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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기자수첩]성공한 올림픽, 망한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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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파리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26일(현지시간) 파리 센강 일대에서 파리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개회식을 관람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4.7.26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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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트 피아프의 노래처럼 파리의 하늘은 올 여름 아름다웠다. 오스만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하늘 아래는 더욱 아름다웠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은 자전거로 몽마르트 언덕을 올랐고 세느강을 가로지르며 생제르맹데프레 거리를 탔다.

파리지앵들은 올림픽에 '진심'이다.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각종 경기를 챙겨보고, 길 가다 TV만 보이면 가게 앞에 삼삼오오 모여들어 함께 응원한다. 업주는 영업에 방해된다며 싫어하기는커녕 응원에 동참한다. 한적한 공원에도 대형 스크린이 곳곳에 설치돼 있고, 구석구석 올림픽 종목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운동시설도 마련돼 있다. 이토록 '진심'이니 프랑스 선수들도 힘을 내 천적인 영국을 메달 개수에서 앞서며 주최국의 위엄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성공한 올림픽이다.

하지만 포장지를 한 겹 살짝 벗겨내 보면 프랑스 정치인들이 목표로 한 올림픽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남는다. 프랑스 정부는 다양성을, 앤 이달고 시장은 친환경 올림픽을 표방했지만 초반부터 각종 비판에 직면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는 조롱도 뒤따르고 있다.

역대급 친환경 올림픽이 될 거라는 포부는 '그린 워싱(greenwashing) 올림픽'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린 워싱은 비백인 인종들의 다양한 문화가 백인들의 문화인 것처럼 꾸며진다는 '화이트 워싱(whitewashing)'에서 따온 말로, 친환경인 척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비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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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내 에코컵. 사진=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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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올림픽 스폰서인 코카콜라의 '에코컵'은 친환경 올림픽의 최대 구멍이 됐다. 모든 경기장 내 매점은 보증금 2유로를 받고 에코컵에 탄산음료를 판다. 플라스틱병에 든 음료를 에코컵에 붓는 식이다. 탄산음료 음수대를 설치하기로 했지만 그러지 못해서 나온 궁여지책이라는데, 궁여지책이라고 해도 플라스틱을 2배 더 쓰는 꼴이다.

모든 사람들이 2유로 때문에 컵을 반환하는 것도 아니다. 음료를 다 마시면 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플라스틱은 전혀 쓰지 않겠다(without single-use containers)"며 관중들이 일회용 컵을 들고 오지 못하게 하더니, 이쯤 되면 조삼모사라는 말도 아까울 지경이다.

파리에 생드니의 아쿠아틱스 센터 한곳만 새로 짓고 나머지는 기존 경기장 등을 활용해 친환경 올림픽을 치르겠다는 발상 역시 허점 투성이였다. 당장 시내 곳곳을 사이클장으로 활용해 버린 탓에 아름다운 뷰는 나왔지만, 정작 우버·볼트(공유 차량) 등 공유차량 운전자들은 "기름만 더 태우는데 어떻게 친환경이냐. 2~3km를 가려고 20km를 돌아가기도 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센강을 기준으로 좌안과 우안의 통행이 막혀있는 때가 많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를 멀리 돌아가게 된다는 말이다. 더욱이 공유 차량들은 정찰제로 운영된다. 원래 거리 기준으로 승객을 태우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리게 되더라도 추가 과금할 수 없다. 그러니 먹고 살기 빠듯한 우버 기사들에게 친환경 올림픽은 사치다. 아메드씨는 "샤르도네 좌파들(일종의 강남 좌파)이 자신들의 사상을 막무가내로 강요하니 정작 피해 보는 건 나같은 사람"이라고 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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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파리올림픽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열린 3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알렉산드르 3세 다리에서 출전 선수들이 센강으로 뛰어들고 있다. 트라이애슬론 남자 경기는 30일 진행될 계획이었지만 센강 대장균 검출 수치 초과 등 수질 문제로 연기됐다. 2024.7.31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YW 황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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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볼 때만 아름답다는 세느강 수영도 아메드씨가 성을 낸 '부자 좌파들의 돈 놀음'으로 꼽힌다. 세느강에서 트라이애슬론 대회가 펼쳐졌지만, 수질 개선에만 2조원이 들었다. 수질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은 듯 하고 경기 일정은 수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변경되기도 했다. 결국 일부 선수들은 구토를 하는 등 부작용도 엄청 났다. 밤낮 없이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세느강에 모여 먹고 마시고 유람선까지 다니는 데 예견된 비극이었다.

파리와 1만6천km 떨어진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타히티섬에서 열린 서핑 대회는 또 어떠한가. 대회 운영을 위한 대형 타워를 만드는 과정에서 산호초는 파괴됐다. 우리 땅의 자연은 지켜야 하고 일종의 식민지인 자치령은 망가져도 된다는 말인가.

파리올림픽의 모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지에서는 프랑스가 자국 선수에게만 히잡 착용을 금지한 것을 놓고 비판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교 분리의 원칙에 따라 프랑스 공무원 등에 한해 히잡 착용이 금지돼 있는데 이 원칙이 자국 선수들에게도 적용된 것이다. 아랍 국가 등에서 온 선수들은 히잡을 착용하고 경기를 뛰고 있지만 정작 프랑스 선수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누구는 히잡을 쓰고 누구는 쓰지 못하니, 히잡을 쓰고 경기를 하는 선수들의 마음도 편치 않다. 알제리 펜싱 선수 사우센 부디아프는 "무의미한 이유로 우리가 소외감을 느껴야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했고, 이집트 펜싱대표 야라 엘샤카위는 "전세계가 표현의 자유를 외치고 있는데, 왜 히잡에 대해서만 유독 문제를 삼느냐"고 비판했다.

프랑스 공공기관 어디를 가더라도 건물 한가운데 새겨져 있는 단어 '자유(liberte)'. 프랑스 정신의 총체이기도 한 자유는 무엇이든 강요받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 에코컵에서 히잡까지, 이쯤 되면 친환경 올림픽이 아니라 내로남불 올림픽 같아서 머릿속에서 더욱 지워지지 않는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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