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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재일교포 강제 북송은 인권 유린… 日정부도 北정권 인권침해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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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첫 조사

조선일보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지난 5월 27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에서 열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개시 3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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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7일 1959~1984년 재일교포 9만3340명이 북한으로 강제 이송된 사건을 ‘북한 정권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에 의한 인권 유린 사건’으로 공식 규정했다. 재일교포 강제 북송 사건과 관련한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첫 조사 결과다. 진실화해위는 이 과정에서 북송 사업을 방관한 일본 정부, 일본 적십자사,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6일 제84차 위원회에서 “이 사건은 북한 정권과 조총련이 사전에 기획한 사건”이라고 결론 내렸다. 진실화해위가 북송 재일교포 본인과 후손 27명의 진실 규명 신청을 받아 당시 작성된 공문서, 외교 전문, 관련 서적·논문 등을 검토·분석한 결과, 북송자 대부분은 ‘북한은 지상 낙원’ ‘차별 없고 일한 만큼 분배받는다’ ‘이상 사회처럼 살 수 있다’ ‘북한이 일본보다 잘 살고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조총련 선전을 믿고 북한으로 이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작 북한으로 이주한 재일교포들은 평양이 아닌 양강도 혜산 등 시골에 배치돼 거주·이전의 자유를 억압받았다. 협동농장 농민, 광산·탄광에 종사하는 광부, 공장 노동자로 배치된 북송자들은 ‘성분조사’를 통해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철저한 감시와 차별을 받았다. 북송자 집안이 아닌 자와 결혼하려는 경우 강한 반대에 부딪히는 등 사회 생활에서도 불이익을 받았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의 일차적 책임은 조직적·체계적으로 거짓 선전을 벌이고 개인의 귀국 의사 확인 기회 차단, 강제 승선, 북송 거부자 납치 등을 한 북한 정권과 조총련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일본 정부와 일본 적십자사가 북한의 현실과 북송 사업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의도적으로 북송 사업을 지원·지속시켜 북송자에 대한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를 용인했다”고 했다.

유엔 자료를 보면 1945년 광복 당시 일본엔 240만명가량 재일 한국인이 있었다. 상당수가 일제의 강제 징병·징용 등으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따라 재일 한국인들은 일본 국적을 상실했다. 이들은 일본 내에서 2등 국민보다 못하던 취급을 받았고, 일본 정부도 이들을 골칫거리로 취급했다.

1959년 일본·북한의 적십자사는 ‘재일 한인 북송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사업 배후엔 일본 정부가 있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당시 ICRC 자료를 검토한 테사 모리스 스즈키 호주국립대 일본 역사학 교수는 2007년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일본 정부가 ICRC에 압력을 넣어 북송 사업을 돕게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북송 사업을 준(準)선전포고로 간주한다는 통보를 보내는 등 강력 저지에 나섰다. 진실화해위는 “한국 정부는 결과적으로 북송을 저지하지 못했다”며 대한민국이 북한 정권에 공식 사과와 북송자 생사 확인 및 이동 자유 보장을 촉구하라고 권고했다. 또 유엔에 사건 실체를 조사해 그 결과를 역사 기록에 반영하라고 요구했다.

[서보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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