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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슈 연금과 보험

"연금 30% 깎여도 한 푼 아쉬워" 소득절벽에 급전 당겨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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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수불황 그림자 ◆

매일경제

연금 수급액 손해에도 불구하고 생계비를 위해 연금을 조기 수령한 수급자가 90만명을 넘어섰다. 12일 서울 한 국민연금공단 지점에서 가입자가 상담을 받고 있다.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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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수급액을 최대 30% 덜 받는 것을 감수하고 연금을 앞당겨 받는 조기 수급자가 90만명을 돌파한 것은 불황의 대표적 단면이다. 고물가와 고금리 여파로 들어갈 돈은 많아졌지만 일자리에서 튕겨진 장·노년층이 부족한 소득을 충당하기 위해 손해를 무릅쓰는 일이 잦아지는 것이다. 특히 고금리로 인해 대출 문턱이 높아져 급전이 필요한 장·노년층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고령자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선 고령자의 계속고용이 가능하도록 지원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식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12일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5월 기준 국민연금 누적 조기 연금 수급자는 9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졌다. 조기 연금은 빠른 퇴직 등으로 소득이 감소해 노후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지원하기 위해 1999년 도입됐다. 소득 보릿고개를 넘을 순 있지만 1년을 앞당겨 받을 때마다 월평균 연금액이 6%씩 줄어든다. 최대 5년을 앞당겨 받으면 평생 동안 원래 받을 연금액의 30%가 깎인 액수를 받는다.

문제는 미래를 희생하면서까지 급전을 받겠다는 조기 수급자 증가 속도가 점점 가팔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 7월 제도 도입 20년 만에 60만명을 넘어선 조기 수급자는 2년3개월 뒤인 2021년 10월 70만명에 다다랐다. 이후 지난해 4월 1년6개월 만에 80만명을 돌파하더니 1년여 만에 다시 9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연금연구원은 올해 초 '국민연금 중기재정전망'을 통해 내년엔 조기 수급자가 105만9554명으로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지난해 수급 개시 연령이 1년 늦춰진 것도 조기 수급자가 증가한 원인이다. 2022년까지 수급 개시 연령은 만 62세였는데 지난해부터 만 63세로 늘어났다. 작년 62세가 된 가입자는 연금을 수급하기 위해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실제로 지난해 신규 조기 수급자는 11만2031명으로 직전 해(5만9000명)에 비해 급증했다. 수급 개시 연령은 2033년까지 만 65세로 인상될 것으로 예정됐다.

여기에 50·60대가 겪게 되는 소득 절벽이 조기 수급자 증가를 부채질했다. 연금을 받을 시기는 60대 중반으로 높아지고 있는데 50대 내내 소득은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작년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중·장년 구직자의 주된 직장 퇴직 연령은 평균 50.5세였다. 50세 이전 퇴직 비율도 45.9%로 절반에 육박했다. 실제 2022년 국민연금연구원이 조기 수급자에 대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한 결과 실직, 건강 악화로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해 생계비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는 게 조기 연금 신청의 주된 이유였다.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 외에 노후소득을 책임질 사적연금 활용이 정착되지 않다 보니 한국의 노후소득 대비는 선진국과 비교해 취약한 수준이다. 작년 국제보험협회연맹과 맥킨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공·사적연금을 통합한 소득대체율이 한국은 47%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 수준이었다. OECD 평균(58%)보다 11%포인트 낮고 미국(81.3%), 프랑스(60.2%), 독일(55.7%), 일본(55.4%)과도 차이가 컸다. 한국과 비슷한 조기 연금 제도를 운영한 일본의 조기 수급자 비율은 2021년 기준 11.2%인 데 반해 한국은 15.9%인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조기 연금 수급이 많아지면 '노후소득 보장'이란 연금 제도의 본래 기능을 약화시키고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기 연금은 장기적으로 정상 수급자보다 적은 액수를 받게 된다. 예를 들어 20년 이상 가입해 월평균 107만원을 받는 수급자는 정상 수급 연령인 63세보다 5년 일찍 당겨 받으면 조기 수급 기간에 약 4494만원을 더 받는데, 이후부터는 매월 약 32만원을 정상 수급자보다 덜 받는다. 2022년 기준 기대수명인 82.7세까지 20여 년을 부족한 연금액으로 버티는 것이다.

소득은 말라가는데 서민들이 돈을 융통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국내 주요 9개 카드사의 올 6월 기준 카드론 잔액은 사상 최대인 40조6059억원으로 집계됐다. 카드론 잔액은 지난해 12월 이후 6개월 연속 증가세다. 카드론조차 받기 어려운 서민들이 찾는 대부업 대출문도 좁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부업 대출 잔액은 12조5146억원을 기록해 같은 해 상반기 말보다 2조775억원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고령자 고용을 확대하는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본다.

[류영욱 기자 /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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