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부처 폐지를 목표로 조직 개편이 이뤄진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 이준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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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장관의 공석이 6개월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전직 여가부 장·차관들은 여성뿐 아니라 청소년, 가족 업무를 맡은 여가부 업무 특성상 복지부, 교육부 등과 협업·조정이 필수적인데 장관 부재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타 부처에서 관심 갖지 않는 한부모가정, 학교밖 청소년 관련 정책 등을 마련해야 하는 여가부가 정책 추진 동력을 잃게 될 것을 우려했다.
31일 취재를 종합하면 전직 여가부 장·차관들은 모두 “여가부는 협업과 조정이 타 정부부처보다 중요한 곳”이라며 장관 부재로 인한 협업·조정 기능의 상실을 우려했다. 지난 2월20일 김현숙 전 여가부 장관의 사표가 수리된 뒤부터 장관 자리는 공석이다.
정현백 전 여가부 장관은 기자와 통화하며 “여가부 사업은 타 부처와 조율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국무회의에 참석해 타 부처 장관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며 조율하는 역할을 차관이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여가부의 주요 업무는 타 부처와 협업을 전제로 진행되는 것들이 많다. 여가부의 청소년 업무는 주로 교육부와 가족 업무는 보건복지부와 협업을 해야 한다. 성폭력, 인신매매 방지 등의 업무를 맡은 여가부 권익증진국은 수시로 법무부, 경찰과 소통해야 한다. 여성인력개발과, 경력단절여성지원과 등이 있는 여성정책국은 고용노동부와 협업이 필수다.
협업 과정에선 부처 이해관계 관철을 위해 장관간 ‘파워 게임’이 벌어지기도 한다. 파워 게임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정원 281명의 작은 부처인 여가부 장관의 존재는 더욱 중요하다. 정영애 전 장관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청소년 문제만 봐도 이해관계가 여러 면에서 충돌하고 명료하게 업무가 나뉘지도 않는다”며 “사회관계 장관회의에 장관이 참석해 때로는 타 부처 장관과 싸우기도 하며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차관이 이 역할을 대신하긴 어렵다”고 했다.
신영숙 여성가족부 차관이 지난달 27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여성단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여가부는 이 자리에서 교제폭력 대책을 논의했고, 이날 논의 자료를 교제폭력 대책으로 내놨다. | 여성가족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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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부재로 정책 추진이 미진했던 대표적 사례는 젠더 폭력 대책이다. 잇따른 교제 살인이 발생하자 여가부는 6월 말 발표를 목표로 법무부, 경찰청 등과 함께 젠더폭력 범부처 대책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사회관계 장관회의에서 다루려 했던 젠더폭력 대책은 발표 직전 안건에서 빠졌다. 범부처 대책 발표는 무산됐고 여가부는 별도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대신 여가부는 여성단체와 간담회를 열었다고 알리며 피해자 지원 강화, 교제폭력 진단도구와 통계 마련 등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숙진 전 여가부 차관은 “범부처가 모일 때에는 실무진에서 협의를 하지만, 각 부처 장관들이 해당 주제와 문제를 같이 협력하고 논의해야 종합대책이 나올 수 있다”며 “범부처가 논의한 주요 정책 사안을 각 부처 장관들이 함께 브리핑하는 데에도 장관급에서 협력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내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장관 부재로 여가부 힘이 더 빠질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장·차관이 하던 업무를 한 단계씩 직급이 낮아진 차관과 기조실장이 하면서 기재부와 협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여가부에선 예산 업무는 차관이 총괄하고, 장관은 핵심 정책 예산이 깎이지 않게 방어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현재 차관이 장관 업무를 수행하면서 기획조정실장(1급)이 예산 편성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여가부 공무원들은 “어차피 예산 깎는 역할을 하는 기재부가 더 마음 놓고 예산을 깎아버릴 수 있는 상황”인 점을 걱정했다. 여가부 산하기관 쪽에선 “지금은 기재부가 삭감하려는 예산을 다시 복구하려는 논의를 해야 할 시점인데 지난해와 달리 요원해 보인다”며 답답함을 표하기도 했다.
이주여성 노동자가 지난 2월16일 서울 종로구 여성가족부(정부서울청사 본관) 앞에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사와 이중언어코치로 일하는 결혼이주여성 노동자의 처우 개선 및 차별 철폐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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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전직 장·차관들은 “각 부처의 정책 사각지대를 거의 여가부에서 챙기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다른 부처에선 주류가 아닌 사업을 챙기는 여가부에선 장관의 부재가 정책 공백을 더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가부는 다른 정부 부처가 덜 주목하는 학교밖 청소년 등 위기청소년, 한부모가정, 폭력 피해자 등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는다.
업무 성격도 다른 부처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이주배경 가정을 법무부는 규제적 시각에서 보지만 여가부는 지원 대상으로 접근한다. 정영애 전 장관은 “여성도 경력단절 여성, 이주배경의 여성, 한부모 여성 등 성격이 저마다 다른데 여가부는 여성 중에서도 특히 소외받는 이들에 집중한다”며 “타 부서의 정책 대상에서 떨어져 있는 이들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예산을 확보하려면 장관의 힘이 훨씬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차관이 1인2역을 맡은 상황에선 업무 처리 범위의 물리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신영숙 여가부 차관은 현재 5급 승진 후보자 역량평가 도입 등 내부 인사 정책을 직접 추진하고 있다. 인사는 기존 차관 업무지만 여가부 정책과 내부 조직·인사까지 도맡기에는 업무량이 너무 많다는 취지의 지적이 나온다. 장관 부재가 장기화되면서 아무도 여가부 장관을 맡지 않으려는 정치적 상황에 놓인 점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숙진 전 차관은 “차관이 장관 업무를 다 커버할 수 있다면 다른 부처도 모두 차관만 임명하면 되겠지만 그렇지 하지는 않는다”며 “차관이 내부 인사, 법령 개정, 새로운 정책 추진 등을 전부 다 챙겨야 하는 상황인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주어진 환경하에서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 고립은둔 청소년 지원 등 여러 정책을 도입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교제폭력 방지 대책 공개한 여가부, ‘범부처’대책은 없었다[플랫]
https://www.khan.co.kr/national/gender/article/202406281016001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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