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는 6·25전쟁 당시 일본에서 자원입대해 89회에 달하는 전투 비행을 한 박두원 공군 대위를 ‘8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26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박 대위는 1934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1944년 일본 다치아라이 육군비행학교를 졸업했다. 박 대위는 1950년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재일학도의용군의 일원으로 그해 10월 부산에 도착했다. 이듬해 육군에서 공군으로 옮겨 조종 교육을 받았고, 1952년 3월 공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제1전투비행단 제10전투비행전대 강릉전진부대 소속이었다.
박 대위는 F-51D 전투기로 적 후방을 폭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우리 공군이 처음으로 수행한 적 산업시설에 대한 전략 폭격인 평양 인근의 송림제철소 폭격 작전에도 참여했다.
박 대위는 1952년 8월2일 89번째 비행에서 순직했다. 속초 상공에서 기체가 폭발해 그는 낙하산으로 탈출했다. 이후 동해바다에서 민간 어선에 의해 발견됐지만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보훈부는 “재일학도의용군 중 유일한 공군 조종사였던 박 대위는 F-51D 조종사로서 전사한 17명 가운데 가장 많은 전투 출격 기록을 보유했다”고 설명했다.
박 대위는 1952년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그의 유해는 1958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2014년에는 일본 도쿄 미나토구 재일본대한민국민단본부에 ‘재일학도의용군 위령 충혼비’가 건립돼 박 대위를 포함한 전사자 135명을 추모하고 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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