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09 (월)

[메아리] 쯔양을 응원한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악마적인 사생활 캐기 비즈니스
과거 고통까지 공개해야 하는 피해자
사법 당국, 사이버레커 엄단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유명 유튜버 쯔양이 1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영상에서 자신에게 제기된 일련의 의혹들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쯔양 유튜브 채널 화면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흥미롭게 본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에서 주인공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악마를 섬기며 아내마저 희생 제물로 삼는다. 시청률에 목매는 미디어 비판이란 해묵은 주제를 오컬트 장르에서 풀어 내는 방식이 새롭다면 새로웠다. 그렇더라도 이 영화가 묵직한 사회 비판성 메시지를 담았다기 보다는 이를 활용한 공포 오락 영화로 다가왔다. 미디어와 악마를 연결시키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과한 비유일 테니까.

하지만 어제 우연찮게 유튜버 쯔양(본명 박정원)의 ‘마지막 해명’ 동영상을 보고선 충격에 몸이 굳고 말았다. 정말 악마와 결탁된 미디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성하자면, 사건을 깊게 들여다보지 않은 상태에서 쯔양 사건은 그를 협박한 유튜버 '구제역'(본명 이준희) 구속으로 마무리된 줄 알았다. 사이버레커 문제의 심각성도 체감하지 못했다. 쯔양의 존재를 이전에는 몰랐던 터라 그 바닥의 진흙탕 싸움 정도로 여겼던 면도 없지 않았다.

직접 그의 동영상을 보면서 그간 안이했던 머리가 큰 망치에 내리 맞는 기분이었다. 쯔양이 전 소속사 대표에게 당했던 폭행도 끔찍했지만, 그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과거의 사생활을 낱낱이 공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 자체가 여기가 지금 지옥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찾아보니, 쯔양의 이 사건이 마무리되지 못했던 것은 ‘가세연’이라는 유튜브 채널이 쯔양의 해명이 거짓말이라고 선동하며 시청자를 끌어 모으고 있어서였다. 전언에 불과한 유흥업소 주인과의 인터뷰를 두고 마치 진실을 발굴한 양 의기양양해하는 태도부터 악마적이었다. 사실 검증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이 채널이 마치 진실을 캐는 매체인 양 찬양하는 댓글들은 사교 집단의 분위기를 방불케 했다. 사실을 찾는 과정은 지난하고, 그런 사실들로 진실을 구축하는 것은 더 어렵다. 하지만 전언과 루머, 단편적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취사해 손쉽게 진실을 단정하는 이들에겐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나 자기 인식에 대한 성찰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공감과 배려, 성찰의 부재 속에서 악은 진부하게 일상을 지배한다.

태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의도다. 도대체 타인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캐내려는 이 방송의 목적이 무엇인가. 공익적 목적이 담보되지 않은 사생활 캐기 보도는 언론 윤리뿐만 아니라 현행법 위반이지만 사이버레커 세계에선 악마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돈벌이 수단이다. 타인의 사생활을 캐려는 동기의 저 밑바닥에는 타인의 삶을 지배하고 파괴하려는 충동이 자리 잡고 있다.

악은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군중을 모은다. 양심과 성찰은 자신과 대면하는 고독한 순간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제 정신이 아닌 것은 드문 일이지만, 집단은 제 정신이 아닌 게 정상이다”는 니체의 경구처럼, 인종청소와 대량학살 등 인간의 잔인한 행위는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이 집단으로 이뤄졌다. 악마적 희생 제의에서 가면을 쓰는 것도 집단 도취와 자아 삭제의 징표다. 오늘날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이 그런 가면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에 기반한 사이버레커적 세계가 유튜브 공간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우리 사회의 토양 자체가 썩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것이 지금 쯔양이 맞서는 세계다. 우리 사회가 이런 독버섯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쯔양의 고소를 계기로 사법 당국도 제발 대오각성해 엄단에 나서길 바란다. 쯔양의 용기가 없었다면, 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한 이 비즈니스 생태계는 더욱 활개쳤을 것이다. 쯔양이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 위로를 얻기를.

송용창 뉴스1부문장 hermeet@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