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현지시각) 예루살렘 올드시티(구시가지)에 있는 이슬람 사원인 알아크사 모스크로 향하는 길목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검문검색을 하고 있다. 강경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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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10개월 넘게 지속되고 있다. ‘한겨레’는 독립 다큐멘터리 작가 강경란 프로듀서(PD)를 현지 통신원으로 파견해 비극의 현장 소식을 수차례에 걸쳐 싣는다. 강 피디는 이라크·발칸반도 등 세계 전역의 분쟁 지역을 누볐고, 한국방송(KBS) 5부작 ‘인간의 땅’ 등 100여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꼭 일주일 전인 지난 3일 이스라엘행 비행기를 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텔아비브까지 20시간이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이스라엘 입국 절차는 암스테르담 스히폴공항에서부터 시작됐다. 입국 목적 등을 묻는 인터뷰가 있었고, 위탁 수하물을 비롯한 모든 짐에 대한 까다로운 보안 점검을 받았다. 지난달 31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이란에서 암살되고, 그 보복으로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뉴스가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지만 텔아비브행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고등학생 스니르는 독일에 있는 형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진짜 전쟁이 날까요?” 불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소년에게 두려우냐고 내가 되물었다. “무섭진 않아요. 그런데 부모님은 돌아오지 말라고 하세요.”
“진짜 전쟁이 날까요?”
이스라엘에서는 전쟁 등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18살부터 21살까지의 남성이 징집된다. 여성은 20살까지다. 스니르는 아직 16살이라 복무 의무가 없지만 ‘부모님은 이스라엘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부연 설명을 했다. “징집에 응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지난해 10월 시작되어야 했던 1학기 학사일정이 군 입대 학생이 많아 올해 1월로 연기됐어요.” 옆자리에 앉은 에슈발이 거들었다. 텔아비브에 있는 대학에서 역사를 강의한다는 그녀는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세미나에 참석한 뒤 돌아가는 중이었다. “가자에서 쏜 로켓이 텔아비브에 도착하는 데 90초 걸려요. 대피하는 데 충분한 시간입니다.”
우리나라의 공공대피소를 떠올린 나는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이동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학교, 병원, 아파트 등에 있는 공공대피소 외에 일반 가정집에도 대피소가 있어요. 우리 집도 지하에 대피소가 있습니다.” 에슈발이 대답했다. “이란이 미사일을 쏘면 문제가 좀 달라지겠죠. 그 경우에도 큰 피해는 없을 거예요.” 전쟁이 나긴 쉽지 않을 것이고 이란이 공격한다 한들 지난 4월에 있었던 드론 공격과 비슷하지 않겠냐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4시간30분의 비행 후 착륙을 알리는 기내 방송이 나오자 승객들이 박수를 쳤다. 로켓 공격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도착한 것에 대한 감사, 서로에 대한 격려라고 에슈발이 설명했다.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의 계류장은 한산했다. 이스라엘 국적기 말고 다른 항공사의 비행기는 보이지 않았다. 이스라엘 국민 전용 입국심사장은 순서를 기다리는 줄이 길었다. 하지만 외국인 입국심사장에는 나와 내 동료밖에 없었다.
칼란디아 검문소는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도인 라말라를 연결하는 주요 길목이다. 이 검문소를 통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의 수는 하루 평균 약 7천명 정도. 이들 중 4천~5천명은 예루살렘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지난해 전쟁이 난 뒤 검문소를 넘어가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 6일 아침 9시, 칼란디아 검문소를 건너 라말라로 들어가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10명이 안 됐다. 칼란디아 검문소는 많은 통행량뿐 아니라 까다로운 검문검색, 통행증 검사로 악명 높은 곳이지만 통과하는 데 1분도 안 걸렸다.
라말라 거리는 북적거렸다. 65미터 높이의 국기 게양대가 있는 중심가 주변에는 20~30대로 보이는 청년들이 담배를 피우며 모여 있었다. “일하러 못 가니 친구도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거죠.” 예루살렘 건축 현장에서 일한다는 오마르가 말했다. 지난해 전쟁이 난 뒤로도 검문소는 닫힌 적 없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취업허가증과 통행증 발급을 통제했다. 취업허가증을 재발급받지 못한 사람들은 검문소를 넘을 수 없어 실업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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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말라는 왜 침묵하는가
지난 6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도인 라말라 중심가에 팔레스타인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강경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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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0년부터 5년간 계속된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 봉기)’를 취재했다. 라말라는 내 활동의 중심지였고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스라엘의 점령에 반대하며 돌 던지는 아이들과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아이를 껴안고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눈물 흘리던 어머니의 고통을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2024년 8월의 라말라는 조용했다. 돌 던지는 아이는커녕 작은 시위조차 없었다. “당신이 경험한 2차 인티파다 기간과 현재의 라말라는 완전히 달라요. 그때는 아라파트 수반이 자치정부를 이끌었고 바르구티가 파타흐(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집권당)의 중심이었죠.” 세상은 팔레스타인 문제로 야단인데 라말라는 왜 이렇게 조용한지, 왜 돌 던지는 아이들이 없는지 묻는 내 말에 팔레스타인 뉴스 에이전시 매체 ‘팔모멘타’를 운영하는 아흐마드 기자는 팔레스타인 정치 지형의 변화를 언급했다. 팔레스타인 정치 그 자체를 상징했던 야세르 아라파트는 2004년 사망했다. 하마스와 경쟁 관계인 파타흐의 핵심이자 2차 인티파다를 주도했던 마르완 바르구티는 2002년 이스라엘군에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무카타는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닌 듯 보였다.
지난해 전쟁 이후 가자지구에서 4만명에 이르는 민간인이 사망했음에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에 대한 입장조차 내지 않고 있다. “우리도 기회 있을 때마다 같은 질문을 합니다. 우리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국민을 책임져야 할 정부가 입장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 따집니다. 하지만 답을 못 들었습니다.” 아흐마드 기자는 현 상황에 대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입장은 ‘침묵’이라고 정의했다. 8월6일, 레바논 국경 지역에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에 충돌이 있었고, 요르단강 서안지구 북쪽 도시 제닌에서는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으로 민간인이 사망했다. 제닌 현지 특파원과 연결을 준비하며 아흐마드가 말했다. “제닌이 제2의 가자가 되는 게 아닌지, 우리 모두 걱정하고 있습니다.”
깊은 침묵이 드리운 라말라 거리와는 달리 텔아비브는 뜨겁다.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전쟁에 반대하며 공존을 주장하는 사람, 베냐민 네타냐후의 사임을 요구하는 사람, 인질의 조속한 석방과 귀환을 촉구하는 사람 등 다양한 주장들이 독자적으로 또는 연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매주 토요일 텔아비브 중심가에 이 모든 목소리가 집결한다. 이란의 보복 공격 예고와 서안지구에서의 충돌로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이번주 토요일 텔아비브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텔아비브·라말라/강경란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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