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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희망이다] 서른 넷, 쌀과 누룩으로 '꿈'을 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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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경 대표, 완주서 생강 막걸리 양조장 차려 레시피 완성

양조 체험 공방 운영 '투잡'…"전통주 저변 확대 역할 뿌듯"

청년 모임 '고봉밥' 결성…"청년들 서로 알 기회 많았으면"

연합뉴스

인터뷰하는 술렁술렁브루어리 전은경 대표
[촬영: 임채두 기자]


[※편집자 주 = 지방에 터를 잡고 소중한 꿈을 일구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젊음과 패기, 열정으로 도전에 나서는 젊은이들입니다. 자신들의 고향에서, 때로는 인연이 없었던 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새로운 희망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 청년의 존재는 인구절벽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사회에도 큰 힘이 됩니다. 연합뉴스는 지방에 살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청년들의 도전과 꿈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합니다.]

(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제가 빚은 막걸리가 제일 맛있죠."

앳된 티가 묻어나는 '술렁술렁브루어리'의 전은경(34) 대표는 본인이 만든 막걸리를 소개하면서 자부심을 내보였다.

그는 2022년 9월 전북 완주군 고산면에 정착해 막걸리 양조장을 열었다.

1년간 머리를 싸매고 완성한 막걸리 레시피는 전 대표의 자랑이다.

보통 막걸리는 8시간 동안 불린 쌀로 고두밥을 짓고 누룩과 섞어 1시간 정도 치댄 다음 소독한 용기에 넣어 7∼12일 숙성시킨다.

이후 25도에서 발효시켜 병에 소분하고 30∼40일 저온 숙성하면 완성된다.

전 대표는 여기에 완주 특산물인 봉동 생강을 섞었다.

고두밥을 지을 때 편으로 자른 생강을 섞고, 막걸리를 병에 담을 때 생강청을 다시 한번 넣는다.

그러면 은은한 생강 향과 산미, 청량감이 가미된 막걸리 '술렁'이 완성된다.

완주 특산물인 봉동 생강을 활용한 술렁은 청년 창업가인 전 대표가 지역과 상생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1천년 역사의 완주 생강을 온돌식 시앙굴(생강굴의 방언)에 저장하는 '완주 생강 전통농업 시스템'은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3호로 등재되기도 했다.

봉동 생강은 다른 지역의 생강보다 알싸한 맛이 별로 없어 거부감이 덜하다고 전 대표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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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렁' 소개하는 전은경(왼쪽) 대표와 동업인
[전은경 대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대량 생산이 가능한 도내 대형 양조장에 레시피를 주고 양조를 의뢰하는 방식으로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완주군청의 도움과 개인 마케팅으로 한 달에 적지 않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막걸리 레시피 완성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서울 막걸리학교의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고는 하나 서울에서 쓰던 쌀과 완주의 쌀이 다르고 생강청의 종류도 다양했다.

적합한 물과 쌀의 비율, 생강청의 비율을 찾는 데 참 많은 공을 들였고 막걸리가 발효식품인 탓에 계절별로 온도와 습도도 다르게 맞춰야 했다.

술렁은 전 대표가 시간과 열정, 애정을 갈아 넣은 결과물인 셈이다.

요즘 전 대표의 관심사는 '양조 체험 공방'이다.

개인 혹은 단체가 막걸리 양조 과정 전반을 체험해볼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다.

전 대표의 막걸리를 맛본 이들 대부분이 술빚기에도 관심을 갖는다는데 착안해 '투잡'을 뛰고 있다.

전 대표는 "막걸리를 먹어만 봤지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체험 공방에 참여한 분들이 막걸리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흐뭇하다"고 말했다.

전통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전 대표는 5∼6년간 공연·예술 편집 디자이너로 일했던 술 좋아하는 서울 여자다.

우연한 기회에 접한 복분자 막걸리가 전 대표의 혼을 쏙 빼놓았다.

'이렇게 맛있는 술이 있나' 싶었단다.

관심은 자연스레 프리미엄 막걸리로 옮겨갔다.

인공 화학 감미료를 넣지 않은 게 프리미엄 막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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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양조하는 전은경 대표
[전은경 대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막걸리가 궁금했던 전 대표는 서울의 막걸리학교에서 1년에 걸쳐 양조를 배우고 강사 자격증도 땄다.

여러 종류의 막걸리를 사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죄다 맛봤다.

잔을 더할 수록 전 대표의 전통주 사랑은 점차 커져 갔다.

2020년 창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오히려 기회가 됐다.

공연, 예술계가 신종 전염병에 휘청일 때 회사의 일감도 줄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사를 결정했다.

막걸리학교가 때마침 전북 익산의 청년몰 입점을 추천해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내려왔고 우여곡절 끝에 완주에 정착했다.

월 5만원에 주거를 해결할 수 있는 완주의 쉐어하우스는 귀농 청년에게 꽤 매력적이었다.

귀농 청년들끼리 모여 사는 쉐어하우스에서 타향살이의 고충과 동질감을 함께 나눴다.

술렁술렁브루어리 자리도 완주군이 알아봐 줬다.

생각지도 않았던 전 대표의 창업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자체의 도움 덕에 창업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는 전 대표는 양조 체험 공방에 좀 더 애정을 쏟으려 한다.

체험객과 전통주로 하나 돼 소통하면서 일하는 게 의외로 만족감이 컸다.

전통주 저변 확대에 일조하는 것만 같은 뿌듯함도 섞였다.

바람이 있다면 현재 체험객 대부분이 전북 도민들인데, 입소문이 나 타지역의 손님도 받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양조에 소홀해지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전 대표는 "아직 사업가 마인드가 장착되지 않은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지금은 직원이 필요할 만큼 사업 규모가 크지 않다"며 "막걸리 대량 주문이 들어오면 오히려 무서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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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는 술렁술렁브루어리 전은경 대표
[촬영: 임채두 기자]


전 대표는 그저 전통주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지역의 청년들과 어울리는 게 좋다.

그래서 고산면, 봉동면 청년들의 모임인 '고봉밥'을 꾸렸다.

숙박업을 하는 청년, 낱장의 종이를 묶어 책으로 꾸미는 북바인딩(bookbinding)을 즐기는 청년, 술을 즐기는 전 대표 등등 구성원은 다양하다.

고봉밥 회원들은 자신만의 장점을 살린 강좌를 설계해 가끔 손님들을 모시고 하루 이틀짜리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개성 넘치는 청년들의 수다스러운 모임을 넘어 보다 '다채로운 완주'를 보여주자는 취지여서 보람을 맛본다고 한다.

전 대표는 "완주는 서울과 달리 편안하고 계절감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며 "저는 완주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귀농한 청년들의 얼굴을 한명씩 익혔는데, 앞으로 완주로 거처를 옮길 청년들은 서로 만나서 소통할 공식적인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고 바람을 남겼다.

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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