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외곽의 하렛 흐레이크 지역 한 건물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아 무너진 가운데 구조대가 건물 잔해에서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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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미국 등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결국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30일(현지시간) 공습했다. 지난 27일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골란고원의 한 축구장에 로켓이 떨어져 어린이 12명이 사망한 지 사흘 만에 보복 공격에 나선 것으로,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간 전면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오후 7시45분쯤 베이루트 남부 외곽의 인구 밀집 지역인 하렛 흐레이크를 공습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공습 사실이 알려진 직후 “헤즈볼라가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밝히며 보복 공습임을 시사했다.
하렛 흐레이크는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34일 전쟁으로 대부분 파괴됐던 헤즈볼라의 거점 지역으로, 이스라엘군은 이곳에 위치한 헤즈볼라의 의사결정기관 슈라위원회를 겨냥한 것으로 전해졌다.
레바논 보건부는 이번 공격으로 여성 1명과 어린이 2명 등 민간인 3명이 사망하고 74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중 상당수가 중상자로 알려졌으며, 인근 병원은 주민들에게 헌혈을 긴급 요청했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실종자를 찾는 수색 작업이 이틀째 이어졌다.
공습 표적이 된 건물은 베이루트 최대 병원인 바흐만 병원 바로 옆에 있었다. 다만 병원은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군은 이번 작전으로 골란고원 축구장 공격을 주도한 헤즈볼라의 고위 지휘관 푸아드 슈크르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슈크르는 헤즈볼라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의 ‘오른팔’ 격인 핵심 작전 고문으로, 지난해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헤즈볼라의 공격을 지휘한 인물이다.
그는 1983년 미군 241명이 숨진 베이루트 미 해병대 막사 폭탄 테러 사건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 사건 이후 그에게 현상금 500만달러(약 69억원)를 내걸었다.
헤즈볼라는 이날까지 슈크르의 사망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다만 헤즈볼라 고위 간부인 알리 아미르는 현지 알마나르TV에 “적이 민간인 지역을 표적으로 삼는 매우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면서 “조만간 이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국무부가 배포한 현상 수배 포스터에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고위급 지휘관인 푸아드 슈크르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스라엘군은 30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공격으로 슈크르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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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이 지난해 10월8일부터 계속된 헤즈볼라와의 무력 충돌 국면에서 베이루트 내 헤즈볼라 목표물을 타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측은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매일 공격을 주고받았지만, 이는 대부분 국경지대에 국한됐다.
다만 이스라엘군은 지난 1월 베이루트 외곽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사무실을 드론으로 공습해 하마스 정치국 부국장 살레 알아루리 등 6명을 사살한 바 있다. CNN은 “1월 이스라엘군의 베이루트 공격은 하마스 사무실만 파괴하고 주변에는 피해를 거의 입히지 않는 정밀한 방식으로 이뤄졌지만, 이번 공격은 규모 자체가 다르다”며 “지난해 10월8일 이후 가장 큰 공격”이라고 짚었다.
이스라엘군의 이날 공습은 헤즈볼라·하마스 등 이란의 지원을 받는 지역 무장단체인 이른바 ‘저항의 축’ 지도자들이 이란의 신임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테헤란에 머물고 있는 사이 이뤄졌다.
레바논 정부는 베이루트 공격에 강력 반발하며 유엔 차원의 대응을 촉구했다.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 대행은 베이루트 최대 병원과 불과 몇 m 떨어진 곳이 공격받았다며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해 민간인을 살해한 범죄 행위”라고 규탄했다.
레바논 정부는 이스라엘이 확전을 피하기 위해 ‘제한적인 대응’만 할 것이라는 이스라엘 동맹국들의 확언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자국 수도까지 타격하자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압둘라 부 하비브 레바논 외교장관은 가디언에 “이스라엘이 설마 베이루트를 공격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이는 그들이 마지막까지 존중할 레드라인이라고 여겼다”면서 “헤즈볼라의 대응이 더욱 긴장을 촉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베이루트 타격, ‘전면전’ 불씨 되나
이번 공습이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면전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예단할 수 없다. 다만 축구장 공격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책임을 부인해온 헤즈볼라가 어떤 방식으로든 맞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헤즈볼라 수장인 나스랄라는 이스라엘이 레바논 수도를 공격할 경우 텔아비브에 대한 헤즈볼라의 공격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헤즈볼라와 동맹관계인 레바논 시아파 정당 아말운동의 간부 탈랄 하툼은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제 (헤즈볼라의) 교전 규칙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런 경고대로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인구 밀집 지역을 공격할 경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수 있다. 미국 정부도 이 점을 우려해 이스라엘에 베이루트 공격을 만류해 왔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의 마이클 한나 연구원은 베이루트 공습이 “심각한 사건”이라며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양측 모두 전면전을 피해 왔지만 잠재적인 확전 사이클에 놓여 있으며, 통제불능의 길로 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공격 후 확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스라엘 채널12에 “우리는 보복을 마쳤고, 지역 전쟁을 시작할 의향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리는 “우린 확전을 원치 않으며, 이는 헤즈볼라의 대응 여부에 달렸다”고 CNN에 말했다.
국제사회는 역내 분쟁 확산을 막기 위해 긴급하게 움직이고 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헤니스 플라샤르트 유엔 레바논 특별조정관과 레바논 주둔 유엔평화유지군이 전면전을 막고자 레바논, 이스라엘 양측과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방어할 것”이라면서도 “싸움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외교적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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