (이게 중요한 것인데) 어디가 감독, 코치 등 취업의 기회가 더 많을까?

우리는 팀 자체가 없으니 선수생활을 마치면 갈 곳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협회 눈밖에 나면 그 바닥에서 퇴출이다. 그래서 선수나 감독이나 아무리 억울한 경우를 당해도 모두 협회의 위세에 겁을 먹고 입을 다물게 되어있다. 특히 선수들의 경우 협회에 밉보이면 대표선발에서 탈락하기 일쑤다. (그래서 안세영 선수는 "7년을 기다렸다"고 하지 않았나!)

협회는 이를 이용해서 온라인공간에서 지적하듯 선수들 '앵벌이' 시키고, 선수들 등에 '빨대' 꽂고, 선수들을 마음껏 이용해서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다. 또 이러한 협회의 구태는 결국 조직 내 파벌 문제와 경기 담합 등 승부조작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또 '돈 더 주세요', '공부 안 하고 운동만 하게 해주세요'

이번 올림픽이 끝나니 '엘리트 스포츠 지원'이라는, 체육계의 흘러간 레퍼토리가 또 들린다. 여기엔 '일본 엘리트 스포츠의 성공'이 약방의 감초처럼 또 끼어있다. 논리는 이거다. '1) 일본의 체육정책이 과거 생활체육 진흥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2) 국제대회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3) 다시 엘리트 스포츠 강화로 방향을 틀어, 4) 다시 스포츠 강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거짓말이다. 이를 번역(?)하면 첫째, '돈 많이 주세요', 둘째, '공부 안 하고 운동만 하게 해주세요'이다. 일본은 돈 많은 나라다. 엘리트 스포츠든, 생활체육이든 전반적으로 고루 지원해왔다. 그러던 중 위에서 언급했듯 생활체육, 학원체육의 막강한 자원을 기반으로 엘리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일본이 언제 '극소수' 어린 선수들을 합숙소에 가둬놓고 가혹하게, 때려가며 운동을 시켰나. 그러다 생긴 희생자가 바로 최숙현, 심석희 선수다. 그 결과물이 바로 축구아카데미에서 지도자가 폭력을 휘두르고, 태권도장에서 아이가 죽어 나가고, 복싱체육관에서 코치가 아이를 폭행하는 괴물이 된 한국 스포츠다.

왜 한국에서는 '운동부'를 멀리 할까?

요즘 스포츠가 인기다. 특히 여성 스포츠인구가 급증했다. 테니스, 골프, 자전거는 물론이고 남자들도 쉽지 않은 마라톤을 도전하는 여성도 늘었다. 대회에 가보면 절반 가까이 여성이다. 스포츠는 이렇게 재밌고 좋은 거다. 그런데 왜 운동부엔 들어가질 않을까. 일본은 다 하는데.

프레시안

▲파리올림픽 선수단이 1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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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문화연대 집행위원(uppercutrul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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