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1 (금)

[매경춘추] 오만과 모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얼마 전 신문에 우리나라의 2022년 기준 연간 수출액이 일본의 92% 수준까지 올라왔고, 총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연간 7000억달러를 기록하면서 이르면 올해 일본을 추월할 수도 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오랫동안 대한민국이 아닌 나라에서 살다가 온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어느 사이에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나라는 제자리에 있는데 일본이 가라앉아 이렇게 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찾아보기까지 하였다. 국민 1인당 수출액으로 따지면 2배가 될 것 같다.

공직을 마친 뒤부터 일부러 경제 기사를 찾아 읽고 경제지와 같은 전문지를 구독하고 있었는데도 이렇게까지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지금껏 종사해 왔던 업무 성격상 사회 기사와 정치 기사를 주로 접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에는 암이 퍼지듯 갈등이 커져 있어서 구제가 안 될 상황인 것으로 잘못 입력돼 있었던 탓이었을까? 이런 핑계가 들었지만 그보다는 세상의 움직임에 관한 정보를 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반성이 들었다. 또한 우리나라 국민들은 유달리 일본과 비교해 지기를 싫어하지만 경제 분야만큼은 앞서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적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급기야 수출대국으로 알려진 일본을 수출 분야에서 앞서게 되다니!

갑자기, 너무나 섣부르게도 '페르시아 사람들'이라는 그리스 희곡이 생각났다. 그리스가 페르시아전쟁의 최종적인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당시 크게 유행하던 연극 형식으로 창작물을 기획했는데, 그 연극이 '페르시아 사람들'이라고 한다. 당시로서는 발칸반도와 서남아시아,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최대의 제국이었던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어쩌다가 무참하게 패배했는가를 그려내는 내용이다.

연극은 페르시아에 대해 두 가지 패인을 지적하는데, 바로 '오만'과 '모욕'이다. 아이스킬로스는 승리에 도취돼 있는 그리스 사람들에게 이 함정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연극은 그리스인들이 무엇을 잘했는지는 묘사하지 않는다. 희곡 전체로 보면 페르시아에 의한 몇 차례의 침입 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그리스가 한 방향으로 단결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광복을 맞이한 이후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우리 시대는 잘 알고 있다. 한국전쟁에서 시작해 4·19 혁명, 새마을운동, 군부 통치, 6·10 항쟁, K팝, K컬처 등등 말이다.

산업화를 위해 고생한 국민들, 민주화를 위해 고생한 국민들, 두 가지 노력이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한 가지 뜻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승화시켜 온 결과가 오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기에 어느 한 분야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다른 분야를 폄훼할 일도 아니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상황도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칭송하고 각자 칭찬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이런 글이 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문무일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