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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국민 돈으로 해외 인수에 '영끌'"···규제 사각지대가 만든 티몬·위메프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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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커머스의 배신] <1>

정산 대란 배경에 규제 공백 있어

대규모유통업법 미적용 정산 제멋대로

경영 상황 따라 입금 무기한 연기 하기도

오픈마켓 전반 신뢰 무너져 비상

"정산 제도·에스크로 시스템 정비 해야"

서울경제


티몬·위메프 사태로 규제 사각지대인 e커머스 산업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전자상거래가 발달하면서 유통산업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지만 정산 대금과 관련해 소비자는 물론이고 오픈마켓 판매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태로 시장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무너지면서 e커머스 산업 전반이 흔들릴 조짐까지 나타나는 상황이다.

30일 e커머스 업계에 따르면 각 회사별로 정산 주기와 방식이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업체가 주 정산, 월 정산을 달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유료 서비스를 사용하는 판매사들에만 빠른 정산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선입금을 무기로 멤버십 가입까지 종용하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티몬·위메프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e커머스 플랫폼들 중에는 정해놓은 정산 시기와 방식이 지키지 않고 자사의 경영 상황에 따라 갑자기 입금을 무기한 연기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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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시스템이 제각각인 것은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은 상품이 판매된 달의 말일을 기준으로 40~60일 이내에 판매 대금을 정산하도록 의무화한다. 하지만 해당 법은 소매 업종 매출액이 연간 1000억 원 이상이거나 일정 규모 이상의 오프라인 매장을 갖고 있는 업체들만 대상으로 한다. 결과적으로 통신판매중개업을 하는 티몬·위메프와 같은 중소형 e커머스 업체들은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다. 실제 이와 관련해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번 사태 이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티몬·위메프는) 대규모 유통업법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제도적 개선, 재발 방지를 위해 사태의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해보겠다”고 밝혔다.

티몬·위메프는 이러한 법의 허점을 이용해 정산을 무기로 판매자들에게 사실상 ‘갑질’을 해왔다는 평가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티몬의 정산 시기는 거래가 발생한 달의 마지막 날을 기준으로 40일 이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와 같은 정산 시기가 지켜지지 않고 미뤄진 적도 허다하다는 것이 피해를 본 셀러들의 설명이다. 위메프의 경우 매달 매출 마감일 이후 다음다음 달 7일이 정산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판매사들 입장에서는 돈을 주는 플랫폼사들이 갑이기 때문에 돈을 못 받아도 기다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어 정산이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

유통 선진국에서는 표준으로 자리 잡은 ‘에스크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것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에스크로는 은행과 같은 신뢰성 있는 제3자가 결제 대금을 보관하고 있다가 물품 배송이 완료된 후에 사업자에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관련 규제가 담긴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은 현금 거래에만 에스크로 적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카드는 물론 각종 페이 시스템 결제가 자리 잡은 상황에서 에스크로 시스템이 국내 전자상거래에 정착되지 않은 이유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고 난 후 금융 당국은 판매자 정산 용도로 유입된 자금은 정산에만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적 방안을 추진 중인데 한발 늦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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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과열됐던 e커머스 경쟁 상황도 티몬·위메프 사태를 촉발시킨 원인이다. 우리나라는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에 사람들이 몰려 거주하는 환경 덕분에 배송이 용이해 e커머스 산업이 정착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이러한 시장 상황 때문에 관련 투자가 몰리면서 큐텐과 같이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 몸집만 키우는 업체들을 양산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특히 이번 티몬·위메프 사례처럼 지배력을 키우기 위해 제 살 깎기식 프로모션을 통해 판매자들을 끌어모으는 것도 관행처럼 여겨진 게 사실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로 국내 유통 업계에서 e커머스 산업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했다는 점이다. 당장 파산하게 된 업자들은 물론이고 다른 e커머스 판매사들 중에서도 온라인 유통 업체에 대한 납품은 꺼려진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을 하다 보면 현금을 투자 등 다른 분야에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마련인데 정산 시기는 물론 에스크로 의무화 규제가 없었던 게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보인다”며 “대금 지급과 관련한 명확한 규정과 에스크로 시스템 정착 등에 대한 확실한 기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경운 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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